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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주안의 시선

‘매우 잘 못함’ 56%와 도어스테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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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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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락한 윤석열 대통령 국정 운영 지지율에서 심상치 않은 수치는 ‘매우 잘 못함’이다. 최근 발표한 리얼미터 조사에선 56.8%가 나왔고 다른 조사도 비슷하다. ‘잘못하는 편’의 7.8%보다 압도적이다. 윤 대통령 취임 무렵 조사에선 두 수치가 30%와 12% 안팎이었으니 석 달 새 극단적 부정 평가가 급증했다.

”‘매우 못함’이 50%를 넘는 건 심각하다. ‘잘못하는 편’은 돌아올 수 있지만 ‘매우 잘못’은 쉽게 안 바뀐다“(장경상 국가경영연구원 사무국장)는 분석이 따른다.

대통령이 명심해야 할 ‘강한 반대’

전문가 "긍정으로 쉽게 안 돌아서"

지지자를 내쫓은 요인은 수두룩한데 출근길 도어스테핑(doorsteppingㆍ약식 회견)도 한몫했다고 본다. 대통령 출근 시간에 맞춰 주요 언론이 일제히 ‘윤석열 대통령은 오늘…’로 시작하는 기사를 디지털 톱뉴스로 보도한다. 전두환 정부 시절 ‘땡전 뉴스’에 빗대 ‘땡윤 뉴스’라고 비꼬는 기사가 나온다.

둘 사이엔 근본적 차이가 있다. 땡전 뉴스는 보안사령부 군인이 언론사를 드나들며 대통령 미화를 강요한 결과물이다. 도어스테핑 뉴스는 언론사가 자발적으로 촌각을 다퉈 내보낸다. 대통령실 담당 기자는 국가 지도자의 속내를 알리면서도 땡전 뉴스의 오해를 피하는 묘안을 찾게 마련이다. 손쉬운 해법은 정권에게 불편한 기사를 쓰는 거다. 땡전 뉴스처럼 보여도 감시견 역할에 걸맞은 보도다. 그러니 가장 아픈 부분을 찌른다. 김건희 여사나 만 5세 입학, 경찰국 질문이 빠질 리 없다.

“그건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1945년 7월 정치 집회 현장에서 곤란한 질문이 나오자 퉁명스럽게 대답한 인물은 해럴드 라스키 영국 노동당 집행위원회 의장이다. 정치 지도자의 예민한 반응에 ‘이런 긴장감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는 기록을 남긴 사람은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된 존 F 케네디 기자(허스트)다. (『대통령이 된 기자』)

77년 전 영국에서 벌어진 일화가 떠오른 건 불편한 이슈를 물을 때마다 “다른 질문 없으세요?”라며 말을 돌리는 윤 대통령을 보면서다. 윤 대통령은 왜 선뜻 도어스테핑에 나섰을까. 지난주 부활한 검찰 티타임이 스쳤다. 검사는, 특히 민감한 사건을 다루는 특수부 지휘 라인은 기자와 접촉이 많다. 수사가 흘러갈 땐 티타임에서 문답을 하고 출근길엔 서초동 도어스테핑이 벌어진다. 늦은 밤 귀가하면 집 앞에 기자가 기다린다. 새벽부터 심야까지 휴대폰이 진동하면서 기자 이름이 뜬다.

윤 대통령이 사석에서 “○○○ 기자가 집 앞에 왔을 때…”라며 유쾌하게 얘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가 좌천돼 실의에 차 있을 때도 기자들의 연락은 이어졌다. 매일 아침 기자단이 진을 친 도어로 거침없이 스테핑 하는 자신감의 이면에 이런 기억이 버티고 있으리라.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출근길 약식 기자회견(도어스테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2.7.26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출근길 약식 기자회견(도어스테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2.7.26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 대통령이 간과한 점이 있다. 티타임과 도어스테핑은 판이하다. 검찰을 취재하는 기자의 관심은 수사에 집중된다. 대장동 추적의 최종 타깃이 누구인지, 블랙리스트가 어디로 튈지에 천착할 뿐 검찰총장의 가족이나 경찰 얘기는 묻지 않는다. 검사는 수사팀이 밝혀낸 100가지 사실 중 10개만 설명한다. 티타임이 끝나면 나머지 90개를 알아내기 위해 기자는 문자와 카톡을 검사의 휴대전화로 쏘고 집 앞을 지키며 한마디를 갈구한다. 기자에겐 마냥 고달프나 검사는 칼자루를 쥔 소통법이다.

도어스테핑에선 윤 대통령이 피하고 싶은 현안이 1순위다. 정책이야 담당 부처를 통해 취재가 가능하지만, 김건희 여사나 지인 채용처럼 부담스러운 이슈는 꼭 대통령의 표정을 읽으려 한다. 현재 방식을 지속하려면 오늘 가장 듣기 싫은 질문을 정면 돌파할 각오가 필요하다. 감정 섞인 답변은 실시간으로 국민에게 전파되고 ‘매우 잘 못함’ 수치를 또박또박 0.3%씩 끌어올린다.

현행 문답 방식 고집하면 더 험난

의견이 분분하지만, 청와대를 박차고 용산으로 나온 결단력을 높이 평가한다. 말만 요란했던 전임자들과 확실히 차별화했다. 도어스테핑 또한 그렇다. 소통에 인색했던 박근혜ㆍ문재인 전 대통령과 9년을 보낸 직후라 더 반갑다. 이 신선한 도전이 좌초할까 걱정된다. 빈도를 줄이고 형식을 바꿔야 한다. 과거 대통령 기자회견처럼 중요한 이슈를 먼저 설명하고 질문을 받는다면 어떨까. 그래봐야 어차피 기사는 김건희 여사와 만 5세 입학, 경찰국으로 나간다. 다만 감정이 격해져 중요한 정책은 입 밖에도 못 내는 악순환은 끊을 수 있다. 검사 시절 벼랑에서 떨어졌다가 기적처럼 회생해 정상까지 오른 윤 대통령이지만 5년은 매우 짧다. 벌써 3개월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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