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출직임에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사례가 없진 않다. 부친의 농지법 위반 의혹이 제기되자 국회의원직에서 물러난 국민의힘 윤희숙 전 의원이 대표적인데, 희귀한 경우다. 위안부 기금 관련 의혹에 이어 배우자 부동산 논란까지 불거졌던 윤미향 의원 같은 처신이 훨씬 흔하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윤 의원을 제명했어도 윤 의원은 계속 배지를 달고 있다.
158명 숨진 10·29참사 19일째
행안·경찰·구청 책임자는 건재
윤 대통령은 참사의 부실대응 책임을 최고책임자에게 물은 선례가 있다. 검찰총장이던 2020년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은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법원이 1심에서 무죄로 판단하자 검찰이 항소해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윤 대통령이 참사 책임을 수뇌부에 물을 만도 한데 흔들림이 없으니 임기에 생각이 미친다. 임기제의 위력을 제대로 보여준 사람은 윤 대통령이다. 검찰총장 당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를 강행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퇴진 압박에 몰렸다. 조국ㆍ추미애ㆍ박범계 세 장관의 별의별 공격에 맞서 맷집으로 버텼다. 퇴진 시점을 스스로 택해 대검찰청을 나온 뒤 대선을 향해 걸어갔다. 문 전 대통령은 임기가 남은 검찰총장을 어쩌지 못했다.
믿는 구석이 임기뿐인 기관장은 서서히 식물이 돼 간다. 윤 대통령도 당시 국회에 출석해 자신을 ‘식물 총장’이라고 토로했다. 요란하게 취임했다가 존재감이 거의 소멸한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도 있다. 이제 경찰에서도 식물 청장이 탄생할지 지켜볼 일이다.
행안부는 이번 참사에 책임이 있는 소방 당국과 지방자치단체를 총괄하는 중앙 부처인 데다 경찰을 직접 통제하겠다며 경찰국까지 신설했다. 사태 초기부터 이 장관 경질론이 제기됐으나 역시 자리에 앉아 있다. 한 전직 행안부 고위 관계자는 "치안·소방 등을 책임지는 국무위원으로서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방패가 법적 안전판보다 견고하다는 해석이 따른다. 동남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16일 귀국한 윤 대통령은 성남 서울공항에 나온 이 장관과 가장 먼저 악수하며 "고생 많았다"고 했다. 절친의 아우였던 마속(馬謖)이 전장에서 실책하자 눈물을 흘리며 참(斬)한 제갈량이 머쓱할 장면이다.
세 사람은 각기 다른 재질의 철갑을 두른 채 이심전심으로 버티는 모양새다. “책임질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수습이 우선”이라고 답한다. 스스로는 그렇게 믿고 싶을 수 있다. 그러나 사고 예방을 못 하고 대처도 엉망인 사람이 후속 조치는 잘할 거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책임은 자신에게 무겁게 지우고 남에게는 가볍게 하여야 한다”는 정약용의 가르침이 공허하다.
명단 공개까지… 유족만 서러워
정권을 잡은 사람들도 이를 견제해야 하는 야당도 158명 희생자 가족의 상처를 진심으로 어루만져주지 않는다. 그게 2022년 11월 대한민국의 몰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