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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들, 집값·취업·젠더 등 청년 현안 공감력 결여…꼭 투표해 세상 바꿀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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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5호 08면

[SPECIAL REPORT]
2030 표심, 대선판을 흔들다

청년단체 활동가들이 중앙SUNDAY 좌담에서 청년 표심을 주제로 대화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한국청년거버넌스 김혜연 지부장, 청년과미래 정희돈 사무총장, 시흥청년활동연합 황호연 대표, 청년재단 조은빛 매니저. 전민규 기자

청년단체 활동가들이 중앙SUNDAY 좌담에서 청년 표심을 주제로 대화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한국청년거버넌스 김혜연 지부장, 청년과미래 정희돈 사무총장, 시흥청년활동연합 황호연 대표, 청년재단 조은빛 매니저. 전민규 기자

20대 대선을 앞두고 청년을 향한 정치권의 구애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여야 대선후보들도 핵심 부동층으로 떠오른 2030세대의 ‘청년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청년 관련 이슈를 내놓고 선대위에 청년층을 전진 배치하는 등 표심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2030세대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기성 정치권이 청년들이 직면한 현실에 진정으로 공감하기보다는 여전히 선거철 ‘표밭’으로만 여길 뿐이란 부정적 인식도 가시지 않고 있다.

2030세대가 느끼는 현실 정치의 문제는 과연 무엇일까. 이들은 어떤 현실적 정책 대안을 기대하고 있을까. 이들은 내년 대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중앙SUNDAY는 이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기 위해 일선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청년단체 대표들과 좌담회를 열었다. 김혜연(23) 한국청년거버넌스 동대문지부장, 정희돈(27) 청년과미래 사무총장, 조은빛(34) 청년재단 매니저, 황호연(25) 시흥청년활동연합 대표 등 짧게는 3년, 길게는 7년 동안 현장을 누비며 2030세대의 삶을 대변해 온 활동가들이다.

이들은 “기성세대 정치인들이 청년을 위한 정치를 펼치겠다고 외치지만 지금처럼 청년 감수성이 결여된 채 ‘그들만의 행보’만 계속할 경우 불신의 벽을 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좌담에는 이들 네 명 외에 이겨레(22) 한국청년거버넌스 공보국장과 임대환(34) 청년재단 정책팀장도 함께 참여해 의견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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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세습 등 ‘그들만의 리그’에 분노

-청년 입장에서 정치의 문제점을 꼽자면.
정희돈=“2021년을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20세기의 이념·진영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해 국무조정실 산하 청년정책조정위원회가 신설됐는데 민간위원들을 보니 평소 여권과 가깝게 지낸 인사들이 적잖게 포함돼 있더라. 이런 모습은 야권도 예외가 아니다. 아직도 ‘내편 네편’ 원리로 정치가 작동하는 걸 보면 청년 정책을 제안하는 현장 활동가들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황호연=“공감한다. 우리 단체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청년 활동에 주력하다 보니 지방자치단체나 시의회와 협업해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많다. 하지만 그들이 종종 세력을 형성해 청년단체를 견제하는 경우가 많았다. 청년들에게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걸 두려워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정치인들도 최근 청년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저희 같은 활동가들을 자주 부르곤 하는데, 막상 참석해 보면 ‘청년은 여전히 도구에 불과하구나’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청년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는 공간마저 기성 정치권의 구태의연한 행태가 지배하고 있다는 지적에 활동가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기성 정치권이 청년들의 목소리에 보다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임 팀장은 “35세 이하 인구가 약 10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지만 그들을 위한 국가 예산은 10분의 1이 채 되지 않는다”며 “그 적은 예산 투입조차 청년들이 피부로 체감하기 힘들다. 청년 예산이 마치 예산의 장식품처럼 여겨지는 게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황 대표는 더 나아가 “청년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성세대에 비해 2030세대가 가진 자원이 적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치권의 ‘수혜’만 기다려서는 그 어떤 의미 있는 결과도 기대하기 어렵다”며 “이젠 청년들 스스로 의제 설정 등에 능동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다른 활동가들도 “청년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단순히 정치권에 전하는 수준을 넘어 ‘정책 공동체’를 함께 만들겠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입을 모았다.

김혜연=“청년 이슈만이라도 기성 정치의 재생산화를 막고 문제 해결 능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현재 대통령을 비롯해 어느 정치인도 청년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다. 지금 같은 논의 구조에서는 결국 홍보성 정책밖에 나올 수 없다.”

