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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것에서 찾는 현대미술의 뿌리 춘추(春秋)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84호 07면

이세현 작가의 39Between Red-8439(2009), Oil on canvas, 200*600㎝

“광주·부산·서울 등 곳곳에서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습니다. 외국의 예술인들이 몰려오겠죠. 그들은 한국에서 무엇을 보려 할까요? 한국 작가들의 작품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나, 한국 예술의 전통은 무엇일까, 그 전통이 현대에 어떻게 이어지고 있을까 하는 점 아닐까요.”

9월 1일~10월 31일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 문의 02-720-1524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39박연폭포(朴淵瀑布)39(18c), 지본수묵, 119.5*52㎝

학고재갤러리 우찬규(53) 대표가 ‘춘추’전을 기획한 의도다. 김홍주·리경·송현숙·신학철·윤석남·이세현·이영빈·이용백·정주영·정현·한계륜 등 현대작가 11명과 12점의 한국 고미술을 각각 짝지었다. 공자(孔子)가 편찬한 노나라의 역사서 『춘추(春秋)』에서 제목을 빌려 온 이번 전시는 시대를 초월해 우리 미술에 존재하는 그 정서에 초점을 맞춘다. 형식적 유사성을 넘어 작가가 추구한 주제의식이 어떻게 통했는지 바라보고 있다.

겸재 정선의 ‘박연폭포’와 런던을 주무대로 활동 중인 이세현(43)의 ‘붉은 산수’를 보자. 그의 풍경은 온통 붉은색이다. 전방 근무 시절 적외선 야간 투시경에 비친 산천에서 영감을 얻었다. 높은 곳에서 자연을 조망하는 전통 산수화의 다시점·전체시점으로 그려진 그의 산수는 그러나 실경을 그대로 그리지 않는다. 자세히 보면 초가집·기와집·판자촌 등이 곳곳에 보인다. 분단 국가의 아픔, 개발지상주의에 의해 사라져 가는 풍경이 그림 속에 녹아 있다. 이는 실경을 그대로 그리기보다 실경에서 받은 감정적 사의(寫意)를 중요시한 겸재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겸재는 ‘박연폭포’에서 폭포의 길이를 실제보다 두 배 늘려 거대하게 표현함으로써 대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했다.

버려진 개를 조각으로 만드는 작가 윤석남은 조선시대 ‘방목도’에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말들의 자유분방한 기를 느낀다. 세필로 화면을 빽빽하게 채워 나가는 작가 김홍주의 가느다란 선은 흥선 대원군의 ‘묵란첩’의 날렵한 난초 잎자락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후생의 작품과 묘하게 짝을 이루는 옛 그림들이 어쩐지 구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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