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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 성향? 발달 지연? 전문가도 구별하기 어려워요"

중앙일보

입력 2022.04.14 06:00

업데이트 2022.04.14 12:06

아이가 자폐인 것 같아요
만 4세 재윤이(가명) 엄마입니다. 아이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발달이 좀 느린 편이었어요. 말을 하고 나서도 대화가 안 된다는 느낌을 항상 받습니다. 화용언어 능력(단어를 뜻과 상황에 맞게 적절히 사용하는 능력) 떨어지는 것 같아요. 제가 “물 줄까, 주스 줄까”라고 물으면 “주스 줄까” 이렇게 답합니다. 상황이나 맥락과 맞지 않는 말을 뜬금 없이 하기도 하고요. 동화책에서 봤던 문장을 갑자기 말하는 식으로요.
강박도 심합니다. “엄마가 물 줄게”라고 하면 반드시 '엄마'가 줘야 합니다. 아빠나 할머니가 주면 큰 일 나죠. 한글을 쓸 줄 알게 되면서부턴 허공에 손으로 뭔가를 그리거나 써요. 저 역시 강박이 심한 성격이라 아이가 이럴 때마다 너무 거슬립니다.
아이가 30개월쯤 됐을 때 놀이센터를 다녔어요. 어린이집 선생님이 치료를 권했거든요. 놀이센터에선 발달은 대부분 정상적인데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했어요. 한 달 정도 치료를 받았고, 놀라울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여름, 주변 사람들로부터 발달 검사를 권유했어요. 재윤이가 다른 아이들과 달라보인다고요. 덜컥 하는 마음에 지역 대학병원을 찾았습니다. 의사는 “자폐를 의심할 수준은 아니다.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죠. 하지만 제가 보기엔 너무 의심스러워요. 교수님이 보시기엔 제 아이 상태가 어떤가요?

“발달 지연은 발달 장애와 다릅니다. 아이의 뇌가 어떤 부분은 좀 빨리, 어떤 부분은 좀 늦게 발달할 수 있어요. 재윤이가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 같은데요, 그걸로 자폐를 의심한다? 전혀요.“

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차지연(가명)씨의 고민에 이같이 말했습니다. ‘발달 지연과 발달 장애를 착각해선 안 된다’는 건 신의진 교수가 그 동안 책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서도 강조해온 얘긴데요.

그렇다면 발달 지연과 장애는 뭐가 다른 걸까요? 신 교수는 “증상의 정도, 그러니까 심각성으로 판단하는데 사실 전문가들조차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지연과 장애를 진단하는 기준에 대해선 “^인지 ^언어 ^사회성 ^정서 ^운동 등의 영역에서 발달 검사를 했을 때 하위 25%에 속하는 경우 발달 장애로 갈 확률이 높다고 본다”고 설명했습니다. 또래에 비해서 정말 심각한 수준으로 발달이 지연되거나 문제 행동을 할 때야 비로소 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는 겁니다.

차지연씨(이하 차)와 신의진 교수(이하 신)의 상담은 지난 2월 21일 줌을 통해 30분간 진행됐습니다. 헬로 페어런츠(hello! Parents)는 차지연씨의 동의를 얻어 상담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이번 회차에는 사회성이 떨어지는 아이들에게 효과적인 신의진 교수의 치료 노하우도 담겼으니 꼼꼼히 훑어봐주세요.

발달 지연, 자폐 성향으로 오해 마세요 

신) 대학병원에서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고 했는데, 어떤 점이 우려되시는 건가요?
차) 병원 다녀온 뒤엔 심각하게 생각 안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최근 아이 상담 과정에서 만난 학원 선생님들이 모두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시더라고요. 학원 선생님은 아이들을 많이 만나는 분들이잖아요. 그분들 눈에 이상하게 보인 게 마음이 걸려요. 사실 재윤이가 첫 아이라 비교 대상이 없어 판단하기 혼란스러웠거든요. 그래서 저도 주변 분들한테 재윤이 행동이나 상황을 많이 묻거든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신) 재윤이가 어떤 행동을 하나요?
차) 만화를 보면 내용이 아니라 배경 음악에만 집중해요.
신) 만으로 몇 살 때쯤 그랬죠?
차) 두 살이요.
신) 아이가 말문을 떼기 전에는 소리에 집중할 수 있어요. 이상한 게 아닙니다. 재윤이가 소리에 예민한 아이였나 보네요.

