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제가 된 출퇴근지옥
중앙일보는 서울시의 통신기지국 빅데이터인 ‘서울 생활이동 데이터’를 자체 분석해 출근시간대(오전 7~9시) 유입인구가 많은 ‘출근 1번지’ 6개 동(서울 여의동·역삼동·종로동·가산동·명동·서초동)을 선정했습니다. 이후 출근 1번지로 출근하는 인구가 일정 수 이상인 서울·경기·인천의 행정동을 추린 뒤 이 중 통근시간이 가장 긴 곳에 사는 ‘장거리 지역 통근자’와 통근 인구가 가장 많은 곳에 사는 ‘최다 이동 지역 통근자’ 12명을 동행·심층 인터뷰했습니다. 이를 통해 통근거리가 규정하는 이들의 삶을 ①삶의질 ②가족관계 ③건강 ④업무성과 ⑤경제적 상황 등 5가지 측면에서 따져봤습니다.
출퇴근지옥⑦ : 얼마나 달라졌을까
김포시 풍무동에 사는 안모(39)씨는 3년여간 김포골드라인과 공항철도, 서울 지하철 1호선을 갈아타며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으로 출근했다. 지난해 휴직으로 잠시 출퇴근을 쉬게 됐지만, 최근 복직을 앞두곤 “다시 시작될 출퇴근 공포 때문에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반복되는 스트레스에 임신 계획조차 미뤘다는 그는 “출퇴근 고통은 노력한다고 해결할 방법이 없다. 국가가 나서야 할 사회 문제”라고 토로했다.
수도권에 인구가 집중되기 시작한 이래 모든 정부가 출퇴근 혼잡 해소를 위한 대책을 내놨다. 우선 직장이 모여있는 도심 및 인근 도시에 주택을 공급하는데 방점이 찍혔다. 1970~80년대엔 서울 잠실에 신시가지를 만들고, 개포동·고덕동·목동·상계동 등에 대규모 주택단지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이후 서울 인구가 1000만명을 돌파한 다음 해인 1989년, 서울이 아닌 경기도 5곳에 새로운 주거지역을 조성해 주택 200만호를 공급하기로 했다. 분당(경기 성남), 평촌(경기 안양), 일산(경기 고양) 등 1기 신도시였다.
신도시 건설이 과밀화 해소를 위한 주된 정책 흐름이 되면서, 출퇴근 범위는 확장됐고 시간도 늘어났다. 특히 2003년 발표된 2기 신도시는 1기 신도시보다 먼, 서울과 30㎞ 이상 떨어진 지역이 많았다. 판교(경기 성남), 광교신도시(경기 수원) 등 일부를 제외하면 교통 접근성도 떨어졌다. 서울 도심 내 주거지를 갖지 못한 직장인들은 살 곳을 찾기 위해 통근 시간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내놓은 해법은 교통망 개선이었다. 2007년 시작된 대도시권 광역교통 기본계획과 교통혼잡도로 개선사업 계획, 2019년부터 3차에 걸쳐 진행 중인 환승센터 및 복합환승 센터 구축 기본계획 등이 쏟아졌고 2019년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대광위)도 설치됐다. 목표는 광역 거점 간 통행시간 30분대로 단축, 통행비용과 환승 시간 30% 감소 등이었다. 대광위 관계자는 “출퇴근 고통이 중요한 사회 문제임을 인식하고 있다”며 “국민의 출퇴근 시간을 줄이기 위해 광역교통 인프라 구축과 광역버스를 확대 등을 지속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교통망 확충으로 직주근접 실현? 오히려 길어진 출퇴근”
통계청에 따르면 9.5%(1995년)였던 1시간 이상 장거리 통근 인구 비율은 14.5%(2000년), 13.7%(2005년), 15.6%(2010년), 18%(2015년), 15.3%(2020년)로 줄어들지 않았다. 코로나19의 영향을 배제하면 꾸준히 증가세다. 전명진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거시적인 정책들이 대부분 실패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통근 시간에 부담이 큰 집단에 차별적으로 정책들을 집중하는 방안을 차선책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택·유연 근무로 출퇴근 문제 해소” 대안론도
고용노동부는 지난 2020년 재택근무 도입 절차와 인사조직 관리방안, 정부지원제도 등을 담은 재택근무 종합 매뉴얼을 발표했고, 정치권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8월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주에 8시간 내 원격근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한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존 법은 근무장소 유연화에 대한 근거가 미비해 사업장별 자체 규정에 따라 유연근무제 실행 여부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법을 바꿔 주4일 사업장 근무와 주1일 원격근무 체계를 본격 도입하겠다는 의도다.
장재민 한국도시정책연구소장은 “직장인의 출퇴근 시간을 줄이겠다는 과녁을 설정한 뒤 신도시를 만들고 교통망을 확충하는 등 화살을 쏘았지만 결국 출퇴근 시간을 줄이진 못했다”며 “이젠 직주근접이란 신기루에 가까운 목표에 집중하지 않고 수도권 과밀화를 완화하는 방식으로 출퇴근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