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팝업] 100년 세월 훌쩍 넘어, 예술과 예술은 통하더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예술가들에게 한 세기 세월쯤은 가뿐히 뛰어넘을 수 있는 동시대일까.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다정히 이웃하고 있는 작품들이 어찌나 닮았는지 형제 같은데 그들을 창조한 이들은 20세기 초와 21세기 초, 100년 남짓 시공을 달리한 작가다. 이심전심일까. 세상은 돌고 돌아도 사람 마음은 여일한 것. 춘(春, 오늘의 작가들)과 추(秋, 어제의 작가들)가 만나 일군 ‘춘추전’은 역사를 뛰어넘는 예술의 힘을 뿜어낸다.

붉은 불덩어리가 몰아치는 신학철씨의 ‘유월항쟁과 7,8월 노동자대투쟁도’ 옆엔 ‘명부시왕오도전륜대왕도’가 걸렸는데 일맥상통한다. 욕망과 특정 계급의 이익에 눌린 민중 수난사와 저승에 든 인간이 업에 따라 아수라에 끌려가는 모습은 살아있음의 고통을 넌지시 비유한다.

이상하게 생긴 돌(괴석)을 즐겨 그린 근대 서화가 정학교의 ‘죽석도’는 침목과 아스콘 등 단단한 물질을 투쟁하듯 다듬어낸 정현씨의 조각과 어우러져 힘을 받는다. 닮은꼴은 석파(石 坡) 이하응의 ‘묵란첩’과 김홍주씨의 ‘무제’에 이르러 탄성을 자아낸다. 수십만 번의 붓질로 일궈낸 김홍주씨 평면을 바라보면 ‘난을 그리는 것은 단(丹)을 수련하는 것과 같다’는 석파의 한마디가 메아리 쳐 온다. 열한 쌍 작가의 작품 30여 점을 이러저러하게 굴리며 바라보면 절로 가슴에 손이 모아진다. ‘춘추’는 공자가 편찬한 역사서이니 이를 전시제목으로 삼은 기획자의 문자속이 심상하다. 10월 31일까지, 02-720-1524.

정재숙 선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