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가 말타고 달렸다더라...베일 벗는 靑, 인기코스는 '여기' [청와대 백과사전]

중앙일보

입력 2022.05.09 00:10

업데이트 2022.05.11 17:22

일러스트=안충기 기자 newnew9@joongang.co.kr

일러스트=안충기 기자 newnew9@joongang.co.kr

[청와대 백과사전 1: 걸어서 한바퀴] 

청와대 백과사전 1-걸어서 한바퀴

백악산 아래 청와대는 대통령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을 뽑아준 국민들은 접근하기 힘들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에게 청와대의 담장은 높았다. 민주화가 진전되며 한발 한발 문을 열어왔지만 그래도 닿을 수 없는 영역이 많았다. 5월 10일, 이 완고한 철옹성이 나머지 빗장을 연다. 77년 만이다. 새 대통령은 용산으로 출근한다. 윤석열 당선인은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로 이전의 의미를 밝혔다. 건축계에서는 익숙한 말이다. 집무실 이전을 놓고 건축가들도 의견이 나뉜다.

유현준 교수(홍대 건축학부)는 3월 17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의 한 수가 아닌가 싶기도 해요. 국방부에 강연 차 가본 적이 있는데 태어나서 봤던 뷰 중에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 때는 남대문까지가 경계였어요… 서울도 강남으로 확장되면서 훨씬 넓어졌지요. 중심축이 어떻게 보면 경복궁 쪽에서 용산 쪽으로 넘어오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

김진애 전 의원(MIT 도시계획 박사)은 3월 25일 KBS1라디오 인터뷰에서 말했다.

“윈스턴 처칠이 한 말이 있어요. ‘우리는 건물을 만들고 건물은 다시 우리를 만든다 (We shape our buildings and buildings again shape us). 굉장히 유명한 말이라서 우리가 이 말을 많이 써요. 그래서 우리는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다시 우리를 만든다. 그러니까 이게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다는 거죠. 그렇지만 공간보다 더 먼저인 건 사람입니다. 사람이 항상 더 먼저고 공간은 지배당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공간을 장악하는 겁니다. …… 도시 계획도 그렇고 건축도 그렇고 모든 디자인이 우리가 공간을 잘 활용하는 이런 거를 하는 건데……(지배당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죠.”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문재인… 집무실을 청와대 밖으로 옮기려던 역대 대통령들이다. 국민과 소통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모두 거둬들였다. 마땅한 공간을 찾지 못했고, 경호가 어렵고 비용 또한 막대했기 때문이다. 집무실 이전은 대통령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좌 인력이 연쇄이동 하니 공간 재배치가 따른다. 주변지역과 연계한 경호체계 변화는 첨예하다. 청와대 인근의 경비는 물샐 틈이 없다. 백악산 쪽은 철책으로 둘러싸여 있고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서있다. 출입문은 여전히 기관총을 든 병사가 지키고 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하며 광화문 정부청사 집무 공약을 포기했다. 대신 임기 첫 날 출입을 통제하던 청와대 앞길과 인왕산을 개방했다. 2주 뒤에는 궁정동과 삼청동에 있는 안가 12채 철거를 지시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와 과천 제2정부청사에 집무실을 마련하려다가 포기했다. 대신 광화문청사에서 처음으로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청와대 관람대상도 단체에서 개인·외국인으로 확대했다.2002년, 노무현 대통령은 충청권 행정수도 공약을 내세워 아예 서울을 뜨려했다. 2004년, 헌법재판소는 청와대와 주요 부처 이전을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이때 신무문이 경복궁 4대문 중 마지막으로 열렸다. 창의문에서 와룡공원에 이르는 북악산 성곽로 구간도 처음으로 개방했다.서울시장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청사 별관으로 집무실 이전을 검토했으나 역시 무산됐다.
'광화문 대통령'을 내세운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영빈관·본관·헬기장 같은 집무 공간 이외의 필수 부지를 찾지 못해서였다. 대신 청와대 앞길을 24시간 열고 북악산 북측 탐방로를 개방했다. 경내 핵심시설 이외에는 거의 개방을 한 셈이다.

윤석열 정부 윤한홍 청와대이전TF 팀장은 4월25일 인수위 브리핑에서 “청와대는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개방하며 2시간씩 6회 예약, 동시간대 약 6494명이 이용할 수 있고, 하루 입장 가능 인원은 3만 8964명”이라고 설명했다. 또 “청와대로 인해 단절된 북악산 등산로도 10일 아침부터 완전 개방한다. 등산로는 청와대 동편이나 서편 어느 곳에서나 출발할 수 있고 사전 신청 없이, 인원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관심이 폭발하며 4월 27일 관람 신청 개시 사흘 만에 예약자가 112만 명을 돌파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예약자들을 취소해 말썽이 일었다. 소란 속에서 약속한 전면개방 시간이 됐고 청와대는 이제 새로운 시대를 맞는다. 알고 가면 그만큼 많이 보인다.

