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넷째 주 <12호>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49) 2019.12.20
고객은 '봉'인가? 은행이 왜 파생상품 권하나 했더니

영국 금융감독원은 80대 노인들에게 장기금융 상품을 권유한 HSBC은행에게 1050만 파운드의 벌금을 부과하고, 고객 2000여명에게 2930만 파운드의 보상금을 지급하라고 통보했다. 또한 임직원에게 지급한 성과급을 환급하기로 결정했다. 노인고객들은 평균 83세로 기대수명이 2~3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은행에선 만기 5년 이상의 장기상품을 3억 파운드나 팔았던 것이다. 피해 고객 중에는 평균 기대수명을 훌쩍 넘긴 93세 된 노인도 있었다.

미국 최고의 투자은행으로 꼽히는 골드만삭스의 직원이 회사를 그만두며 매체에 기고한 기사 때문에 세계 금융가가 술렁인 적이 있다. 골드만삭스의 경영진은 고객의 이익보다 회사의 수익을 더 챙기고 고객을 봉(muppets)이라 지칭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파생상품 판매 회의에 들어가면 고객을 위한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은행도 이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하나은행, 우리은행 창구직원들이 금융지식이 부족한 고객들에게 독일의 금리와 연계한 위험한 파생상품을 안전한 상품이라고 설명하여 각각 4천억 원 가량 팔았다. 일부 증권사에서 판 것을 포함하면 전체 1조원 규모다. 이들은 고객에게 ‘독일이 망하겠느냐, 독일이 망하지만 않으면 원금 잃을 염려가 없다’고 설득했다.

은행의 예상과는 달리 독일의 금리는 마이너스로 떨어졌고 고객들은 대규모의 손실이 불가피했다. 은행 직원들이 권유한 대로 이 상품이 그렇게 좋은 것이면 은행도 투자했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관투자자가 외면한 위험상품이었으며 투자한 고객 대다수는 개인이었다. 우리은행은 투자 경험이 없고 난청인 79세 치매 노인에게도 파생상품을 팔았다.

은행은 왜 개인 고객들에게 이런 상품을 권유했을까. 파생상품은 고객이 이익을 보든 손실을 보든 상관없이 일정액의 수수료를 얻는 상품이다. 예금을 받으면 보험료도 내야 하고 대출로 이어지면 대손충당금도 쌓아야 하지만 파생상품은 전혀 위험을 부담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은행으로서는 이보다 좋은 상품이 없다. 경영진은 이런 상품을 팔도록 유도한다. 직원 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다.

일전에 금융회사에 근무하는 후배가 찾아와 소식을 나누다가 요즘 직장 분위기를 전했다. 과거에는 금융회사가 안전한 직장이었는데 지금은 언제 그만둘지 모를 정도로 경쟁이 치열해졌다고 한다. 실적이 부진하면 자리를 뺏기고 후선에 있다가 사직을 강요받는다고 호소했다. 이번 사태도 영업점에서 실적을 올리기 위해 무리한 판매 마케팅을 한데서 빚어졌다.

우리나라의 금융업은 진입장벽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편이다. 그만큼 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는 셈이다. 금융회사는 여타 사기업과 달리 공공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작금의 금융회사의 영업행태는 기대보다 못하다. 결국 금융감독원은 파생상품을 판 두 은행에 손실액의 최대 80%까지 역대 최고 수준의 배상을 결정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은행의 신뢰가 실추된 것이다.

이제는 제도개선이 필요한 때다. 어떤 대안을 검토해볼 수 있을까?

첫째, 금융회사가 위험상품을 팔 때 수수료만 챙기고 위험을 고객에게 떠넘겨서는 안 되겠다. 상품판매액에 비례해 회사도 일정비율 투자하기를 권한다. 벤처투자회사가 투자조합을 결성해 자금을 유치할 때 자신도 10% 이상 투자하는 원리와 같은 이치다. 지금까지는 고객이 손실을 보더라도 은행은 상관하지 않았으나 앞으로는 고객과 서로 상생하는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은행으로서도 위험부담이 있으니 좋은 상품을 선별할 것이고 지금처럼 창구에서 함부로 권유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금융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금융 선진국들은 어린이부터 노인을 상대로 다양한 금융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정규 교육과정에서 금융교육을 의무화하거나, 파생상품과 같은 복잡한 상품을 가르친다. 특히 영국은 2014년 9월부터 초등학교 과정에 금융교육을 의무화했다. 최근에는 시민들의 금융교육을 위해 연령대별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금융교육이 거의 부재한 편이다.

셋째, 금융회사 직원들에게 과도한 목표를 주고 경쟁을 부추기는 영업형태는 지양해야 한다. 내부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자칫 베어링 증권사의 사례처럼 회사를 위험으로 몰아갈 수 있다. 물론 영업실적이 뛰어난 직원은 그에 걸맞은 성과급을 지급하되 그렇지 못한 직원들에게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된다. 공부를 못한다고 자식에게 밥을 덜 줄 수는 없는 이치다.

이 세상에 안전하면서도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금융상품은 없다. 수익률이 높다면 그만큼 위험부담도 큰 법이다. 이런 원리를 이해하고 높은 수익을 선전하는 금융상품은 이것저것 따져보고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금융회사 직원들도 팔면 그만이라는 근시안적 사고를 버리고 고객을 가족처럼 생각해서 금융상품을 권유해야 한다. 그래야만 거래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아름다운 인생학교 교장

'더, 오래' 인기 칼럼 읽어보기

세계 1위 '파워맨'이 채식주의자라고?

채소와 과일, 정제하지 않은 통곡물을 많이 먹으면 몸에 좋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아는 사실입니다. 다만 실천하지 못할 뿐이죠.


크리스마스에 먹는 통나무 닮은 빵

초콜릿 시트에 크림을 발라 돌돌 말아준 뒤 초콜릿 버터크림으로 겉 부분을 덮어주어 거친 통나무처럼 장식하면 끝.


임진왜란 전쟁터에도 신문 배달됐다

조보는 정부의 정책 사안을 비롯한 여러 가지 소식을 전달하는 소식지로 현대의 신문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더오래 봄> 구독하기

오늘 읽으신 더오래 봄 어떠셨나요?
자유롭게 평가해주세요.

좋았다 아쉬웠다

더 많은 이야기가 읽고 싶다면
<더오래> 바로 가기


<더오래봄>은 매주 화요일 저녁 6시 구독 신청하신 이메일로 발송됩니다.
궁금하신 점이나 불편사항은 더오래팀 이메일 (theore@joongang.co.kr)로 문의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