조은빛=“보육 문제가 더는 개인의 몫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영역으로 인식되는 것처럼 청년 문제도 비슷한 기류를 타고 있는 것 같다. 추진 동력과 정책 실효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청년의 직접 참여와 더불어 청년 감수성을 가진 정치인이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이에 대해 이 국장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청년층의 호응을 얻은 것도 ‘젊은이들이 뭘 알겠느냐’는 50~60대 정치인들과 달리 청년들의 시각에서 문제에 접근하는 모습을 통해 청년 감수성을 실제로 보여줬기 때문”이라며 “청년들도 이를 계기로 정치권 내의 또 다른 ‘유리천장’이 뚫릴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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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남 이대녀’로 상징되는 젠더 갈등도 화제에 올랐다. 최근 후보들도 페미니즘과 군 복무 가산점제 등과 관련한 입장을 잇따라 밝히며 20대 남성과 여성 표심 공략에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한 청년 활동가들의 시각은 미묘하게 엇갈렸다.

황호연=“페미니즘이나 성소수자 이슈가 토론의 대상이 되는 게 이상하다. 누구도 차별하면 안 된다는 건 초등학교 때부터 교육받은 것 아닌가. 그런데 후보들이 먼저 나서서 국민을 편 가르기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정희돈=“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2017년 대선 때는 페미니즘이 ‘핫이슈’였고 여성 인권을 신장해야 한다는 입장에 후보들도 대부분 공감하지 않았나. 지난 4년간 부족하게나마 여성 인권이 개선됐다고 보고 이번 대선에선 그동안 챙기지 못한 20대 남성을 품으려는 것 같다.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조은빛=“성별 갈등을 조장하는 데는 일부 언론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후보들이야 당장 선거가 눈앞에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일부 남성과 여성 얘기만 듣고 갈등을 부추기는 모습엔 청년들도 거부감이 큰 것 같더라. 내 주변에서 진짜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2030 남성과 여성은 실생활에선 그런 갈등을 거의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들 한다.”

청년들의 ‘선택적 분노’에 대한 일각의 지적에도 2030 활동가들은 한 측면만 부각된 논란이란 입장을 보였다. ‘불공정엔 분노하지만 불평등엔 화내지 않는 세대’라는 비판에 대해 김 지부장은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화 논란 등에 청년들이 분노하는 데는 ‘이것 하나만이라도 우리의 몫으로 지켜두자’는 절박함이 묻어 있다”며 “승자 독식 문화에서 비롯된 불평등의 경우 분노하지 않는 게 아니라 분노해 봤자 사실상 달라질 게 없다는 박탈감이 훨씬 더 크다”고 토로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임 팀장도 “계층 간 사다리가 사라지고 부의 세습으로 ‘그들만의 리그’가 공고화되면서 청년들의 분노는 계속 축적돼 왔다”며 “LH 투기 의혹이나 기업 채용 비리 등은 이런 분노를 터트리는 방아쇠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해석했다. 이 같은 좌절감은 최근 ‘적극 투표 의향’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정치에 대한 2030세대의 관심이 미풍을 넘어 정치 지형을 바꿀 수 있을 정도까지 커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김혜연=“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후보 비호감도가 굉장히 높게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투표하겠다는 응답도 매우 높다. 주변 친구들을 봐도 ‘정알못(정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투표는 꼭 하겠다고들 한다. ‘차악을 뽑더라도 내가 투표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공감대가 생각보다 크게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

이 같은 흐름을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제기됐다. 황 대표는 “나는 좀 생각이 다르다. ‘투표는 필수이자 의무’라는 여론이 하나의 정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청년 세대도 SNS를 중심으로 서로 투표 인증을 하는 등 정치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며 “이는 ‘정치적 의무감’보다는 시대 흐름에 자연스럽게 동참하는 ‘넛지 효과’에 따른 변화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어느 선거보다 청년에 관심 높아 희망적

하지만 청년들의 달라진 정치 눈높이와 달리 여야 정치권과 대선후보들은 여전히 청년 유권자들의 표심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청년들과 스킨십을 강화하는 등 최근 부쩍 관심을 쏟고 있지만 옛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말 따로, 행동 따로’ 행태에 2030세대의 실망감 또한 크다는 지적이다. 정 사무총장은 “후보들이 청년들과 접촉면을 늘리는 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하지만 뒤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들끼리 거친 발언만 주고받는 모습을 보면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기존 정치권이 구태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도 희망은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역대 그 어느 선거보다 청년 표심에 대한 관심이 높은 만큼 이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데도 의견이 일치했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청년들의 목소리가 우리 사회에 반향을 일으키면 정치권도 반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란 기대도 숨기지 않았다.

