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님, 혹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란 책을 아시나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노교수와 제자의 화요일 대화를 정리한 책입니다. 품위있는 마무리의 고전 같은 책입니다. 제가 얼마전 토론회에서 비슷한 얘기를 접했습니다. 보충 취재를 해서 스토리로 꾸며봤습니다. 
 
 "미치, 몇 년 전 그가 암으로 죽었어. 그를 볼 수 없었어. 용서한 적이 없는데, 그게 무척 괴로워."

모리 교수는 힘겹게 제자 미치에게 이렇게 말하고 소리 내 울었다. 모리 교수는 아내가 큰 수술을 받았는데, 친구 부부가 한 번도 연락한 적이 없던 점이 못내 섭섭했다. 수술 사실을 알면서도 연락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다. 모리는 "몇 차례 만났고 그가 화해하려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어. 내가 교만했다"고 흐느꼈다. 

베스트셀러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12번째 대화 '용서' 편의 일부이다. 죽음을 앞둔 모리 교수와 제자의 14회 화요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지난 11일 인천성모병원 권역호스피스센터가 주최한 '지역사회 중심의 생애말기돌봄' 토론회에서 살림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 살림의원 추혜인(44) 원장(가정의학과 전문의)은 '친구와 함께한 5일'을 공개했다. 추 원장은 가정 임종 사례를 들며 지역사회에서 품위 있는 마무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서울 은평구 일대를 왕진하며 가정 임종을 돕는다. 추 원장은 11일 '가정에서의 생애 말기 돌봄'을 발표하면서 말기암으로 숨진 친구 A(42,여)씨를 기렸다.

A는 2년 전 4기 암 진단을 받고 1년 반 항암치료를 받았다. 올 1월 요양병원에 들어갔고 3월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했다. 4월 말 급격히 나빠졌다. 추 원장을 비롯한 친구들은 "호스피스로 가는 게 어떠냐"고 설득했다. A는 "병원으로 바로 가기 싫다"며 집으로 가길 원했다. 빌라 3층 계단을 오르기가 힘겨워 지난달 20일 추 원장의 집으로 왔다. 여기서 5일간 '버킷리스트(죽기 전 하고 싶은 일의 목록)'를 마무리했다.  
 
#첫날 : 고백
A는 그간 어머니(70)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충격을 걱정해서다. 이날도 용기가 없었다. 대신 추 원장과 친구들이 '나쁜 소식 전하기'를 했다. 어머니는 "암 진단 후 수술을 안 해도 된다고 해서 느낌이 이상했다. 점점 목소리에 힘이 없어지는 걸 보고 짐작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친구는 "모녀가 우리를 다 물리고 둘만의 시간을 가졌고, 많이 울었다"고 전했다.
 
#둘째 날 : 유언장
A는 유언장을 쓰려고 했다. 혼자 쓰면 무섭고 서러울 것 같아 친구들이 나섰다. 변호사 친구가 법적 효력이 있는 유언장 작성법 자료를 나눠줬다. 그러나 A는 펜을 잡지 못했다. 글을 쓸 힘이 없었다. 막상 쓰려고 하니 아직도 눈앞의 현실을 100%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다. 친구들은 강요하지 않았다. 몇몇 친구가 유언장을 낭독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셋째 날 : 수다 떨기
친구들이 사진을 들고 모였다. 10~15년을 같이 한 친구들이다. 한 친구가 파일을 모아서 출력해 왔다. 사진에 얽힌 A의 얘기를 꺼냈다. 제주·대마도에 캠핑 간 사진이 많았다. 한 친구는 "일본 갔을 때 네(A를 지칭)가 운전을 참 잘 해줘서 우리가 편했다"고 회상했다. A는 여성축구 동호회 멤버였다. 한 친구가" 네가 우리 동호회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스트라이커였다"고 칭찬했다. A는 경기도 군포의 텃밭 농사를 지었다. A는 "야채를 하나도 안 먹던 00가 함께 농사지으면서 처음으로 야채를 먹었다. 편식을 고쳤네"라고 하자 모두 빵 터졌다고 한다.
 
#넷째 날 : 추억 되짚기
A가 대학원 시절 매우 고지식하게 공부하던 모습이 화제에 올랐다. A는 사회단체 활동을 할 때 개량 한복을 자주 입었다고 한다. 한 친구가 "우리랑 놀려면 옷부터 갈아입고 오라고 우리가 놀렸잖아"라고 하자 A가 크게 웃었다. 다른 친구가 "매우 진지해 보였는데 나중에 보니 노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첫인상과 아주 다르더라"고 놀렸다.
 
친구들은 "먹고 싶은 거 다 먹자"며 음식 리스트를 만들었다. A는 자장면·탕수육을 먹고 싶어했다. 새우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한 친구는 토르티야(멕시코의 전통 음식)를, 다른 친구는 소고기미역국을 만들어 왔다. A는 음식이 잘 받지 않았지만, 열심히 먹으려고 애썼다. 몇 차례 보드게임을 하며 놀았다. 추 원장은 빈혈이 심한 A가 걱정돼 요양병원에서 나오기 전에 철분 주사를 두 차례 맞고 퇴원하라고 했는데 그게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마지막 날 : 호스피스로 떠나다
지난달 24일 낮 A는 집을 나섰다. 그는 "이런 시간 보내게 해줘서 너무 고맙다"며 인사했다. A는 "너무 고마워서 밥이라도 사야 하는데, 나중에 밥 살게. 캠핑 같이 가자"라며 떠났다. 호스피스에서 어머니가 A를 돌봤다. A는 자랄 때 어머니에게 소리친 일 등을 사과했다. 
 
임종 하루 전인 9일 친구 8~10명이 비대면 줌으로 다시 모였다. "우리랑 같이 해줘서 행복했다" "사는 게 막막할 때 네가 손을 내밀어줬지" 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A는 10일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한 친구는 15일 기자에게 "A가 그때 눈을 감고 있었지만 다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추 원장은 2012년 서울 은평구에 살림의원을 열면서 왕진을, 2018년 장애인 주치의를 시작했다. 의사·간호사·물리치료사·치과의사·치과위생사 등이 팀을 이뤄 방문진료 한다. 올해 6명의 가정 임종을 도왔다. 추 원장은 "조합원 3500명을 보살피고,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계속 왕진을 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100세 시대요람에서 무덤까지 어떻게 준비하고 계시나요?
31년 기자생활 중 복지담당 21년의 지식을 나눌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