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 보고 산다는 ‘후분양’…근데 ‘하자’ 못 거르는 이유

  • 카드 발행 일시2023.08.29

단돈 1만원짜리 과일을 살 때도 꼼꼼히 살피는 시대에 정작 수억원대 아파트를 보지도 않고 삽니다. 모델하우스나 조감도만 보고 돈을 내는데, 이게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집니다. 겉모습은 물론이고 하자가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에 따른 피해는 입주자 몫입니다.

한국만의 독특한 아파트 선(先)분양의 모습입니다. 여기에 후(後)분양이 최근 도전장을 내밀고 있습니다. 아파트 부실시공 등 선분양의 폐해가 끊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울에서 후분양을 선택하는 아파트까지 잇따라 등장하면서 수요자의 관심도 커지는 분위기입니다. 후분양은 국내 주택시장에 정착할 수 있을까요.

우선 선분양제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1977년 국내에 도입된 선분양제는 건설사가 아파트를 짓기 전에 분양하고, 소비자가 공사 기간인 2~3년 동안 내는 분양대금(계약금과 중도금 등)으로 공사비를 충당하는 방식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죠. 현행법상 아파트 분양 때 ‘선분양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진 않지만, 주택시장에선 50년 가까이 관행으로 정착됐습니다. 이런 기형적인 방식이 도입된 건 당시 주택보급률이 70%대에 불과해 주택의 대량 공급이 필요한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건설비용을 자체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건설사에 소비자의 돈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길을 터줬죠.

소비자의 이해도 맞아떨어졌습니다. 분양을 받고 입주 때까지 분양권(새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권리) 가격이 오른 덕분에 쏠쏠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분양가를 통제해 선분양의 매력을 유지하면서 소비자를 끌어들인 셈입니다. 한 대형 건설사 임원은 “소비자에게 ‘당근’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수십 년간 선분양제가 유지될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