〈청와대 백과사전〉을 3회로 나눠 싣는다.

▶청와대 백과사전 1- 걸어서 한바퀴(시설물과 등산로)  

▶청와대 백과사전 2- 알고 걷는 재미(자연유산 문화유산)

▶청와대 백과사전 3- 숨어있는 이야기(역사와 지형과 풍수)
1회에서는 청와대 경내 시설물과 주변에 숨은 사연을 살펴본다. (그림 속에 표시한 건물 위치와 대조하며 읽으면 알기 쉽습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청와대라는 이름
1104년, 고려 숙종 때 남경 궁궐이 들어서며 청와대 인근은 백성의 땅에서 권력의 땅이 됐다. 1382년, 우왕이 개경에서 옮겨왔으나 5개월 만에 돌아갔다. 조선시대에는 경복궁 후원으로 회맹단이 있었다. 신하들이 임금에게 충성맹세를 하는 장소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탄 뒤로는 관리가 되지 않았다. 1868년 경복궁을 중건하며 흥선대원군은 이곳에 경무대(景武臺)란 이름의 후원을 만들었다. 일본 강점기인 1939년에 이곳의 전각들을 철거하고 조선총독 관저가 들어섰다. 지붕은 증산교 계통인 보천교 본당의 푸른색 기와를 가져다 덮었다. 일본이 패망한 뒤 총독관저는 미군정사령관 하지 중장의 관저가 됐다. 이를 1948년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며 이승만 대통령이 이어받았다. 가난한 신생국이라 관저를 새로 지을 여력이 없었다. 관저의 이름은 경무대를 그대로 가져다 썼다. 지명이 건물이름으로 바뀐 셈이다.
4.19혁명 뒤 윤보선 대통령은 이승만 정권과 단절을 노려 이름을 바꾼다. 작명을 부탁 받은 언론인 출신 김영상은 화령대(和寧臺)와 청와대(靑瓦臺) 두 가지를 내밀었다. 청와대(Blue House)는 관저 지붕의 푸른빛 기와에서 착안했다. 미국 백악관(White House)를 염두에 둔 말이다. 화령은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며 명나라에 요청한 2가지 국호 중 하나다. 윤보선은 화령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며 청와대를 택했다. 1963년 박정희 대통령 취임 뒤 황와대(黃瓦臺)로 이름을 바꾸자는 제안이 있었다. 황금빛은 황제의 색이다. 박정희는 대통령마다 집 이름을 바꿔서 되겠냐며 일축했다.

왼쪽 큰 기와집이 본관. 오른쪽 위 기와집이 관저. 아래쪽 건물군이 비서진이 근무하는 여민관이다. [연합뉴스]

왼쪽 큰 기와집이 본관. 오른쪽 위 기와집이 관저. 아래쪽 건물군이 비서진이 근무하는 여민관이다. [연합뉴스]

대표 얼굴 본관
대통령이 집무를 보고 외국 국가원수나 외교사절을 맞는 공간이다. 광화문사거리에서 백악산을 보면 한눈에 들어오는 건물이다. 본관 앞에 서면 고도가 높지 않은데도 사대문안과 남산까지 훤하게 내다보인다. 1991년 9월 4일 완공했다. 구 본관을 대신해 지었지만 청와대라는 이름은 그대로 가져왔다. 도자기처럼 구운 15만 장의 푸른 기와는 100년 이상을 버틸 수 있다. 전면 9칸이다. 귀마루(추녀마루)에 잡상 11개가 앉아있다. 전면 5칸에 잡상 9개의 경복궁 근정전보다 격이 높은 셈이다. 겉보기와 달리 나무가 아니라 콘크리트 건물이다. 2층으로 지은 본채 좌우에 붙은 별채는 같은 모양이다.

