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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째 의사과학자' 서울대 최형진, 그를 이끈 조부의 한마디 [오밥뉴스]

중앙일보

입력 2021.09.20 06:00

업데이트 2021.09.28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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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밥상머리 뉴스, 오밥뉴스는 걱정 많은 부모를 위해 매주 월요일, 『미래부모를 말하다』를 전해드립니다. 이번 편은 최형진(45) 서울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의 이야깁니다.

할아버지 밥상머리 이야기에 푹 빠진 소년

내분비내과 의사이면서 뇌과학자인 최형진(45) 교수를 지난 6월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대에서 만났다. 그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본능에 이끌리지 않고 자기조절능력을 발휘하며 자기 삶을 스스로 꾸려가는 것"이라며 그도 "아이에게 '자율성'을 길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내분비내과 의사이면서 뇌과학자인 최형진(45) 교수를 지난 6월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대에서 만났다. 그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본능에 이끌리지 않고 자기조절능력을 발휘하며 자기 삶을 스스로 꾸려가는 것"이라며 그도 "아이에게 '자율성'을 길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그는 ‘의사과학자(physician scientist)’다. 내분비내과 임상교수로 환자를 진료한 경험을 바탕으로 뇌 과학 연구로 대사질환의 근본 원인을 밝히는 일을 하고 있다. 한성과학고,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분자유전체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부친은 당뇨병 치료의 권위자 최수봉 건국대 명예교수, 조부는 고(故) 최현 전 가톨릭의대 생리학 교수다. 말하자면 3대를 이어 의학에 몸을 담고 있는 셈이다.

최 교수는 ‘과학자’로서 롤 모델이자 영향을 준 사람으로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꼽는다. 그의 조부는 경성대 의학부(서울대 의과대학의 전신·1946년 졸업) 출신으로 기초의학 연구자와 교육자로서 삶을 살았고, 아버지도 서울의대 출신으로 인슐린펌프를 개발하는 등 평생 의사과학자의 삶을 살았다.

그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꼽는 순간은 초등학교 시절이다. 부모님이 연구를 위해 해외 유학길에 오르게 되면서 그는 할아버지 손에 컸다. 당시 조부는 50대 초반, 현직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을 때였다. 집엔 TV가 없는 대신, 과학 관련 서적이 가득했다. 그는 그 덕(?)에 어떤 드라마가 인기인지, 어떤 정치인이 당선됐는지는 몰랐지만, 과학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키웠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어린 손주에게 밥상머리에서 과학 이야기를 들려주는 걸 좋아했다. “하루는 ‘형진아, 달은 안 떨어지는데 사과는 떨어지는 이유가 뭘까?’라며 문제를 던져주셨어요. 그때 중력, 만유인력의 법칙에 대해 처음 들었던 것 같아요. 또 근의 공식 얘길 꺼내시는 거예요. 수학 공부 그런 것 때문이 아니고요. 그저 할아버지께서 그런 주제로 대화하는 걸 무척 좋아하셨어요. 엄청 흥분하셔서 말씀하시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해요.”

최 교수는 “돌이켜보면 할아버지와의 ‘밥상 대화’가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때 친구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는데 친구 부모님께서 부동산, 주식 이런 얘기를 하셔서 어색했어요. ‘그런 게 중요한 건가’하는 생각은 지금도 해요. 집을 어디에 살 건지 팔 건지, 저는 그런 건 아내에게 알아서 해달라고 맡겨요. 물론 아내는 이런 저에게 관심사가 편향돼 있다고 지적도 합니다. (웃음)”

최 교수는 아이의 성장에서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어찌 보면 저는 통제되고 제한된 환경에서 자랐어요. TV가 없으니 심심할 틈이 많은데, 손에 잡히는 건 과학책이고, 어른들도 주로 나누는 대화가 과학에 관한 거라면, 아이들도 그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저나 제 동생들이 모두 이과를 전공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는 자신이 자라온 환경을 현재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비슷하게 적용하고 있다. TV는 없다. 채널을 돌리면 무작위로 콘텐트가 쏟아져 계속 보게 되기 때문이다. 대신 빔 프로젝터로 아이들과 정해진 시간에 SF영화를 함께 골라 본다. 책장에는 연령에 맞게 과학책을 주로 놓되, 매주 서점에 가서 아이가 원하는 책을 직접 고르게 한다.

