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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주안 논설위원이 간다

멀쩡한 수력 발전 놀리고 4조원 들여 산 속에 댐 건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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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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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료 인상 움직임 속 논란의 발전소〉

지난 16일 오후 5시 30분쯤 강원도 홍천군청 앞에서 주민 10여명이 모여 집회를 하고 있다. 이들은 “양수발전소 계획을 백지화하라”며 구호를 외쳤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홍천에 도움이 되는 친환경 발전”이라고 홍보하는 시설을 왜 반대하는 걸까.

양수 발전은 독특하다. 산 아래와 정상 두 곳에 댐을 만들고 전기가 남는 심야에 산 위로 물을 끌어올린 뒤 전기가 필요할 때 물을 내려보내 발전을 하는 방식이다. 개념은 나무랄 데 없지만, 반대자들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든다.

매년 1000억 적자 양수발전소   

첫째 엄청난 건설 및 운용 비용이다. 이곳 홍천 발전소 하나 만드는데 1조 600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계획대로라면 10년 뒤인 2032년에 완공된다. 전기료 인상 압박이 커지는 상황에서 부적절하다는 반대 논리다. 이미 완공된 7곳의 발전량이 많지 않아 매년 막대한 적자가 발생했다. 국민의힘 구자근 의원은 2년 전 “양수 발전소 적자가 한해 1800억원에 이른다”는 사실을 발표하며 대책을 촉구했다.

둘째 환경 파괴다. 반대 주민들은 “물 맑고 숲 울창한 지역에 산 위와 아래에 댐을 만든다는 계획이 웬 말이냐”고 항의한다. 환경단체는 이 지역에 서식하는 각종 천연기념물의 수난을 염려한다.

한수원 "비상대비ㆍ관광 도움"

한수원 입장은 다르다. 한수원 양수건설처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출력 변동성 대응을 위한 백업설비로 양수발전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원전과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면 유연성 전원인 양수 발전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수원 측은 ”병원 응급실 같은 곳이어서 건립 비용이 들더라도 지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환경파괴 우려에 대해선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사람과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지역 중심 랜드마크형 사업 개발로 실질적 경제 효과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1조 6000억원이 투입되는 프로젝트를 기대하는 주민도 많다.

지난 16일 오후 돌아본 강원도 홍천 양수발전소 상부댐 건설 예정지(왼쪽)와 하부댐 예정지 주변 풍경. 일부 주민과 환경단체는 2032년 완공되는 댐이 환경을 파괴하고 돈만 낭비한다며 반대 중이다. 강주안 기자

지난 16일 오후 돌아본 강원도 홍천 양수발전소 상부댐 건설 예정지(왼쪽)와 하부댐 예정지 주변 풍경. 일부 주민과 환경단체는 2032년 완공되는 댐이 환경을 파괴하고 돈만 낭비한다며 반대 중이다. 강주안 기자

엇갈리는 주장을 머리에 담고 현장을 취재했다. 반대 주민의 안내로 댐 건설 예정지 등을 돌아봤다. 하부댐이 생길 풍천리에 들어서자 반대 플래카드가 줄지어 나타난다. 주변에 숲이 울창하고 계곡엔 맑은 물이 흐른다. 댐을 만들면 상당한 면적이 수몰되면서 도로 역시 잠기게 돼 댐 주변을 우회하는 새 도로를 만든다고 한다. 주민 이창후(57)씨는 “이렇게 물이 맑은 자연에 댐이 들어서면 오염될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상부댐 예정지는 산꼭대기 부근이라 좁고 거친 산길을 상당 시간 올라가야 했다. 산 위에 오르자 울창한 숲 사이사이로 석양이 보이는데 장관이다. 이런 산속에 댐을 만든다는 사실이 실감이 안 간다.

일부 주민ㆍ환경단체 "돈 낭비"

주민들과 환경 단체는 이 숲에 사는 천연기념물 등을 촬영하고 있다. 무인 카메라를 설치해 동물의 움직임을 포착해왔다. 화면엔 여러 종의 천연기념물과 희귀 동물이 보인다. 주민들의 목격담 중엔 경천동지할 내용도 있다. 박성율 원주녹색연합 공동대표는 그러나 “아직 화면을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한다. 댐 건설 강행을 위해 환경영향평가를 졸속으로 진행할 가능성에 대비해 결과가 발표된 직후 사진과 영상을 공개한다는 복안이다.

상부댐 지역은 깊은 산속이지만, 하부댐 예정지엔 마을이 있다. 주민 의견은 엇갈린다. 김삼례 부녀회장은 “국가에서 하겠다는데 막을 방법이 없고 다른 동네만 이익을 보고 정작 피해 당사자인 우리는 손해 볼 것 같아 찬성하기로 했다”며 “댐이 생기면 관광지가 되고 기업도 생긴다는데, 주민 대부분이 70~80대라 언제까지 살지도 모르니 돈으로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수발전소가 정말 랜드마크로 관광객을 모을까. 2006년 완공된 양양 양수발전소를 가보기로 했다. 지난 17일 오전 9시 30분쯤 양양에 있는 홍보관을 찾아갔다. 토요일인데도 방문객이 거의 없다. 3D 소개 영상을 보려 했더니 직원은 “고장 났다”고 말한다. 인근 하부댐으로 차를 돌렸다. 그곳에도 인적이 없다. 하부댐 가는 길목을 바리케이드로 차단했다. 적혀있는 안내 전화번호를 눌렀더니 “몇 년 전까지는 출입이 가능했으나 이젠 하부댐에 갈 수 없다”고 말한다. 적막한 주변을 둘러보는데 땅에서 무언가 꿈틀거린다. 뱀이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 놀러 오면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 쪽을 보니 거대한 송전탑과 선로가 정상을 향해 이어져 있다.