조은빛=“후보들을 보면 여전히 반대를 위한 반대만 계속하고 있는 것 같다. 반면 청년들은 차별을 막고 배제를 없애는 걸 상식으로 생각하는 세대다. 진심으로 청년층을 생각하는 정치인이라면 청년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노력하길 바란다. 상식에서 출발하는 정치가 그리 어려운 건 아니잖은가.”

황호연=“청년만 부각되는 듯한 모습에 부정적 시각도 존재하는 걸로 안다. 하지만 2030세대도 유권자 입장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 아닐까. 젊은 유권자들이 바라는 건 기성세대 정치인들이 부디 ‘청년 감수성’을 갖추고 문제에 접근해 달라는 거다. 그래야 말뿐이 아닌 실질적인 소통이 가능해지고, 그래야 의미 있는 성과도 거둘 수 있지 않겠는가.”

“슬세권 주거, 대출이자 탕감, 건강검진 의무화 등 희망”

“큰 틀에서 시스템과 제도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청년들은 당장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이 필요한 게 현실이에요.” 최근 대선후보들이 잇따라 내놓고 있는 청년 공약과 정책에 대해 황호연 시흥청년활동연합 대표는 “거창한 구호보다 실생활과 직결된 대안이 절실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중앙SUNDAY 좌담에 참석한 2030세대 청년단체 활동가들은 ’차기 정부에 가장 먼저 바라는 정책‘으로 단연 일자리 제공과 주거 보장을 꼽았다. 특히 일자리의 경우 여야 후보들이 앞다퉈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최소한의 삶이 보장되는 일자리는 극히 적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었다.

조은빛 청년재단 매니저는 “지금의 집값과 밥상 물가를 감안할 때 청년들은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일정 수준 처우가 보장되는 일자리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며 “그러니 대기업과 공기업에 청년들이 몰리는 것 아니겠느냐”고 진단했다. 황 대표는 “후보들이 강조하는 수만 개 일자리 공약에도 의구심이 크지만 과연 그중 후보 스스로 당장 가서 일하고 싶은 일자리는 몇 개나 될까”라고 반문했다.

주거 문제에 대한 호소도 잇따랐다. 정부가 청년 공공임대주택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젊은 층이 원하는 ‘슬세권(슬리퍼 등 편한 차림으로 여가·편의시설 이용 가능한 생활권)’ ‘편세권(편의점 인근 지역)’과는 동떨어진 주거 환경이란 지적이다. 이겨레 한국청년거버넌스 공보국장은 “국가가 지원·제공하는 청년 주거 단지들은 대부분 도시 생활권과 멀리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편의시설도 태부족하다”며 “외딴 섬과 같은 주거 공간 제공으론 사회 활동이 많은 젊은 세대에게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해 20대 평균 부채는 3479만원, 30대는 1억82만원에 달했다. 오늘날 청년 세대는 사회에 첫발을 떼는 순간부터 적잖은 빚과 금융 부담을 떠안고 있는 셈이다. 황 대표는 “당장 가족 수술비 100만원이 없어 대부 업체에 손을 빌리는 또래 친구들이 적잖다”며 “학자금 대출이자나 청년 전월세 대출 이자 탕감 제도 등을 통해 젊은 세대의 사회 출발선을 조금이나마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우울증을 앓는 2030세대가 급증하면서 육체적·정신적 건강에 대한 정부의 적극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김혜연 한국청년거버넌스 동대문지부장은 “4대 보험 가입 직장인이나 노년층과 달리 20대 대학생과 프리랜서 직업군은 국가 건강검진 의무화 대상에서 제외”라며 “특히 젊은 층의 우울증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사회 분위기는 차기 정부에선 꼭 개선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국청년거버넌스 : 청년들의 시각에서 매년 국정감사 우수 의원을 선정하고 있는 비영리 청년단체.
청년과미래 : 9월 셋째 주 토요일 ‘청년의 날’이 법정기념일로 제정되는 데 기여한 사단법인.
시흥청년활동연합 : 지역 청년 모임에서 시작해 시흥시 청년 기본조례 수립 등에 앞장선 풀뿌리 단체.
청년재단 :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법인. 청년 공익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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