최근 아이가 고른 책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아빠를 닮아 과학소설을 좋아하는 12살 아들은 그와 함께 영화〈스타워즈〉 시리즈도 외전까지 총 11편을 모두 봤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아이에게 무엇을 주고, 무엇을 제한할까요? 부모님이 어느 정도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해라? 미래인재의 핵심은 자율성

최 교수는 "자율성은 대학에 가면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며 그의 자녀들에게도 "'네가 동의하지 않으면 아빠 말이라고 무조건 순종할 필요는 없다'고 원칙을 정해주고 말로 최대한 설득한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최 교수는 "자율성은 대학에 가면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며 그의 자녀들에게도 "'네가 동의하지 않으면 아빠 말이라고 무조건 순종할 필요는 없다'고 원칙을 정해주고 말로 최대한 설득한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최 교수는 4차 산업시대 인재의 특징으로 자기주도성과 자율성을 꼽는다. 서울대 의대 해부학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여러 번 학부생, 대학원생들에게 얘기해요. ‘이제 더 이상 고등학생이 아니다. 비판적이고 창의적으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타율적으로 시키는 일만 편하게 하려고 해선 안 된다’고요. 이제부터는 학교나 부모님이 시키는 것을 잘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이 뭘 원하는지 어떤 것에 열정을 쏟을 것인지 찾아야 하니까요.”

그는 “자율성은 대학에 오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잘 아시다시피 이제는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잖아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연결하여 사용할 줄 아는 인재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어려서부터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한 경험이 많아야 해요. 그런 면에서 저는 아이들에게 ‘부모 말 잘 들어라, 순종하라’고 가르치진 않아요. 대신 ‘네가 동의하지 않으면 부모 말일지라도 듣지 않아도 된다’고 해요. 일방적인 건 없어요. 제 의견을 따르게 하려면 아무리 긴 시간이 걸려도 저도 아이를 설득해야 해요.”

시간이 걸려도 아이를 설득하라 

최형진 교수는 뇌 신호의 착각에서 부모의 화가 비롯된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최형진 교수는 뇌 신호의 착각에서 부모의 화가 비롯된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토요일 오후 3시쯤 갑작스럽게 가족동반 모임이 생긴 적이 있다. 그는 10분, 20분…. 말로 아이를 충분히 설득했는데도 아이가 끝내 동의하지 않자, 그는 모임을 취소하는 걸 택했다.

“예약금을 손해 볼 수도 있고, 지인들을 실망시킬 수 있죠. 제가 감당합니다. 아이도 자기 생활에 대한 계획이 있는데, 당황스러운 것이 당연하니까요. 그래서 ‘사전 알림’을 만들었어요. 장거리 외출은 최소 일주일 전에는 알림을 줘요. 제가 올해 미국으로 가족과 연수를 떠나는데 아이와 아직 합의가 되지 않았어요. 설득 끝에 ‘한 달 살기’까지 아이가 동의를 했는데, 설마 돌아오겠다고는 않겠죠? 그럼 그때 가서 또 설득을 해야죠. (웃음)”

아이를 장시간 말로 설득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 부모들은 아이가 부모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기 때문에 결국엔 화를 내게 된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뇌 과학자로서 식욕의 근본 원리를 연구 중인 최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부모가 화를 내는 것은 부모의 뇌에서 ‘화를 낼 때다’라고 뇌 신호를 착각했기 때문이라는 것. ‘어떤 면에서 화를 낼 정당한 이유가 있으니 화를 낸다’고 부모 스스로 생각한 것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화는 뇌신호… 멈추는 경험이 가져오는 변화

