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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떠난 중공, 새 영웅 ‘원자탄의 아버지’ 찾기 논쟁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778〉 중·일전쟁(1937~1945) 시절 베이징(北京), 칭화(淸華), 난카이(南開) 3개 대학이 윈난(雲南)성 쿤밍(昆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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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191) 허쩌후이와 첸싼장
▲1980년대 말 손자들을 데리고 중산공원에 국화 구경을 나온 허쩌후이(왼쪽)와 첸싼장(오른쪽). 서구에서는 이들을 ‘중국의 퀴리 부부’라고 불렀다. 김명호 제공 1932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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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수폭 만든 중국의‘퀴리 부부’허쩌후이와 첸싼장
1980년대 말 손자들을 데리고 중산공원에 국화 구경을 나온 허쩌후이(왼쪽)와 첸싼장(오른쪽). 서구에서는 이들을 ‘중국의 퀴리 부부’라고 불렀다. 김명호 제공 1932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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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수폭 만든 중국의‘퀴리 부부’허쩌후이와 첸싼장
1980년대 말 손자들을 데리고 중산공원에 국화 구경을 나온 허쩌후이(왼쪽)와 첸싼장(오른쪽). 서구에서는 이들을 ‘중국의 퀴리 부부’라고 불렀다. 김명호 제공 1932년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