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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 일자리 ‘빅 미스매치’]학생·기업 모두 만족, 채용연계형 계약학과 인기 치솟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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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6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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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대학생 윤혜준(21)씨는 요즘 자기소개서 작성에 한창이다. 재학 중인 학과가 2학년을 마치고 삼성전자 취업을 확정하는 채용연계형 ‘계약학과’라 벌써부터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있는 것이다. 윤씨는 “학교 측에서 관련 특강을 제공하고 있어 큰 부담은 없다”고 말했다. 이 학과에선 평균 학점 3.0 이상, 직무적성평가(SSAT) 통과 등의 최소 요건만 충족하면 삼성전자 입사가 확정된다. 학부 과정에서 등록금은 삼성전자가 장학금 형식으로 부담한다. 합격만 하면 등록금이나 취업 걱정 없이 학업에만 열중할 수 있는 구조다.

이 학과에선 성적 등 요건을 충족한 학생이 원할 경우 석사 과정도 지원한다. 단순히 학비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석사 과정 재학 기간을 재직 기간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예컨대 2년간 석사 과정까지 마치고 삼성전자에 입사하면 3년차 직원으로 대우받는다. 김소영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 학과장은 “학비나 향후 연봉에 부담이 없다 보니 석사 과정까지 진학하는 학생은 매년 졸업생의 20%가량”이라며 “학부 때부터 삼성전자 현업 전문가들이 실무 교육 과정을 진행할 정도로 졸업 후 실무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지식을 배우다 보니 학구열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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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삼성전자가 이 같은 계약학과를 운용하는 건 이공계 인력난이 심한 탓이다. 장학금 등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서라도 인재 확보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은 입사 즉시 활용할 수 있는 인재를 확보할 수 있고, 학생들은 일찌감치 자신의 진로를 정한 뒤 전문성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학생들 사이에서 계약학과의 인기는 입학 경쟁률로 나타난다. 2006년부터 삼성전자와 함께 반도체 ‘계약학과’를 운영 중인 성균관대 반도체공학과의 2022학년도 수시 입학 경쟁률(논술 전형)은 131.9대1에 이른다.

또 다른 계약학과인 경북대 모바일공학과 입학 경쟁률은 ‘지방대 위기론’이 무색할 정도다. 지난 2011년 삼성전자와 함께 설립한 이 학과는 졸업 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로 입사한다. 덕분에 2022학년도 수시 모집 경쟁률은 54.3대 1까지 치솟았다. 경북대 모바일공학과에 재학 중인 박채빈(20)씨는 “워낙 인기가 높다보니 서울 상위권 공대를 포기하고 우리 학과를 선택한 학생도 있다”며 “취업에 부담 없이 본인이 원하는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이라고 말했다.

경북대 모바일공학과 역시 2학년을 마친 뒤 최소 요건을 만족하면 취업이 확정된다. 전공 분야는 다르지만 일찌감치 취업을 확정하고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교육 과정에 대한 만족도는 매한가지다. 이 학과 3학년인 안승재(24)씨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분야를 모두 배우기 위해 다른 전공을 복수전공하거나 청강할 필요 없이 모바일 공학을 위한 다양한 지식을 쌓을 수 있다”며 “예컨대 머신러닝처럼 현 기술 흐름에 맞춘 과목들도 모바일공학과에서 수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찌감치 입사를 확정지은 탓에 3~4학년이나 석사 과정 때 학업을 등한시하진 않을까. 재학생들의 반응은 정반대다. 3학년 때부터는 다른 학과에선 석사 과정에서 다루는 내용까지 배우는 탓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것이다. 윤혜준씨는 “3학년부터는 반도체 시스템아키텍처나 회로설계 등 3가지 트랙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석사 수준의 내용까지 배우다 보니 나태해질 여유가 없다”며 “과제 때문에 매주 밤을 새는 학과 선배들의 모습을 자주 봤던 터라 진짜 전문가가 되기 위한 각오를 다지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기업들은 계약학과 설립을 늘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연세대와 함께 시스템반도체공학과 운영에 돌입했다. SK하이닉스도 고려대와 손잡고 지난해 반도체공학과를 출범시켰다. 설립이 예정된 계약학과도 상당수다. 카이스트와 포항공대는 각각 삼성전자와 함께 내년부터 반도체 계약학과를 운영하기로 했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선 연세대가 LG디스플레이와 손잡고 2023년 디스플레이융합공학과의 문을 연다. 같은 해 고려대는 LG에너지솔루션과 함께 배터리-스마트팩토리학과를 개설한다. 유현용 고려대 반도체공학과 학과장은 “고려대는 지난해에 반도체 학과가 생겼고 이제 1년 지난 상황이라 학과 특성이나 학생들의 만족도 등을 언급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시행착오도 겪고 첫 졸업생을 배출한 뒤에야 본격적인 교육 과정을 진행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일각에선 대학이 취업 학원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도체나 모바일 공학, 배터리 등 첨단 산업 분야의 우수 학생들을 ‘입도선매’ 식으로 기업에 공급하는 탓에 정작 학계엔 연구 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계약학과 설립에 부담이 되는 요소다. 서울 소재 한 사립대 교수는 “우수한 학생들 대부분이 학사나 석사까지만 마치고 기업으로 가는 탓에 교수들 사이에선 취업을 못한 학생들이 국내 박사 과정을 밟는다는 얘기도 들린다”며 “기업도 인재가 급하겠지만 이대로 가다간 국내 학계도 큰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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