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utter] ‘제2의 동락가’ 가능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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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폴(Butter Poll)

서울 종로구 ‘동락가’에 입주한 비영리스타트업 구성원들.  [사진 다음세대재단]

서울 종로구 ‘동락가’에 입주한 비영리스타트업 구성원들. [사진 다음세대재단]

지난 4년간 비영리 활동가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했던 ‘동락가(同樂家)’ 운영이 올해 종료됩니다. 동락가를 소유 중인 재단법인 바보의나눔이 매각을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동락가는 이준용(86) DL그룹 명예회장이 1985년부터 33년 동안 거주했던 단독주택입니다.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의 대형 주택으로, 현 시세는 270억~300억 원으로 추정됩니다. 이 회장은 지난 2019년 재단법인 바보의나눔에 이 집을 기부했습니다. 이듬해인 2020년 4월 재단은 이 집을 ‘비영리스타트업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해 달라’며 다음세대재단에 무상 임대했습니다.

동락가에는 사회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는 ‘비영리스타트업’들이 입주해 있습니다. 동락가 출신 비영리스타트업은 총 27곳. 지속가능한 의생활 문화를 조성하는 ‘다시입다연구소’, 무업 청년을 위한 가상의 회사를 설립해 사회적 고립감을 해소하는 ‘니트생활자’ 등이 이곳에서 성장했습니다.

초기 비영리조직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멘토링, 교육 프로그램도 이곳에서 진행됐습니다. 활동가들을 위한 네트워킹 행사도 열렸습니다. 지금까지 동락가를 방문한 누적 인원은 총 5174명. 건물을 기부한 이준용 회장도 동락가를 방문했다고 하는데요. 자신이 살던 집이 의미 있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기간 집을 무상임대해준 바보의나눔은 높은 세금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처음엔 동락가가 ‘호화 주택’으로 분류돼 8500만원의 세금이 나왔습니다. 이듬해 ‘근린생활시설로’ 용도 변경을 했지만, 여전히 연간 3000만원 넘는 세금이 부과됐습니다. 지난 4년 동안 바보의나눔이 부담한 세금만 1억7500만원이 넘습니다. 이번 매각 결정에는 이로 인한 재정적 부담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관계자들 설명입니다.

‘영리’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하는 공간 지원 프로그램은 꽤 있지만, 비영리를 위한 공간 지원은 국내에 거의 없습니다. 동락가가 사라진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비영리스타트업들의 근심은 깊어지고 있는데요. 재정이 넉넉지 않은 신생 비영리단체에 임대료는 큰 부담이기 때문입니다.

높은 부동산 가격 때문인지 아직 동락가 매입 의사를 밝힌 곳은 없다고 합니다. 동락가를 매입해 다시 비영리의 품으로 돌려줄 ‘통 큰 기부자’가 나타나길 바라는 이들도 있습니다. 현재 다음세대재단은 비영리스타트업 지원 사업을 이어갈 새로운 공간을 찾는 중입니다.

방대욱 다음세대재단 대표는 “공익 목적으로 기부한 부동산에 지금처럼 보유세가 부과되는 한 ‘제2의 동락가’가 나오기는 어렵다”면서 “세금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동락가는 기부받은 부동산을 ‘비영리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한 혁신적인 기부 사례로 꼽힌다”면서 “이런 새로운 기부가 이어져야 비영리 생태계도 건강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버터폴 설문=제2의 동락가, 앞으로 또 나올 수 있을까요? 제도 개선이 없는 한 불가능한 일일까요? 휴대폰으로 QR코드를 찍어 투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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