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성운의 역사정치] '피의 숙청' 인조반정 그러고도 살아남은 '적폐'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고 광해군이 쫓겨났습니다. 광해군 치하에서 숨죽여 온 서인(西人)의 세상이 열린 것입니다. 집권 후 이들이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적폐 청산'이었습
-
인목대비 김씨, 재물을 탐하다
[월간중앙] 원래 친정은 큰 부자 아니었으나 입궁 후 재산 크게 불려 … 지도자는 인정·이익에 매몰되지 않는 ‘심치체(審治體)’ 지켜야 광해군은 임진왜란 후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
-
광해군이 외교에서 명분 대신 실리를 선택한 까닭은
한반도는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전반까지 40여 년 간 외침을 네 차례나 겪었다. 임진왜란(1592)·정유재란(1597)·정묘호란(1627)·병자호란(1636)이다. 왜란이 끝
-
[이덕일의 事思史: 조선 왕을 말하다] 서른세 살 ‘준비된 임금’ 두 살 적자와 후계를 겨루다
광해군은 즉위 후 대동법을 시행해 민생 개혁의 시동을 걸었다. 큰 사진은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대동법 시행비. 작은 사진은 대동법 시행세칙을 담은 호서(충청) 대동사목. 사진가
-
'광해군과 노무현은 닮은 꼴' 인터넷 괴담
국회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후 사이버 공간에선'광해군 괴담'이 돌고 있다. 다음 카페와 오마이뉴스 등을 비롯해 인터넷 게시판에는 광해군과 노 대통령을 직간접으로 비교하는 출처 불명
-
드라머
□…MBC-TV 『조선 왕조5 백년-회천문』(14일 밤 9시45분)=좌포장 한희길은 대사헌 이이첨과 공모, 강변 칠우들에게 영창대군 왕위옹립 역모 죄를 뒤집어씌운다. 게다가 「용이
-
(132)연안 김씨
연안 김씨는 조선조 성종∼인조대의 손꼽히는 명문이었다. 연산조의 무오·갑자사화, 중종반정과 기묘사화, 임진·정유왜란, 광해의 폭정과 인조반정 등으로 이어지는 격동기에 중앙정계에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