본채 1층에는 접견실·무궁화실·인왕실이 있다. 2층에는 대통령의 집무실과 접견실·백악실·집현실이 있다. 대통령 집무실은 100㎡가 넘는다. 입구에서 집무의자까지 15m다. 천장 높이가 3m로 2층 건물 높이이니 실내 체육관 수준이다. 배드민턴을 칠 수도 있겠다. 노무현 대통령은 본관과 비서동이 멀어 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여겨 비서동 옆에 집무실을 만들었다.  본관 정면의 좌측 별채에 세종실이, 우측 별채에 충무실이 있다. 국무회의를 여는 세종실 북쪽 벽면에는 일월도(日月圖), 남쪽 벽면에는 훈민정음 (訓民正音)이 장식돼 있다. 전실에는 역대 대통령 초상화들이 걸려있다. 충무실에서 임명장을 수여하고 만찬을 연다. 내부는 운보 김기창 그림이 걸려있다.
본관 왼쪽 국기 게양대 두 개에는 태극기와 봉황기가 걸린다. 봉황기가 올라가 있으면 대통령이 경내에 있다는 의미다. 외국 VIP가 오면 봉황기 대신 그 나라 국기를 건다.

본관 현관 입구 양쪽에 ‘드므’라는 이름의 대형 항아리가 있다. 궁궐 방화수용이기도 하고 의례용이기도 하다. 불의 신이 불 지르러 와서는 물에 비친 자기모습을 보고 도망갔다는 전설이 서려있다. 문 앞에 있는 큰 바다라는 뜻으로 문해(門海)라고도 부른다.
본관 앞 넓은 잔디마당은 대정원으로 불리는데 국빈환영 행사와 육·해·공군 의장대, 전통의장대의 사열이 행해진다.

내부 공개 엄격한 관저
본관 오른쪽 뒤 깊숙한 곳에 있다. 1990년 10월 25일 완공했다. 대통령과 가족이 생활하는 공간이다. 대통령 공간의 공사를 구분하려 만들었다. 경내 시설 중 공개를 가장 제한하는 곳이다. 사적 공간인 만큼 공식행사를 열지 않는다. 전속 사진사만이 내부에서 찍을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 때 세 번 공개했다. 취임 직후인 2003년 3월과 그해 11월,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를 떠나던 날이다. 이때도 입구인 인수문 앞에서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 직후인 5월 15일 대문을 나와 출근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관저에서 본관과 비서동까지는 걸어서 보통걸음으로 10분 정도다.
대통령들이 청와대를 떠난 날은 다음과 같다. 전두환 1988년 2월 25일, 노태우 1993년 2월 25일, 김영삼 1998년 2월 24일, 김대중 2003년 2월 24일, 노무현은 임기를 마친 다음날인 2008년 2월 25일 아침에 떠났다. 박근혜 2017년 3월 12일 박근혜, 문재인 2022년 5월9일.
관저는 본채·별채·대문채·사랑채·회랑으로 이루어져있다. 본채는 팔작지붕 겹처마에 청기와를 얹은 ㄱ자 형태다. 관저 바로 앞에는 위급 상황에 대비한 의무실이 있다.

3월 28일 만찬 회동장소인 상춘재로 들어가는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뉴시스]

3월 28일 만찬 회동장소인 상춘재로 들어가는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뉴시스]

200살 넘은 소나무 기둥 상춘재
상춘재(常春齋)는 1983년 4월 준공했다. 주 기둥은 200년 넘은 춘양목이다. 1983년까지만 해도 청와대 경내에는 한옥이 한 채도 없었다. 외국 손님이 와도 전통가옥 양식을 소개할 길이 없었다. 방문객 접견이나 비공식회의 장소로 쓴다. 일제 때 조선총독부 관사 별관인 매화실(梅花室)이 있던 자리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상춘실(常春室)로 이름을 바꿨다. 1977년 12월에 철거하고 1978년 3월 천연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양식 목조건물을 지어 상춘재 이름을 붙였다. 방 2칸, 주방 1칸, 대청마루, 화장실 1칸, 대기실 1칸, 지하실로 구성됐다.
2019년 2월 26일 보수작업을 마친 뒤 맞은 첫 손님은 모하메드 빈 자이드 UAE왕세자였다. 3월 28일,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이 만찬 회동을 한 장소다.

비서진의 공간, 여민관
여민(與民)은 '여민고락(與民苦樂)'에서 따왔다. 대통령과 비서진들이 국민과 기쁨 슬픔을 함께 하는 곳'이라는 의미다. 비서진들이 근무하는 공간이다. 여민1관(대통령집무실, 비서실장실, 정무수석실) 2관(민정·경제·일자리수석실 등), 3관(외교안보·국민소통수석실 등) 세 개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여민1관은 2004년에 완공했다. 대통령이 본관을 떠나 비서진 가까이로 왔다. 2관은 1969년, 3관은 1972년에 건립해 낡고 허술하다. 여민3관 건물 외벽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해 일부 전력을 자체 공급하고 있다. 여민관 지하에 지하벙커가 있다.