차) 앞서 말씀 드린 사례는 어떻게 보시나요? “엄마가 물 줄게”라고 했는데, 아빠가 주면 “엄마가 달라”고 우는 거요.
신) 언제부터 아이가 그랬나요?
차) 이것도 두 돌부터요.
신) 이게 강박일 수도 있지만 불안 때문일 수도 있어요. 어머니는 지금 아이가 자폐 성향이 있는 게 아닌가 걱정하시잖아요. 그런데 의사조차도 반복 행동이 자폐 성향 때문인 건지, 아니면 불안 때문인 건지 구별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재윤이가 만 두 돌 때부터 융통성이 매우 결여된 행동을 보였다는 건 확실하긴 하네요.

차) 교수님, 이런 일도 있었어요. 아이가 샤워를 하는데 오줌을 싸버린 거예요. 제가 “그럴 수 있어, 괜찮아”라고 했는데도 아이 스스로 용납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엄마, 지금 빨리 여기 싸도 된다고 얘기해” 이러는 거예요. 제가 “원래는 안 되는데 지금은 급했으니까 괜찮아”라고 하니 “아니야, 지금도 싸도 된다고 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알았어, 싸도 돼”라고 말하니 “엄마가 싸도 된다고 했으니 이제부터 여기에 오줌 쌀 거야”라고 했고요.
신) 이것도 두 돌 때인가요?
차) 세 돌 때요. 기저귀 뗐을 무렵 일이에요. 아이가 규칙이나 규율에 집착하는 정도가 심해요. 제가 그렇게 키우긴 했어요. 저 역시 강박과 불안이 있거든요. 그래서 아이가 영향을 받았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코로나, 발달 지연 아이에 직격탄 

신) 아이는 두 돌 이전에 누가 돌봤어요?
차) 쭉 제가 길렀어요.
신) 주부신가요?
차) 아뇨, 시간 강사에요. 하지만 일하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요.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온라인 강의도 많이 했고요. 간혹 나가야 할 일이 있으면 친정 어머니에게 맡겼어요. 바로 근처에 사시거든요. 18개월쯤부턴 어린이집도 보냈고요.
신) 아이들이 돌쯤 되면 어머니(주 양육자)를 몹시 찾거든요. 그 이전엔 할머니가 와도 ‘빠이빠이’ 잘해요. 그런데 돌 지나면 엄마랑 떨어지는 걸 매우 싫어하거든요.
차) 맞아요. 어린이집 다니기 시작하면서 너무 힘들었어요. 적응을 잘 못해서 거의 매일 울었거든요. 아이가 아프면 어린이집 안 가는 걸 알게 된 뒤론 “아프니까 못가겠다”는 식으로도 얘기를 많이 했어요. 최근엔 “코로나가 심해서 어린이집 안 갈래요”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코로나 상황이 나빠지면 안 보내긴 했거든요.

신) 어린이집을 갔다 안 갔다 했군요.
차) 아까 말씀 드렸듯 놀이센터를 다니면서 아이 상태가 정말 좋아졌거든요. 센터 선생님들도 그렇고,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그렇고 다들 재윤이가 너무 좋아졌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어린이집을 갔다 안 갔다 하니까 아이 상태가 확 나빠졌어요.
신) 코로나 2년 동안 모두가 힘들었잖아요. 재윤이처럼 일부 기능에 발달 지연을 겪던 아이들은 직격탄을 맞았어요. 아이들의 뇌는 만 세 돌까지 많이 바뀌어요. 만약 재윤이가 규칙적으로 어린이집을 다니고, 병원에 가 치료도 꾸준히 받았다면 많이 달라졌을 거예요. 사회성을 관장하는 뇌를 그만큼 자극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정말 코로나가 원망스럽네요.

차) 이제 어쩌면 좋죠?
신) 우선 ‘발달 지연은 발달 장애가 아니다’라는 주제로 유튜브에 올려둔 강의가 있는데요, 그걸 꼭 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재윤이가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세요. 사실 재윤이는 사회성이 좀 부족한 것, 그리고 융통성이 없다는 걸 제외하면 별 문제가 없거든요. 그럴 때 필요한 게 바로 다양한 경험입니다. 다양한 경험을 해야 뇌를 골고루 쓰거든요. 아이가 암기를 잘한다고 똑똑한 게 아니에요. 아이 시각에선 세상엔 모르는 게 너무 많잖아요. 그림도 그려보고, 실로폰도 두드려보고 여러 활동을 자연스럽게 해야 뇌가 고르게 발달합니다.
차) 사실 제가 불안하고 걱정이 많다 보니 아이에게 못하게 하는 일도 많거든요.
신) ‘이건 하고, 저건 안돼’ 이런 식의 태도는 뇌 발달에 좋지 않습니다. 저는 발달 지연을 겪는 아이를 치료할 때 전체 머리를 다 쓰게 하기 위해서 정말 별의 별 방법을 다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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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인지 저하엔 ‘플로어타임’ 치료 효과적 

