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1987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6·29로부터 34년, 정치가 나아졌습니까?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하는 모습. [ 중앙포토]
‘나는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본다. 계급 간 불평등 구조는 훨씬 빠른 속도로 심화되어 왔으며, 과거 교육과 근면을 통해 가능했던 사회이동의 기회는 크게 줄어들었다. 어느덧 서울의 강남을 중심으로 상층계급 문화가 발전하고 소득과 교육의 기회가 점차 정비례하는 현실이 되었다. 그러면서 중산층 상층의 특권화된 사회 부분과 나머지 서민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 부분과의 괴리는 심화되었다.’

한국 정치학계의 거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쓴 책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첫 문단입니다. 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정당이 중심이 되는 민주정치는 매우 보수적 이념의 범위 안에서 기존의 정치 행태를 지속함으로써 사회적 기대와는 거리가 먼 정치 계급의 쟁투장에 가까운 것이 되고 말았다. (중략) 사회적 불만이 팽배해 있지만 정상적인 제도와 절차를 통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 또한 없기 때문에, 뭔가 강렬한 변화를 바라는 사회심리가 한국 정치의 한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최 명예교수가 이 책은 쓴 것은 10여 년 전입니다. 책이 나온 뒤부터 지금까지의 시간 동안 그가 지적한 우리의 현실이 나아졌나요? 

‘잘 알다시피 민주주의를 수립하는 데에는 많은 사람들의 투쟁과 희생이 있었다. 그런 투쟁와 희생이 있었기에 그야말로 ‘범국민적’이라 부를 만큼 감동적인 대규모 시민 참여의 민주화 운동이 가능했고 이를 통해 권위주의 통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민주주의를 사회적으로 안착시키고 내용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단계에서 우리는 그 이전과는 매우 다른 양상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 민주주의는 더 이상 사람들의 기대와 열정을 만들어내는 단어가 아니다. 일반 국민은 물론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사람조차 한국 민주주의의 현 상황에 대해 무관심하고 냉담하며 비판적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민주주의를 통해 기대했던 것과 한국 민주주의가 실제로 가져온 결과 사이의 격차가 만들어 낸 실망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최 명예교수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권위주의 통치에서는 벗어났지만, 그때 기대했던 새 세상과 실제로 마주한 현실의 간격이 크다고 말합니다. 책을 조금 더 인용해 보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대면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실업과 고용 문제, 사회정의와 복지, 재분배 정책의 문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정치제도 개선의 문제, 공직자 부패 척결 문제, 탈냉전과 평화에 입각한 남북 관계의 발전, 교육 문제, 중앙집중화의 완화 등등. 이런 과제들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의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해 당사자들 사이에서 갈등과 경쟁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이 정당 간의 정책 결정에서든, 신문이 주도하는 여론 시장에서든 중심적 이슈가 되어 서로 다른 주장과 요구가 갈등하고 경쟁하는 것을 발견하기 힘들다. 아주 지엽적 소재를 동원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 위한 목적으로 감정 섞인 설전을 주고받는 것이 고작이거나 혹은 어느 정도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더라도 정당 각자의 정책적 견해가 어떻게 다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최 명예교수의 ‘뼈 때리는’ 비판은 계속됩니다. 

‘한국의 현대 정치사에 있어서 집권 세력은 언제나 사회에 대해 대표성을 확대하기보다 측근 정치에 의해 폐쇄성을 강화해 왔다. 이는 민주주의 이후에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 내에서 운동적 요소의 후퇴는 곧 개혁의 후퇴와 실종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다시 정부 밖의 개혁 지향적인 지지 세력의 이탈을 가져오기 때문에 정부의 보수성은 더욱 심화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5공화국과 노태우 정부를 통해 유지되었던 대구·경북(TK)과 같은 엘리트 카르텔 구조는 이후 김영삼 정부에서는 부산·경남(PK), 김대중 정부에서는 호남 인맥으로, 노무현 정부에서는 ‘친노 386’으로 이름만 다를 뿐 폐쇄 회로식 권력 운영 방식은 변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어제 1987년의 민주화 투쟁, 6·29 선언, 헌법 개정으로 이룩된 ‘민주화’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른바 ‘87체제’의 34년, 본질적인 민주주의 발전과는 거리가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정당 정치 측면에서는 정체와 퇴행의 역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저를 포함한 50대 이상의 모든 국민이 노 전 대통령 타계를 계기로 그 시절에 가졌던 희망과 열정을 잠시 떠올려 보자는 뜻에서 이 글을 썼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삶과 6·29 선언 전후의 한국 정치를 정리한 기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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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rning's pick

1. 법원이 막은 공수처의 무리한 수사

손준성 검사에 대한 공수처의 구속영장 청구가 법원에서 기각됐습니다. 체포영장이 기각되자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지극히 이례적인 수사 방식이 법원에서 제동이 걸린 것입니다. 이런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된 공권력 사용을 더는 하지 말자는 게 ‘민주화’의 정신입니다. 대상이 누구든, 그가 어떤 죄를 지었든 법 집행이 원칙에서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공수처장이 국민에게 사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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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윤석열 캠프 참모 300명

26일 현재 직함을 가진 참모가 300명에 육박한다.’ 윤석열 캠프를 취재한 기사의 한 대목입니다. 정치인, 교수, 변호사, 전직 관료, 전직 언론인 등이 캠프로 모입니다. 이재명 후보 캠프의 상황도 다르지 않습니다. 정권 교체 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힘을 보태겠다는 뜻이 없지는 않겠지만 대선 뒤의 보상(공천, 발탁, 취업 등)을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지식인들이 대통령 선거에 몰려 다니며 ‘베팅’하는 풍토가 정치 후진성의 이유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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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금융지주 수익 사상 최대

3분기 실적을 발표한 국내 5대 금융그룹이 신기록 행진 중이다. KB금융과 신한금융은 올해 최초로 당기순이익 ‘4조원 클럽’에 입성할 전망이다. 금융지주 수익의 70%가 대출에서 나옵니다. 집값, 전셋값이 올랐으니 대출이 불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은행들이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돈을 법니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가 약속했던 ‘성실히 일하는 사람이 잘사는’ 사회의 모습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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