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셋째주 <89호>

여러분, 건강을 평소에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내 건강 상태를 잘 살피기가 쉽지 않지요. 그런데 우리 몸 어딘가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는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화장실! 박용환 필진이 병원에 가지 않더라도 내 대변을 살피면서 건강을 체크하는 법을 정리해드립니다. 이제부터 볼일을 보고 물 내리기 전 뒤를 슬쩍 한번 돌아보자고요.


박용환의 면역보감(103) 2021.06.14
매일 건강검진···물 내리기 전 대변 살펴보세요


군대 시절에 최전방 GP라는 곳에서 근무했다. 최근 북한과의 화해 무드를 잠깐 타면서 많이 알려진 곳인데, 휴전선 라인도 아니고 그 안쪽에 서로 경계 초소를 세워둔 곳을 말한다. 이곳은 적을 감시할 수 있는 산꼭대기에 땅속 벙커를 파 생활공간을 만들고, 농구장만 한 운동 공간이 있고, 경계 초소 몇 군데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공간에서 서른 명 남짓한 군인이 24시간 경계 근무를 하면서 지하 벙커 생활을 2~3개월 동안 하게 된다. 한 주에 2번 정도 보급 차량이 오는 것 말고는 외부와 차단된 완벽한 고립 공간, DMZ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한 것은 대한민국을 보호한다는 자부심이었다.

이런 곳에서 생활하다 보면 개인의 건강이 중요하다. 자칫 아프기라도 하면 고립된 곳에서 제대로 된 처치도 못 받은 채 며칠을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 전체를 책임지는 소대장이 할 일 중에 각 대원의 건강을 살피는 것이 있다.

당시에 소대장이 한 말 중에 “나는 매일 아침 똥간에서 여러분들의 대변을 살핍니다”라고 한 말이었다. 근무하던 당시는 화장실 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땅을 파서 드럼통을 묻고 판자를 걸쳐 발판으로 삼아 볼일을 보게 하였다. 어린 시절 외갓집에서 훨씬 큰 규모의 뒷간이 있었기에 별 거부감이 없었지만, 평생 수세식 화장실만 쓰던 대원은 처음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 ‘광해’를 보면, 왕이 행차하다 변을 보고 싶다면 매화틀(대변을 보는 휴대용 변기틀, 왕의 변을 매화라고 불렀다)을 마련하여 볼일을 보게 하고, 곧바로 어의가 뛰어나와서 변 상태를 살펴본다. 아마 소대장은 역사 시간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나 보다. “왕의 건강을 당시의 의사들이 대변 소변을 보면서 관찰했는데, 나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공용 공간이라 서로의 변이 섞여 있지만, 개인의 건강은 개별적인 면담을 통하면 되고, 전체 소대원의 건강이 그곳에서 나타난다는 점이 재밌었다. “집단생활을 하는 이곳에서는 장염이나 전염병이 가장 무섭습니다. 그러니 누군가 설사한 흔적이 보이면 바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왕 개인의 건강상태를 돌보는 어의는 변에서 무엇을 살폈을까? 눈으로 보고, 냄새를 맡고, 또 무엇을 했을까? 소변은 당뇨 검사를 위해서 맛까지 봤다고 하는데 설마 대변을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고. 나중에 동의보감 편을 보면서 대변을 살피면서 평소에 건강검진을 할 수 있는 법을 정리해 보았다.

첫째, 대변은 매일 봐야 한다. 하루에 한 번 혹은 두 번 보면 정상이다. 변을 담아두는 장은 음식물을 하루 정도는 보관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니 끼니때마다 변을 보지 않아도 된다. 하루에 세 번 이상 변을 보거나, 특히 신경이 예민해져 자주 보는 것을 과민성대장증후군이라고 한다. 이때 변이 지나치게 묽으면 설사일 것이니 장에 염증이 있는지 체크한다. “저는 3일에 한 번 변을 보는 데도 불편한 것이 없어요. 그러면 정상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받는 경우도 있다. 아니다. 변이 몸에 오래 있어 좋을 게 뭐가 있는가. 변은 독소를 일으켜 염증 반응을 생기게 하니 빨리 빼는 게 좋다. 변이 딱딱하면 변비이고, 그렇지 않은데도 하루 만에 보지 못하면 장운동이 부족한 장무력증이다.

둘째, 굳기가 찰져야 한다. 위에서 말했 듯이 너무 딱딱하면 수분부족이나 식이섬유 부족으로 인한 변비가 되고, 너무 무르면 설사가 된다. 굳기를 알기 위해 굳이 찔러 보지 않아도 된다. 그냥 한 번 쓰윽 보기만 해도 느낌이 온다. 바나나 모양처럼 나오면 최고겠지만, 일정한 정도의 모양만 갖추어도 통과다.

셋째, 색깔이 황갈색이어야 한다. 아이들은 황금색의 노란 변이 건강한 상태다. 하지만 성인이 그런 색의 변을 본다면 영양이 부족한 상태일 수가 있다. 변에서 붉은 피가 묻어 나오면 대장에서 출혈이 있는 경우다. 흑색의 변이 묽게 나오면 위장 출혈이어서 피가 소화되어서 나오는 상태일 것이다. 진한 녹색의 변은 담즙대사 이상으로 간의 상태를 점검해 봐야 한다.

넷째, 악취가 적어야 한다. 변에서 향기가 날 리는 만무하지만, 적어도 아주 심한 악취는 나지 않아야 한다.

다섯째, 방귀는 평소에 적당히 배출해야 한다. 몸에서 나오는 가스의 양을 측정해 방귀로 나가는 횟수로 계산하면 하루에 4~10회 정도는 정상적이라고 한다. 너무 심하게 많이 배출하거나 가스의 냄새 역시 악취가 심하다면 장 상태를 다시 점검해 보자.

1년이나 2년에 한 번 건강검진 날짜가 잡히면 긴장이 된다. 검진 1주일 전부터는 경건한 마음으로 아주 착한 생활을 하는 경우도 보았다. 누구나 건강이 나쁘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다. 건강은 대학입시 시험이 아니다. 1년에 한 번 치르는 시험 때문에 긴장할 것이 아니라, 날마다 나를 점검해야 한다. 날마다 할 수 있는 건강검진은 나의 대변을 살피는 것이다. 내 몸을 통과해 나온 것으로 나의 상태를 유추할 수 있다. 내 몸이 왕이라 생각하고 변을 살펴보자.

하랑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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