차) 저번에 대학병원을 방문 했을 때 자폐 스펙트럼 장애 검사도 예약하고 왔는데요, 받지 않아도 될까요? 안 받자니 불안해요.
신)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지 알아보는 검사가 생각보다 그렇게 정확하지가 않아요. 점수가 높게 나왔다 해도 평생 높은 것도 없고요. 당장 치료하는 데 큰 영향을 주지도 않아요. 예후 예측도 잘 안 되고요. 자폐 검사에 연연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이 검사보다 유치원 잘 보내고, 필요한 치료를 제때 받는 게 훨씬 중요합니다.
차) 코로나가 이렇게 심한데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라는 말씀이신가요?
신) 재윤이 같은 아이라면 저는 마스크 잘 씌워서 보내겠어요. 뇌가 한창 발달할 시기잖아요. 재윤이는 특히 발달이 좀 느린 부분이 있고요. 이 시기를 놓치면 안됩니다.

차) 혹시 재윤이가 받으면 좋은 치료가 있을까요?
신) 이런 아이에게 ‘플로어타임’ 치료가 아주 효과적이에요. 플로어타임은 놀잇감을 가지고 놀면서 아이가 가진 고정관념이나 틀을 깨게 만드는 치료법이에요.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치료랑은 접근법이 좀 다르죠. 저를 찾아오는 아이들 중엔 그런 치료를 받아서 불안이 더 심해진 경우가 왕왕 있어요. 이런 아이들에게 플로어타임 치료를 하면 효과가 확실합니다. 단순히 놀잇감을 가지고 놀아서 좋은 게 아니에요. 놀이를 매개로 아이의 마음을 열기 때문에 좋은 거죠. 아이가 스스로로 사회성을 발전시켜 나가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놀이치료도 종류가 엄청 많거든요. 놀이치료라고 다 같은 게 아닙니다.
차) 제가 사는 도시가 서울처럼 큰 도시가 아니라 플로어타임 치료를 하는 곳이 있을지 걱정이네요.
신) 미국에서 영유아의 뇌를 심도 있게 공부할 기회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분야에 대한 투자가 전무해요. 그러니 아이의 뇌 발달을 제대로 보는 의사나 치료사를 찾기 힘든 거예요.

차) 교수님과 상담 받게 돼 정말 다행입니다.
신) 그리고 하나 더 말씀 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어머니의 불안이 심하면 아이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차) 네, 사실 저도 정신과 치료를 받으려고 예약을 해두었어요. 사실 제가 우울하고 화도 많거든요. 제가 먼저 우울감을 털어내고, 자기 강박을 없애야 아이의 불안이 줄어들 것 같아요.
신) 정말 잘 생각하셨습니다. 치료 빨리 받으시면 좋을 것 같네요.

신의진 교수의 총평 및 솔루션
① 발달 지연은 발달 장애가 아닙니다. 아이의 뇌는 각 기능마다 다른 속도로 발달할 수 있어요. 발달이 늦을 땐 다양한 활동으로 아이 뇌를 자극시켜 주세요.
② 코로나 때문에 아이를 어린이집 혹은 유치원에 보내야 할지 고민되시죠? 하지만 규칙이 존재하는 단체 생활이야 말로 사회성 발달에 아주 좋은 환경입니다. 집단 생활을 적절하게 하지 못하면 사회성 발달에 직격탄을 맞을 수 있어요.
③ 사회성이 떨어지는 아이에겐 ‘플로어타임’ 치료가 효과적이에요. 놀잇감으로 아이의 마음을 열어 스스로의 틀을 깰 수 있게 만들어주거든요.

☞아이는 소중합니다. 그런데 삶은 불확실하죠. 때문에 아이를 키운다는 건 누구에게나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일 겁니다. 여기에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위협이 얹어졌습니다. 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가 hello! Parents와 함께 [괜찮아,부모상담소] 시즌 2를 연 이유입니다. 신의진 교수는 지난 1월부터 아이에 대한 고민을 가진 양육자를 비대면으로 직접 만나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말 못할 육아 고민, 여러분도 갖고 계시진 않은가요? 신의진 교수의 [괜찮아,부모상담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사연 신청은 hello! Parents 홈페이지를 구독한 뒤 게시판에 올려주세요. 메일(helloparents@joongang.co.kr)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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