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3조 자사주 전량 소각…이재용의 '일석삼조'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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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지지부진했던 삼성물산 주가가 반짝 상승했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자사주(약 3조원)를 전량 소각하겠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이틀 만에 주가가 4.1% 상승했다. 17일 삼성물산은 11만610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삼성물산은 지난 15일 열린 이사회에서 주주환원 정책으로 2025년까지 3년간 자사주 전량을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삼성물산이 보유한 자사주는 보통주 2471만8099주(13.2%)와 우선주 15만9835주(9.8%)다. 현재 시가로 3조원 정도다.

삼성 서초 사옥 전경. 연합뉴스

삼성 서초 사옥 전경. 연합뉴스

삼성물산이 3조원에 이르는 자사주 전량 소각에 나선 가장 큰 이유는 주주 달래기다. 자사주 소각은 한마디로 삼성물산이 보유한 주식을 없앤다는 의미다. 얼핏 3조원의 손해로 보일 수 있지만, 소각한 물량만큼 전체 주식 수가 줄어들어 유통 물량이 감소하며 주당 가치가 높아진다.

예컨대 1000주의 주식으로 구성된 회사의 미래 이익이 1000원이라면 이 기업의 한주당 가치는 1원이다. 전체 주식의 절반인 500주를 소각한다면 1주당 가치는 2원으로 높아진다. 자사주 소각이 대표적인 주주 환원책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자사주 전량 소각에 나선 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경영 체제가 자리 잡았다는 자신감의 발로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반적으로 자사주는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최후의 카드로 불린다. 대주주의 경영권이 흔들릴 경우 자사주를 우호 세력에게 넘겨서 원하는 방향의 의결권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그룹의 지주사다. 이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가 삼성그룹의 최대 주주(33.8%)고, 2대 주주는 삼성물산(13.2%)이다. 현재 삼성그룹의 지배 구조는 ‘이 회장 등 오너 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물산이 보유한 자사주 전량을 소각한다는 것은 경영권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없다는 의미다.

현재 진행 중인 이 회장 관련 재판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물산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의혹 재판에서 이 회장에 대한 주요 혐의는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부당 합병인데 자사주 소각이 이런 혐의를 불식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현금 유동성을 위한 키우기 위한 속내도 숨어 있다. 반도체 불황으로 20년 만에 분기 적자가 예상되는 삼성전자가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에서 자금(20조원)을 빌릴 정도로 삼성그룹의 돈줄이 말랐다. 이런 상황 속 그룹사의 굵직한 투자 계획은 줄줄이 잡혀 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투자를 비롯, 삼성물산도 3년간 4조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다.

투자 자금 확보가 필요한 상황에서 자사주 소각으로 삼성물산 주식의 주당순이익(EPS)이 올라가면 보유 주식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게 수월해진다. 여기에 3년간 주당 최소 2000원의 배당금을 유지하겠다는 배당 정책도 대주주 등의 현금 유동성 확보에도 도움이 된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3년간 연간 주주환원 총액은 배당이 약 4000억원, 자사주 소각 약 6000억원 등 1조원(4.8%) 수준”이라며 “주주가치 제고 강화와 자사주의 잠재적 매도 매도 물량 리스크 해소 등을 효과가 있어 중장기적으로 주가가 상승세를 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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