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 일자리 ‘빅 미스매치’]국경 없는 이공계 두뇌 모시기 경쟁…CEO까지 해외 날아가 취업 설명회

중앙일보

입력 2022.04.30 00:20

수정 2022.04.30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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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지난해 10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글로벌 포럼’을 주관한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이 해외 인재들에게 회사 비전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SK이노베이션]

‘해외 이공계 인재 채용에 전력투구(全力投球)하라.’ 최근 국내 기업 최고경영자(CEO)들한테 떨어진 재계의 특명이다. 엔지니어 등 해외 사업 확장에 필수인 현지 이공계 인력 확보가 쉽지 않다보니 CEO까지 직접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 자사 홍보와 인재 설득에 나서고 있다. 우수한 이공계 인재를 경쟁사에 뺏기지 않기 위해서다. 지난해 하반기 재계에서 화제를 모았던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의 미국행(行)이 대표적인 사례다.
 
LG화학은 지난해 9월 미국 뉴저지주 티넥메리어트호텔에서 ‘BC투어’(Business & Campus Tour)라는 채용 행사를 가졌다. 메사추세츠공과대(MIT)와 조지아공과대 등 현지 이공계 명문대와 연구소 10여 곳의 석·박사 및 학부생들을 초청해 회사 비전을 공유하고 채용에 나섰다. 신학철 부회장은 바쁜 일정에도 미국으로 가서 이 행사를 주관했다. 당시 신 부회장은 “LG화학은 세계 7대 화학 기업으로 이 분야 글로벌 톱10 중 유일하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연간 매출과 영업이익이 증가했다”며 친환경·바이오 및 배터리 소재, 신약 개발 등 회사의 신사업 분야 관련 전공자들을 직접 설득했다.
 
그러면서 신 부회장은 “LG화학은 현재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을 것”이라며 “창의적인 인재들이 마음껏 도전하고 그 성과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최고의 직장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2019년 LG화학 CEO에 취임한 신 부회장은 그해에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가서 BC투어를 주관하는 등 수년째 해외 인재 채용에 사활을 걸고 있다. LG화학 측은 “올해 BC투어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여건이 뒷받침되면 신 부회장이 (올해도) 해외 인재 채용에 직접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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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도 지난해 10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당시 총괄사장이었던 김준 부회장 주관으로 ‘글로벌 포럼’을 열었다. 토론회 형식이었지만 사실상 현지 이공계 인재 발굴을 위한 자리였다. 친환경 및 배터리 소재 등 SK이노베이션의 신사업 분야 관련 전문 인재들을 대거 초청했다. 미국의 첨단산업 본산지인 실리콘밸리와 가까운 곳에서 행사를 마련한 것도 그래서다. 현지 12개 대학과 연구소의 석·박사 인재들이 참석해 SK이노베이션 경영진과 심도 있게 토의하면서 진로를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 부회장은 이 행사에서 참석자들에게 회사 비전인 ‘카본 투 그린’(Carbon to Green)을 직접 소개하면서 “석유화학 중심의 사업 구조를 친환경 중심으로 개선해 장기적 성장 기반을 다지겠다”고 설명했다. 김 부회장은 “이를 위해선 훌륭한 인재를 확보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며 2023년까지 연구·개발(R&D) 인력을 기존의 두 배 수준으로 늘려 R&D 인프라 확충에 매진할 뜻을 나타냈다. 회사 측은 올해도 글로벌 포럼 등으로 해외 인재 채용에 힘쓴다는 계획이다.


이들 기업처럼 해외에서 CEO가 직접 채용 관련 행사를 열지 않더라도 회사 차원에서 적극 해외 우수 인재 유치에 나서는 건 이제 흔한 일이다. 특히 최근 기업들은 현지 법인에서뿐만 아니라 국내로 들어와서 일할 수 있는 해외 이공계 인재를 뽑는 일에도 힘쓰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11월 미국뿐 아니라 다른 주요국에서도 참가할 수 있도록 온라인으로 해외 석·박사 채용 설명회를 열었다. 국내 채용 담당자 등과의 실시간 화상 연결을 통한 토크쇼, 회사의 업무 환경과 미래 비전 소개 등의 시간을 가진 다음 실제 채용으로도 이어갔다.
 
이런 해외 이공계 인재 유치 열풍은 정보기술(IT) 기반의 스타트업으로도 번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무협)의 최근 조사에서 스타트업 236곳 중 86곳(36.4%)은 해외에서 IT 개발자 등 현지 국적 인재를 채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스타트업은 해외에서 현지인을 채용할 경우 대부분 원격근무(90.7%)를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무협 관계자는 “스타트업이 과거 한국 기업들처럼 본사 직원을 해외에 주재원으로 파견하는 방식보다는 외국인 인재를 활용하는 방식을 더 선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