프레스센터, 춘추관
청와대 프레스센터다. 춘추관(春秋館) 이름은 중국 사서오경의 하나인 춘추에서 가져왔다. 엄정하고 비판적인 태도로 역사의 기록을 담는 곳이라는 뜻이다. 고려·조선시대 역사기록을 담당하던 기관이 춘추관(예문춘추관)이다. 1990년에 완공했다. 1층은 기자들이 사용하는 기자실과 자료실 겸 간이브리핑룸이 있다. 2층에 대통령 기자회견과 각종 브리핑 등을 하는 브리핑룸이 있다. 300여 명이던 출입기자가 문재인 정부 들어 1000여 명으로 늘었다. 기자들은 주 3회 하루 3시간 이상을 근무해야 출입 자격을 유지한다. 청와대 직접 취재는 쉽지 않다. 춘추관과 청와대 경내는 분리되어 있다. 기자들은 주로 홍보 또는 국민소통수석실을 통해 취재한다. 기자접촉을 제한해 근무자 휴대전화를 언제든 조사할 수 있다는 각서를 받은 정부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 기자회견은 재임 기간 중에 8차례에 그쳤다. 윤석열 당선인은 용산집무실 아래층에 프레스센터를 두고 기자들을 자주 만나겠다고 밝혔다.

‘하나된 충성’ 경호실
청와대 정문에서 본관 들어가는 길 양쪽을 지키고 서 있는 건물이다. 왼쪽에 2개동. 오른쪽에 1개동이 있다. 비서진들의 공간인 여민관과 함께 본관과 관저를 호위하는 바리케이드다.
경호실장은 차관급과 장관급을 오가다가 현재는 차관급이다. 처장과 차장 외 소속원 500여 명의 신상 정보는 비밀이다. 박정희 정권이 무너진 12.12사태의 이면에는 경호실장의 월권도 있다. 당시 경호실장이 차지철이고 중앙정보부장이 김재규다. 이제 경호처 업무는 투명하게 공개된다. 2022년 1분기 경호처장 업무추진비는 총 5건 148만4330원이다. 간담회 2건에 54만원. 회의 3건에  94만 4430원을 썼다.
경호실의 모토는 ‘하나된 충성, 영원한 명예’다. 경호는 'VIP 대신 죽는 훈련'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본능적으로 자신을 던져야 한다. VIP가 먹는 음식들도 이들이 사전 검식한다. 대통령은 혼자 라면을 끓여먹지도 못한다. 운영관에게 조리해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대통령 내외와 동거중인 자녀는 본인이 거부하지 않으면 퇴임 뒤 10년 간 경호를 받는다. 퇴임 후 경호를 사양하는 경우는 없었다.

말 타고 다니는 산길, 기마로
본관과 관저 뒤쪽에는 2개의 산책로가 있다. 바깥쪽 능선 이름이 성곽로인데 외곽순환로인 셈이다. 청와대의 외부 경계다. 성곽로 끝에 있는 백악정 쉼터에서는 서울 사대문이 한눈에 들어온다. 능선 안쪽에 있는 길이 이름이 기마로, 내부순환로인 셈인데 말을 타고 다니는 길이라는 뜻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60년대 후반 일본식 군복 차림으로 경내에서 말을 타는 사진이 남아있다. 기마로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경내를 전면 개방하면 인기 있는 코스가 될 테다.

밀실회의 대명사, 서별관
청와대 서쪽 끝에 있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은 김영삼 정부 때부터 이곳에서 진행된 '거시정책협의회'를 흔히 '서별관 회의'라고 불렀다. 경제부총리, 청와대 경제수석,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중요 정책들을 결정하는 회의였지만 법적 근거가 없는 비공식 회의라 남은 기록도 없다. ‘밀실회의'라고 불린 이유다. 김영삼 정부의 경제 관련 법개정, 김대중 정부의 구조조정 대책, 노무현 정부의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이명박 정부의 미국발 금융위기 대응, 박근혜 정부의 대우조선해양 지원 같은 굵직한 정책이 여기서 확정됐다. 박근혜 정부 시절 특히 문제가 됐다. 세월호 참사 때는 특별조사위의 규모와 예산을 줄이는 회의를 여기서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2019년 리모델링을 거쳐 오픈회의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54년간 대통령 집무, 수궁터(구 본관)

