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2030 표심, 대선판을 흔들다
오스트리아선 31세 총리 나오기도
서구 정치권에선 마린 총리처럼 젊은 정치인이 일찌감치 요직을 차지하는 사례가 적잖다. 20대 초반부터 정치권에 진출하는 흐름이 일상화돼 있다 보니 30대 중후반엔 이미 정치 경력 10년 이상의 ‘준비된 정치인’으로 자리 잡는 경우도 흔하다. 이들은 대개 지방 기초의회를 시작으로 단계를 밟으며 정치를 배워 나이에 비해 탄탄한 경력을 갖고 있다.
서정건 경희대 교수는 “유럽은 한국에 비해 현실 정치에 대한 진입 장벽이 낮다”며 “한국의 경우 정계에 진출하려면 중앙당이 통제하는 공천심사위 등을 거쳐야 하지만 서구에선 지역 주민들의 동의만 얻으면 누구나 의회에 진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정당들도 연령·직업·성별 등에 따라 쿼터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형식적인 나눠먹기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31세 때 최연소 총리에 올라 화제가 됐던 제바스티안 쿠르츠(35) 전 오스트리아 총리는 지난 10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EU 국회의장격인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벨기에 총리에 선출된 것도 38세 때인 2014년이었다.
유럽의회도 마찬가지다. 2019년 선거에서 선출된 의원 719명의 평균 연령은 49.5세로 한국의 21대 국회 54.9세보다 5년 이상 젊다. 키라 페테르-한센 덴마크 의원은 21세의 나이로 당선돼 최연소 기록을 세웠다. 유럽의 각국 의회에도 40대 미만 소장파 비중이 작지 않다. 노르웨이·네덜란드·스웨덴은 30%가 넘고 이탈리아는 42.7%에 달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4.3%에 불과한 실정이다.
IT 발달로 저비용·고효휼 정치 가능해져
전문가들은 유럽에서 젊은 지도자들이 부각되는 이유로 변화하는 정치 환경을 첫손에 꼽는다. 기성 정치인들이 정치 환경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대중의 요구를 국정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새로운 어젠다의 등장과 정보기술(IT)의 발달도 한몫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이민 문제, 양극화 심화 등 새로 등장한 이슈들은 환경과 일자리를 중시하는 미래 세대가 특히 더 관심을 갖는 사안들이다. 기술의 발달로 SNS 등을 통한 저비용·고효율의 대중 정치가 가능해진 것도 젊은 정치인들에겐 기회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조기 정치 교육이 자리 잡은 유럽의 토양도 청년 정치 활성화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핀란드 청소년들은 15세부터 정당 청년 조직에 가입할 수 있다. 영국 정당도 청년 조직을 강화하고 있는데, 보수당의 25세 이하 조직인 ‘젊은 보수당’의 경우 회원이 15만 명을 넘는다. 보리스 존슨 총리도 이곳 출신이다. 프랑스 사회당도 15~28세 청년들 당비를 면제해 주는 등 젊은이들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유럽의 젊은 정치인들이 이처럼 청소년기부터 정당 조직의 일원으로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갖고 성장하면서 ‘2030세대의 정치 참여’도 자연스러운 정치 문화로 자리 잡았다.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는 “유럽에선 대의민주주의가 제도화되면서 연령·성별과 관계없이 어린 시절부터 정치를 접하며 실력을 검증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됐다”며 “이런 사회적 풍토가 정착돼 있다 보니 나이 든 유권자들이 젊은 정치인들에게 표를 주고 국정을 맡기는 게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