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김성주의 귀농귀촌이야기(93)
귀촌여지도① 경기도 편
고산자 김정호 선생은 『대동여지도』를 남긴 위인이다. 조선시대 가장 많은 지도를 제작하였고, 가장 많은 지리지를 편찬한 지리학자이다. 그는 『청구도』·『동여도』·『대동여지도』란 3대 지도와 『동여도지』·『여도비지』·『대동지지』를 제작하였다.
그의 생애는 잘 알려지지 않는다. 아마도 양반이나 중인이 아닌 평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평민이라 어디서 태어나고 어디서 돌아갔는지는 잘 모르지만 대동여지도라는 지도 하나로 모두가 그를 기억한다.
일상의 절반을 집밖으로 나가 어디론가 가고 누구를 만나는 생활을 해서 그런가 가끔 고산자 김정호 선생을 생각한다. 기차를 타고 길을 걷다가 노곤해지면 그가 지도를 만들던 심정이 이랬을까 상상해본다.
고산자 김정호 선생이 만든 『대동여지도』처럼 전국의 ‘귀농·귀촌 지도’를 그려 보고 싶다. 우리나라 팔도강산 곳곳에 박혀 있는 귀농·귀촌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지역마다 특색있는 지원정책과 농촌 현실을 써보고자 한다.
먼저 찾아갈 곳은 경기도이다. 서울과 가장 가까운 지역이라 먼저 써본다. 나의 고향이 서울이라 임의로 정했을 뿐이다. 서울과 경기도는 사실상 한 몸이다. 서울은 경기도 안에 박혀 있는 모습이다. 지금처럼 서울이 거대해지기 전에는 사대문 정도만 서울이지 나머지는 모두 경기도였다. 몇십 년 전이다. 강남구와 송파구는 경기도 광주군이고 서초구와 동작구는 경기도 과천군이었다. 도봉구, 노원구, 중랑구는 모두 경기도 양주군이었다.
지금 많은 지역이 서울특별시로 편입됐어도 경기도는 매우 넓다. 28개 시 3개 군으로 이루어졌다. 경기도는 북부와 남부로 나누고 의정부에 북부청사가 따로 있다. 경기도는 농업이 괜찮은 편이다. 일단 배후 인구가 1500만명이 되기 때문이다. 서울과 경기도의 소비자 수를 합친 것이다. 도시와 농촌이 서로 인접해 있어 물류도 좋다.
예로부터 경기미는 쌀 중 으뜸으로 친다. 임금에게 진상을 한 쌀이라서 그렇다는데 이천·여주의 쌀은 임금 브랜드를 쓴다. 다른 시군의 쌀도 품질이 뒤지지 않는다. 서쪽의 김포나 남쪽의 안성, 북쪽의 연천 등은 모두 쌀 품종이 좋다.
쌀만 좋은 게 아니다. 어지간한 과일과 채소가 다 나온다. 사과, 배, 복숭아, 포도 등이 매우 풍족하게 생산된다.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 사과는 파주 북쪽의 DMZ 안에서도 재배된다. 통일대교를 건너 신분증을 제시해야 들어갈 수 있는 민통선 안의 사과밭은 특별해 보인다. 그 지역은 장단콩도 유명하다.
파주는 점차 도시화하고 있고 신도시 개발이 계속 발표되는 지역이다. 그래도 임진강 상류인 진동, 파평, 적성면으로 가면 한적하다. 적성면에는 ‘교남 어유지 동산’이라는 장애인들이 운영하는 농장이 있다. 장애를 겪지만 농업으로 재활하고 생계를 이루는 농민을 만날 수 있다. 이번 6월부터 7월까지 치유농업을 주제로 귀농·귀촌 교육이 실시된다. 치유농업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만 적당한 교육과정이 없던지라 반갑다.
경기도 북쪽은 기후에 큰 영향 없이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심지어 고양시에는 커피 농장이 있다. 그래도 접경 지역인지라 교통이 다소 불편하다. 연천, 동두천, 포천은 평야와 산악 지대가 섞여 있고 한탄강 일대에 용암 지질도 있다. 귀농·귀촌인이 늘고 있는 추세이다. 연천의 한탄강변 논자락에는 귀촌인이 노후를 보내기 위해 지은 집이 늘어나고 있다. 지역의 활력이 귀촌인으로부터 생겨나고 있다. 교통이 좋아져서 서울과 멀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단다.
경기도 서부는 서해를 끼고 있어 물산이 풍부하다. 그래서 일찌감치 도시화가 진행돼 왔고, 농어촌 지역이라기보다는 공단이 많은 도시 지역이라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안양이 딸기의 주생산지라고 교과서에 실릴 정도였다, 화성시 송산은 가왕 조용필의 고향이다. 그의 어릴 적 집 주변은 모두 포도농장이다. 송산과 제부도 일대는 포도 집산지이다.
경기도 남부의 용인·안성·이천은 대표적인 농업 도시이다. 귀농·귀촌인의 유입은 크게 눈에 띄지는 않는다. 여기도 도시화가 많이 진행된 탓이다. 최근에는 반도체 공장건립이 발표돼 이 일대가 떠들썩했다. 10년 전만 해도 농촌 마을이 활기를 띠었는데, 지금은 조용하다. 마을이 고령화하고 도시화한 탓이다. 전국적으로 농촌 마을이 침체 현상을 보인다. 안성에는 사회적 농업을 실천하는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인 ‘혜성일터’가 있다. 화훼, 꽃다발, 화분을 생산한다. 요즈음은 공기 정화 식물이 잘 나간다고 한다. 농장으로 가서 자원봉사를 할 수 있다.
경기도 동부는 영동고속도로와 경춘고속도로 덕에 서울 접근성이 크게 좋아졌다. 남양주시와 양평군은 서울과 인접해 농산물이 그대로 서울로 직거래되고 있다. 아직 양평이 군으로 남아 있는 것은 한강 상류로 상수도 관련 규제 때문이라는 데, 양평 사람들은 군으로 남아 있는 것을 반긴다. 청정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좋아서다. 그래서 양평은 농촌 관광이 많이 발달되어 있다. 관광경영체가 모인 양평관광협동조합이라는 조직도 있다. 여주에서 조금만 더 가면 강원도이다. 너른 평야가 많아 쌀도 좋고 과일도 좋다. 농업으로 창업하려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 여주까지 전철이 운행되고 있다.
경기도 동부는 도시화에도 불구하고 농업 지역이 많이 남아 있어 자급자족이 가능할 정도의 농업 생산량을 갖추고 있다. 아파트 단지에서 조금만 가면 시골 풍경이 나오는 지역이다. 전원생활을 하기에 좋다. 병원이 많이 있고 대도시가 가까워 필요한 문화생활과 쇼핑을 즐길 수 있다. 대신 땅값이 매우 비싸다.
경기도는 인구가 많아 그런지 귀농·귀촌에 대한 욕구가 높지 않다. 귀농·귀촌 지원제도도 많지 않다. 대부분 귀농·귀촌 교육 정도에 그친다. 다른 지방처럼 귀농·귀촌인을 유치하기 위해 집을 주고 토지를 알선해 준다.
남양주시, 김포시, 이천시, 안성시, 여주시에서 귀농·귀촌 아카데미나 농업대학 등이 개설되고 있다. 귀농·귀촌인과 농민들 대상의 영농창업과 마케팅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연천군에서는 1년에 총 45가구를 대상으로 단독주택 설계비 50만원과 수리비 100만원을 지원해 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슬로우 빌리지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