1939년부터 1993년까지 54년간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가 있던 자리다. 1993년 11월 철거했다. 1989년에 본관과 관저를 분리하면서 구청와대 본관을 역대 대통령의 기념관 및 박물관으로 보존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김영삼 대통령이 민족정기를 바로잡는다는 의미로 철거를 지시했다. 옛날 경복궁을 지키던 수궁(守宮)들이 있었다 하여 수궁터라고 부른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인 2013년 10월 녹지원에서 열린 '문화융성의 우리 맛,우리 멋-아리랑' 공연.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 시절인 2013년 10월 녹지원에서 열린 '문화융성의 우리 맛,우리 멋-아리랑' 공연. [청와대사진기자단]

매일 바뀌는 풍경, 녹지원(綠芝園)
경내 최고의 숲이다. 사계절 내내 풍경이 바뀐다. 역대 대통령 기념식수를 비롯해 120여 종의 나무가 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장애인의날 같은 갖가지 행사가 열리는 장소다. 2019년 서울에 온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여기서 문재인 대통령과 산책을 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5년 5월 28일 인근 주민 약 3000여 명을 초청하여 KBS 열린음악회가 열렸다. 5월 22일, 새 정부는 27년 만에 청와대 열린음악회를 열기로 했다. 이번에는 녹지원이 아닌 본관 앞 대정원이다.

13m짜리 화강암 기둥, 영빈관
1978년에 세웠다. 외국 국가원수가 방한할 때 민속공연과 만찬을 베푸는 공식 행사장이다. 100명 이상이 참가하는 대규모 회의 및 연회 장소다. 2층에도 1층과 똑같은 홀이 있다. 1층은 접견장으로, 2층은 만찬장으로 쓴다. 18개 돌기둥이 건물을 떠받들고 있다. 앞쪽 돌기둥 4개는 2층까지 뻗어 있다. 높이 13m에 둘레가 3m다. 전북 익산에서 나온 화강암을 통째로 깎아 이음새가 없다. 내부는 무궁화, 월계수, 태극무늬가 형상화되어 있다. 새 정부는 대통령취임식 만찬을 이곳이 아닌 신라호텔에서 연다.

2015년 영빈관에서 열린 한중일정상회의. [청와대사진기자단]

2015년 영빈관에서 열린 한중일정상회의. [청와대사진기자단]

왕비가 되지못한 왕의 어머니, 칠궁 (七宮)
청와대 서별관 뒤쪽  궁정동에 있다. 조선시대 왕을 낳았지만 왕비에 오르지 못한 후궁 7인의 위패를 모셨다. 숙종의 후궁이자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신위를 모신 육상궁(毓祥宮)을 비롯, 저경궁(儲慶宮·선조의 후궁 인빈 김씨. 추존왕 원종의 생모), 대빈궁( 大嬪宮·숙종의 후궁 희빈 장씨. 경종의 생모), 연호궁(延祜宮·영조의 후궁 정빈 이 씨. 추존왕 진종(효장세자)의 생모), 선희궁(宣禧宮·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 추존왕 사도세자 장조의 생모), 경우궁(景祐宮·정조의 후궁 수빈 박씨. 순조의 생모), 덕안궁(德安宮·고종의 후궁 엄씨. 영친와의 생모) 등 7개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1968년 이후 출입이 금지되다가 2001년 11월 24일부터 청와대 특별관람객에게 제한 공개하고, 2008년 6월부터는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2018년 6월 일반인에게 시범 개방한 당시의 칠궁. [청와대사진기자단]

2018년 6월 일반인에게 시범 개방한 당시의 칠궁. [청와대사진기자단]

마지막에 열린 문, 신무문(神武門)
경복궁 북문이다. 청와대 본관과 일직선 상에 있다. 세종 때 경복궁 4대문 중 마지막으로 건립했다. 1954년 경복궁과 함께 개방했으나,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군부대(당시 30사단)가 경복궁에 주둔하면서 폐쇄했다. 2006년 9월 29일 노무현 대통령 때 집옥재 권역과 함께 다시 문을 열었다. 신무문을 마지막으로 경복궁은 전역이 공개됐다.

하늘에서 본 백악산과 청와대 일대 그림. 시민들이 자유롭게 거니는 모습을 담았다. 경복궁 일대는 담장을 걷어내고 신무문만 남겼다. 철펜에 먹물 찍어 그렸다. 그림=안충기

하늘에서 본 백악산과 청와대 일대 그림. 시민들이 자유롭게 거니는 모습을 담았다. 경복궁 일대는 담장을 걷어내고 신무문만 남겼다. 철펜에 먹물 찍어 그렸다. 그림=안충기

(취재에 도움을 주신 김효형 눌와출판 대표,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지원활용부장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회는 〈청와대백과사전 2-알고 걷는 재미(자연유산 문화유산)〉입니다.

글·그림=안충기 기자·화가 newnew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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