"생각한 대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자기조절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최 교수. 아이를 키우며 화가 날 때면 아내는 피아노를 치며 화를 가라 앉힌다고 한다. 우상조 기자

"생각한 대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자기조절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최 교수. 아이를 키우며 화가 날 때면 아내는 피아노를 치며 화를 가라 앉힌다고 한다. 우상조 기자

그는 ‘식욕’을 예로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불안하고 초조한 감정이 생기면 자꾸 먹으려 하고, 특히 화가 나면 폭식을 하는 경향을 보인다. 불안감, 초조함 등의 감정은 단지 뇌의 작용일 뿐인데, 그 충동성을 억누르지 못하면서 폭식이 습관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데, 이 때문에 비만과 대사질환이 생겨난다.

그러나 먹는 행동을 억제하고, 칭찬을 받는 등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점차 나쁜 행동을 줄일 수 있게 되고, 결국 나쁜 습관을 교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가 연구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생각하는 대로 행동할 것인가’에 있어요. 먹지 않기로 마음먹었으면 먹지 않는, 자기조절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죠.”

부모가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것도 이와 같다.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면, 화가 나는 순간 이것이 뇌의 신호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멈출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지만, 한 번 멈추고 두 번 멈추는 긍정적인 경험을 하고, 자기조절 능력을 갖게 되면 점차 화를 덜 내는 부모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제 아내는 피아노를 치면서 참아요. 사실 저는 화를 거의 내지 않는 편인데, ‘이게 과연 화를 낼만한 일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면 세상에 화낼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깨닫게 돼요. 자꾸 노력하는 거죠.” 일상생활에서 생각한 대로 행동하는 연습을 꾸준히 하는 것, 이것이 대사질환을 극복케 하는 원리이자,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길과도 일맥상통한다는 뜻일 것이다.

거북이 키우기로 함께 배우는 과학

아이와 함께 놀아주고 함께 책을 읽으며 대화하는 '젊은 아빠'인 최 교수. "아이에게는 언제나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우상조 기자

아이와 함께 놀아주고 함께 책을 읽으며 대화하는 '젊은 아빠'인 최 교수. "아이에게는 언제나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우상조 기자

초등학생 두 자녀를 둔 그는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했다. “만약 아빠라는 사람이 무섭고 어려운 사람이라면, 아빠가 되지 않는 게 목표예요. 저는 ‘친구’가 돼주고 싶어요.” ‘롤 모델’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부모가 하는 일이 참 좋은 일이라는 걸 알게 해주고 싶어요. 좋아하는 걸 열심히 하다보면, 아빠처럼 재미있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 해서요. 아들은 도마뱀 과학자가 되고 싶어 해요. 제가 아이의 진로를 찾는 데 롤 모델이 되어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래서 실험실에도 데려오곤 해요.”

최 교수는 동물 키우기가 아이들에게 유익한 과학 교육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생명에 대한 존중감, 자연에 대한 신비감을 느낄 수 있고요. 서식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한 도구들을 준비하면서 과학의 원리도 깨달을 수 있어요. 저희는 큰 거북이를 키우는데, 거북이가 일광욕을 할 수 있게 전구를 구입해야 합니다. 아이와 함께 홈페이지에서 전구를 고르는데, 전압(볼트)·전력(와트) 개념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어요.”

그는 생활 속에서 수학, 과학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하는 것이 교육적으로도 훨씬 효과가 크다고 했다. “‘수학 과학을 열심히 공부하면 결국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더 깊이 연구할 수 있구나’하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얘기다. 입체도형, 함수, 수열 등 수학 개념을 코딩 프로그램을 통해 맛볼 수 있도록 아이와 게임을 같이 하거나, 코딩 프로그램으로 게임을 만들어보는 것도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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