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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 일자리 ‘빅 미스매치’]“반도체 인력 양성, 서울대 교육 이념과 동떨어진 것 아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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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6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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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G(5세대) 이동통신,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등과 같은 첨단산업의 등장으로 반도체의 중요성은 이전보다 더 커졌다.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중추이자 국가 간 첨단 기술력 대결의 핵심이 됐다. 그러다 보니 ‘반도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주요국의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한국은 이 전쟁의 한복판에 나가 싸울 전사가 없다. 반도체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이 때문에 서울대는 반도체학과 설립을 다시 추진 중이다. 다만 서울대가 추진 중인 반도체학과는 기업과 계약을 맺어 운영하는 ‘계약학과’다.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에 묶여 반도체학과를 설립하려면 계약학과 외엔 뾰족한 수가 없다.

이혁재 서울대 전기·정보공학 학부장

이혁재 서울대 전기·정보공학 학부장

서울대는 2019년에도 반도체 계약학과를 설립하려고 했지만 무산됐다. 이에 대해 이혁재(57·사진) 서울대 교수(전기·정보공학 학부장)는 “한국경제의 중추인 반도체 산업을 이끌 인력을 양성하는 게 서울대 교육 이념과 동떨어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이 대만과 미국·중국 등으로부터 위협받고 있는데 손 놓고 바라보는 건 직무유기”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미국 인텔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했고, 서울대에선 시스템반도체산업진흥센터장과 전자전기공학부 학부장을 맡고 있다. 26일 이 교수를 만나 반도체 계약학과 설립이 무산된 이유와 최근 상황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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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학과 설립 추진 당시 분위기는.
“학내 반대 의견이 컸다. 다른 전공 교수들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 탓이다. 다만 일부에서 제기되는 교수들의 밥그릇 싸움 때문이란 시각은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계약학과가 설립되면 정원이 추가로 늘어나는 것이라 다른 학과의 정원을 줄일 필요가 없다.”
뭐가 문제였나.
“서울대의 교육 이념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진리를 탐구해야 할 서울대가 사실상 취업 위탁 교육기관이 된다는 우려가 많았다. 입학과 동시에 취업이 보장된다는 건 학생들의 진로를 상당 부분 결정해버리는 일인 건 맞다. 계약학과는 교육 커리큘럼도 기업과 협의해야 하고 5년 내외 주기로 다시 계약을 맺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계약학과 학생은 서울대 학생이라기 보단 기업 예비 사원 위탁 교육이란 시각이 있었다.”
최근 다시 추진한다고 들었다.
“다른 학부 교수들을 만나 설득하고 있다. 빠르면 6개월 이내에 내부 설득을 마치는 게 목표다. 한국 반도체 산업을 이끌 인재를 양성하는 게 목적이란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계약학과를 포기하지 못한 이유는.
“한국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절박감이다. 21세기 한국을 먹여 살린 게 반도체 산업인데 최근 상황은 어떤가? 대만이나 미국, 심지어 중국 등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 파운드리(위탁 생산)만 하더라도 대만 TSMC에 삼성전자가 두 세대 뒤쳐졌다. 한 세대만 더 뒤쳐지면 사실상 패권 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TSMC에 뒤쳐진 이유는 뭔가.
“인력 부족 문제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반도체 전공 인력을 찾는 수요는 많은데 대학 정원은 그에 맞춰 늘지 못해 수요와 공급이 안 맞는 상황이 장기간 이어졌다. 산업 현장에서도 사람 구하기 어렵다 보니 국가 차원의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높일 박사급 연구 인력 구하기는 더욱 어렵다. 서울대만 하더라도 대학원 반도체 관련 전공 박사 과정은 수년간 미달이다. 누군가는 박사 과정을 밟고 연구 성과를 내야 산업을 혁신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계약학과로 해결할 수 있나.
“미력하게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계약학과 설립은 수도권 대학이 학부 정원을 늘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반도체 계약학과 학부 정원이 증가한 만큼 석·박사 과정으로 진학하는 학생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 반도체 산업을 이끌 인재 양성이 목적이니, 계약학과를 설립하더라도 특정 기업 한 곳과 계약을 맺지는 않을 것이다. 또 취업 대신 박사 과정에 진학해도 불이익이 없는 구조를 염두에 두고 있다. 한국 반도체 생태계가 발전해야 기업에게도 이익이란 점을 설득할 계획이다.”
정부가 대학 정원을 조절하면 되지 않나.
“그게 가장 좋은 해법이다.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을 늘려주면 서울대까지 나서서 계약학과를 추진할 필요가 없다. 기업들도 정부의 연구개발비 지원이나 세액 공제보다 반도체 관련 전공 정원을 늘려주는 게 절실하다고 토로한다. 연구할 인력이 충분해야 연구비를 쓸 수 있단 얘기다. 그러니 정부만 바라보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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