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파계 스캔들' 뒤엔…절집 담 넘은 종단 권력싸움 [백성호의 현문우답]

해인사 '파계 스캔들' 뒤엔…절집 담 넘은 종단 권력싸움 [백성호의 현문우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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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주지의 파계

경남 합천의 해인사는
대한불교 조계종을 떠받치는
큰 기둥 중 하나입니다.
강원과 선원, 그리고 율원을
두루 갖추고 있어
‘총림(叢林)’으로도 불리는
대가람입니다.

최근 불거진
해인사 사태로
절집 안팎이 시끌시끌합니다.

해인사 주지를 역임하다가 산문출송을 당한 현응 스님. 조계종 총무원 교육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백성호 기자

해인사 주지를 역임하다가 산문출송을 당한 현응 스님. 조계종 총무원 교육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백성호 기자

속복을 입은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과
가발을 쓴
모 비구니 스님이
부적절한 장소를
출입하다가 들통이 났습니다.
현응 스님은
주지 자리에서도
물러났습니다.
해인사 스님들은
현응 스님에 대해
산문출송(山門黜送)을 결정했습니다.
한마디로
해인사 산문 밖으로
쫓아낸 것입니다.

해인사 주지는
해인총림의 재정과 인사권을
책임지는
막강한 자리입니다.

누가 주지를 맡느냐에 따라
해인사는 물론,
해인사 말사들의 주지 임명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달라집니다.

이 때문에
비어 있는 주지 자리를 놓고서
차기 주지를
자기네 사람으로 앉히려는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그렇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해인사 사태가
’파계 스캔들‘로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해인사를 장악하기 위한
조계종단 내부의
권력투쟁입니다.

조계종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물론
현응 스님의 파계 행위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파계 행위와 현장에 대한
추적과 폭로,
그 뒤에는
정치적 목적과 배경이 있다는
의혹이
절집에는 강하게
퍼져 있습니다.

#해인사 승려들의 몸싸움

해인사 주지 자리가
공석이 되자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해인사 스님들이 예불을 드리고 있다. 해인사는 차기 주지 선출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겪고 있다. 중앙포토

해인사 스님들이 예불을 드리고 있다. 해인사는 차기 주지 선출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겪고 있다. 중앙포토

1월16일 오후 1시에
해인사 관음전 진입로에서
경내로 들어가려는 승려들과
이를 막으려는 승려들
50여 명이 대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몸싸움과
물리적 충돌도 빚어졌습니다.
눈 주위에 큰 부상을 입은
종무원도 있었습니다.

해인사 주지직을 놓고
양측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한쪽은
‘해인사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이고,
다른 쪽은
이에 반대하는
해인사 스님들과 종무원들입니다.

해인사 승려 대중을
모두 놓고보면
비대위측은 숫자가 적습니다.
비대위에 반대하는 측이
다수입니다.

그렇지만
비대위측의 목소리는
무척 큽니다.
일사불란하게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모양새입니다.
현재 비대위를 움직이는
주축 승려들은
자승 전 총무원장의 측근으로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불교계 NGO인
참여불교재가연대 교단자정센터는
16일 성명서를 통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자승) 전 총무원장을 비롯해
   선각 해인사 전 주지 등은
   이번 사태를 빌미로
   해인사를 장악하려 한다는 소문이
   벌써 파다하다.
   법보종찰(해인사)의 망신과
   한국 불교의 추락에는 관심 없고,
   오직 자신의 이익 극대화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이들과 관련한
   소문이 사실이라면
   이는 해인사를 넘어
   한국 불교 전체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해인사 방장까지 겨냥

해인사에는
크게 보면
가장 중요한 직책이 둘 있습니다.

팔만대장경 일반 공개에 앞서 고불식을 마친 스님들이 대장경장경판전 법보전에서 대장경을 살펴보고 있다. 중앙포토

팔만대장경 일반 공개에 앞서 고불식을 마친 스님들이 대장경장경판전 법보전에서 대장경을 살펴보고 있다. 중앙포토

하나는
절 살림을 책임지는 주지이고,
또하나는
총림의 최고 어른인 방장입니다.

주지와 방장을
자기네 사람으로 앉히면
해인사를 완전히
장악하는 셈이 됩니다.

비대위는
해인사 방장 원각 스님도
겨냥하고 나섰습니다.

참여불교재가연대는
성명서에서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지난번 방장 선거에
   돈이 오갔다는 폭로가
   비상대책위 이름으로 공표되었다.
   총림의 마지막 권위인
   방장 스님까지도
   진흙탕 싸움에 끌어들이려는 모양새다.”

폭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해인사 사태를 수습해야 할
본사 중진들이
동안거 기간에 해외 골프장에서
상주하다시피 했다는 보도가
잇따랐습니다.
거기에는
전 주지 향적 스님과
방장 비서실장 도연 스님까지
포함돼 있었습니다.
사진까지 실려 있어서
빼도 박도 못하는 처지가
돼버렸습니다.

종단 정치판에서
상대방 진영의 스님들이
해외 골프장에서
골프 치는 사진을 몰래 찍어
폭로하는 일은
가끔 벌어지는
종단 정치판의
‘저격 레퍼토리’입니다.

해인총림의 최고 어른인 방장 원각 스님. 절집에서는 원만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중앙포토

해인총림의 최고 어른인 방장 원각 스님. 절집에서는 원만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중앙포토

예전에도
몽골 울란바토르 골프장에서
골프 치는 스님들의 사진을 찍어
상대방 진영을 저격하는
일들이 조계종에서
벌어지곤 했습니다.

이번 해인사 사태에
방장이 직접 책임을 지라는
'방장 책임론'을 내세우기 위한
정치적 포석으로도
읽히는 대목입니다.

#해인사, 법보종찰에 법이 없다

해인사는
법보종찰(法寶宗利)입니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한
장경각이 있는 절입니다.
부처님의 법을 모신다는
상징적 의미가
큰 사찰입니다.

그런 해인사에서
부처님 법과
거꾸로 달리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해인사(海印寺)는
글자 그대로
하늘에 뜬 달이
바다에 꽝!하고
도장을 찍는다는 뜻입니다.

진리의 달이
우리의 가슴에
꽝!하고 도장을 찍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슴에
달이 뜨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해인사에 모셔진 팔만대장경을 이운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해인사는 부처님 가르침을 담은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법보종찰이다. 프리랜서 공정식

해인사에 모셔진 팔만대장경을 이운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해인사는 부처님 가르침을 담은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법보종찰이다. 프리랜서 공정식

그런 해인사에서
달은 온데간데 없고,
온갖 세속적 욕망만
절집의 담벼락을
넘실대고 있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종단 정치판의
저격에서 벗어나,
해인사 산중의
모든 구성원이,
대중의 뜻을 모아서
부처님 법에 맞게
차기 주지를 선출해야 합니다.

해인사 방장과
여법하게 선출된 차기 주지가
얼른 중심을 잡고,
법보종찰 해인사에
다시 법의 기운이
돌게 하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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