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국산 수제 맥주 열풍
수제 맥주가 주류시장의 주류(主流)로 떠올랐다. 수제 맥주는 대기업이 아닌 소규모 브루어리(맥주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를 통칭한다. 국내 수제 맥주 시장은 2016년 311억원에서 지난해 1180억원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한국수제맥주협회는 2023년에는 3700억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한계에 부딪혀 대기업 맥주의 아류(亞流) 쯤으로 여겨지던 수제 맥주에 이변이 일어난 건 지난해부터다. 2019년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 이후 일본 불매 운동 여파로 인한 맥주 수입량 감소와 주세법 개정 등 호재에 힘입어 수제 맥주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모습이다. 반면 맥주 수입액은 2018년 3억968만 달러에서 2019년 2억8089만 달러, 지난해 2억2686만 달러로 감소세가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일본 맥주 수입액은 2018년 7830만 달러에서 2019년 3976만 달러로 급감한 데 이어 지난해 567만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업계는 불매 운동으로 일본 맥주 매출이 급감하면서 그 자리를 수제 맥주가 채웠다고 분석한다.
그간 수입 맥주가 아니면 ‘카스’(오비맥주)와 ‘하이트’(하이트진로) 사이에서 양자택일했던 소비자도 고르는 재미에 빠졌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혼술(혼자 술을 마시는 것)’과 ‘홈맥(집에서 마시는 맥주)’ 트렌드가 자리잡으면서 내 취향에 맞는 수제 맥주를 찾는 발길이 늘어난 것이다.
수제 맥주, 최근 4~5년 20~30%씩 성장
직장인 양혜지(31)씨는 퇴근 후 편의점에 들러 수제 맥주를 사는 것이 주된 일과다. 양씨는 “코로나 전에도 에일 맥주를 즐겨 마셔 성수동이나 홍대의 브루어리를 찾곤 했는데 이제는 다양한 맥주를 집 근처에서 편하게 구입할 수 있다”며 “수입 맥주가 ‘4캔에 만원’ 행사를 자주 하는 것과 달리 수제 맥주 가격이 더 높을 때도 있지만 더 신선하고, 맛이 좋아 수제 맥주에 손이 간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를 주로 하는 고재희(33)씨는 스타우트 맥주를 선호한다. 고씨는 “회식할 때 라거 맥주에 소주를 타먹는 ‘소맥’이 싫어 혼자 캔맥주를 사다 마시곤 했는데 그때마다 별종으로 여겨졌다”며 “일과가 끝나고 혼자 원하는 종류의 맥주를 마실 때마다 피로감이 풀린다”고 말했다.
수제 맥주가 캔 안으로 들어오면서 보다 대중화된 배경에도 바뀐 주세법이 자리한다. 기존에는 알루미늄 캔 용기 제조비용이 워낙 높았기 때문에 소규모 업체에서는 캔맥주로 수익을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종량세 도입 이후 캔맥주에 붙는 세금이 L당 415원 줄어들었다. 반면 생맥주는 445원, 페트맥주는 39원, 병맥주는 23원 각각 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수제 맥주 업체가 캔맥주를 파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며 “세금 부담을 던 데다 코로나19로 주류 판매채널이 식당이나 유흥업소가 아닌 대형마트와 편의점으로 바뀌는 상황에서 다양한 캔맥주 라인업을 갖추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고 말했다.
수제 맥주 인기가 계속되자 2016년 81개였던 양조장은 올해 7월 기준 159개로, 5년 만에 2배 가량 증가했다. 사실 국내에서 수제 맥주업이 가능해진 건 20년이 채 되지 않았다. 2002년 술집에서 자체적으로 맥주를 양조할 수 있는 ‘소규모 맥주 제조면허’ 제도를 도입하면서 부터다. 그 결과 작은 규모의 맥주만 생산하는 ‘마이크로 브루어리’가 생기며 수제 맥주를 파는 하우스맥줏집이 늘었다. 이전까지 오비·하이트 각 3개씩 모두 6개에 불과했던 맥주 제조면허(일반+소규모) 소유회사가 2005년에 112개(대기업 제외)로 증가했다.
그러나 이 숫자는 2012년 63개로 급감했다. 소규모 맥주 제조면허를 보유한 곳이 대개 영세한 하우스맥줏집에 머무른 탓이다. 정부 규제로 인해 회사 형태로 성장하기엔 무리가 따랐다. 당시엔 매장에서 만든 맥주를 다른 매장에서 판매하는 것이 금지됐다. 양조장에서 만든 수제 맥주를 다른 술집이나 레스토랑에는 물론 타 지점에서도 팔 수 없어 한계가 있었다. 한국수제맥주협회 관계자는 “이후 규제가 부분적으로 완화됐지만 하우스맥주 유행이 시들해지면서 1세대 업체들 상당수가 문을 닫았다”고 설명했다. 본격적으로 규제완화가 이뤄진 건 2014년께다. 소규모 맥주 제조자도 매장에서 만든 맥주를 외부로 반출하고 팔 수 있게 된 것이다. 외부에 시설을 갖추고 맥주를 판매하는 것 역시 가능해졌다. 전국 곳곳에서 ‘수제 맥주 페스티벌’이 펼쳐질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이때부터 수제 맥주 회사가 맥줏집이라는 한계를 벗어나 회사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대기업 라거, 특색없이 탄산감에만 의존”
수제 맥주가 단시간 내 급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다양성에 있다. 대기업이 생산하는 라거 맥주 시장이 절대적이었던 국내에서 위트 에일, 사워 에일, 스타우트 등 전에 없던 다양한 종의 맥주를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40여종의 수제 맥주를 유통하는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의 김태경 대표는 “그간 우리나라 맥주가 ‘맹물 같다’는 혹평을 받은 이유는 주류시장을 꽉 잡고 있던 대기업 라거가 주로 특징 없이 탄산감에만 의존하는 맹맹한 맛이었기 때문”이라며 “해외의 진한 맥주를 접한 소비자들이 늘면서 국내 업체들도 이제는 홉 중심의 IPA나 몰트 중심의 스타우트, 특이한 효모 특성을 살린 사워 에일 등을 내놓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우리 직영점에서 라거의 판매 비중은 10~15% 지나지 않고, 나머지는 IPA 등 다양한 수제 맥주를 선호하는 비율이 높다는 점을 보면 앞으로도 국내 수제 맥주의 성장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