상부댐을 찾아 나섰다. 내비게이션 상 17㎞ 거리인 상부댐은 인제군에 있다. 차로 20분 정도 달리니 상부댐 표지판이 나온다. 산 정상으로 난 도로를 올라가는데 여기도 차단봉으로 막혔다. 게시된 번호로 전화를 거니 직원이 “원래 열어놓는데 제초 작업자들이 모르고 닫은 것 같다”고 말한다. 잠시 뒤 차를 타고 와 차단봉을 열어줬다. 상부댐엔 주차장이 있고 주변을 돌아볼 수 있다. 산꼭대기에 시멘트로 벽을 세워 댐을 만든 모습이 낯설었다. 녹색연합은 상부댐이 백두대간 핵심지역에 들어섰다고 비판해 왔다.

지난 17일 오전 양양 양수발전소 상부댐 모습. 산 정상 부근에 시멘트 벽을 쌓아 댐을 만들었다. 강주안 기자

지난 17일 오전 양양 양수발전소 상부댐 모습. 산 정상 부근에 시멘트 벽을 쌓아 댐을 만들었다. 강주안 기자

여기도 다양한 야생 동·식물이 산다. 댐에서 내려다보이는 연못을 ‘돼지 목욕탕’이라고 부른다. 멧돼지들이 못에 자주 찾아와 얻은 이름이다. 전날 봤던 홍천 산의 울창한 숲에 이런 댐을 만든다는 사실이 놀랍다. 상부댐에서도 관광객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양수발전소로 관광 산업이 발달한다는 주장이 공허하게 느껴진다. 하부댐 수몰 지역 주민을 이주시킨 마을도 가봤다. 여기서 만난 할머니는 “댐 생기기 전엔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댐이 생긴 뒤론 농사짓기도 힘들고 여러모로 나빠졌다”고 말한다.

문재인 정부서 세 곳 신설키로

이 같은 지역 주민들의 불만과 환경파괴ㆍ만성 적자 논란 속에 2011년 경북 예천을 끝으로 양수발전소 건립은 중단됐다. 그런데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재생에너지 3020’ 계획(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 20% 달성)을 세우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 증가에 따른 변동성 대비 등을 위해 세 곳에 양수발전소를 짓기로 했다.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돼 강원도 홍천과 경기도 포천, 충북 영동 세 지역을 선정했다. 문재인 정부 임기가 끝난 지난 5월까지 우선사업자 선정, 예비타당성조사 완료, 전기사업허가 취득, 건설기본계획 수립을 마쳤다. 총 사업비는 4조 3000억원에 이른다.

태양광 변화 반영한 새 계획 절실

그러나 전문가 사이에선 비용이나 환경을 고려할 때 다른 대안이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현정 녹색정치Lab그레 연구소장(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사)은 “남는 전기를 비축하는 방식으로 수소연료전지 발전소 등 비슷한 역할을 하는 대안이 있다”며 “변동성을 보완하는 종합적인 계획이 나와야 하며 지금 있는 양수발전소 가동률을 높이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에너지저장장치(ESS) 기술이 날로 발전하는 상황에서 10년 뒤에 완공할 양수발전소에 4조원을 투자하는 건 섣부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권 교체 때마다 전력 정책이 바뀌면서 혼란과 낭비를 초래하는 일은 양수발전소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금강 수력발전소 세곳 "올 스톱" 

영산강 보 발전소도 발전량 미미

◇가동 멈춘 금강보 수력발전소=지난 2일 오후 2시 30분쯤 경상북도 구미의 구미보 주변엔 운동하는 사람과 관광객이 군데군데 보인다. 보의 한쪽 끝에선 낙동강 물이 물결을 일으키며 수력발전소로 흘러 들어가면서 전기를 생산 중이다. 보 관계자는 ”발전기 두 대 중 한대를 가동 중“이라고 설명했다. 보 옆에는 구미보 수력 발전으로 1만 4000명이 1년간 사용하는 전력을 생산한다는 안내문이 서 있다. 하지만 4대강 보 일부는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지난 정부에서 완전 또는 부분 철거하기로 한 금강의 세종보와 공주보 등이다. 백제보를 포함한 3곳의 지난해 발전량이 0이다. 한국수자원공사에 따르면 영산강의 죽산보 수력발전소는 지난해 총 가동시간이 12시간이다. 모니터링을 위해 보를 개방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1만 3000명 분 전기를 생산하는 금강 백제보 수력발전소가 4대강 보 논란에 멈춰섰다. 강주안 기자

1만 3000명 분 전기를 생산하는 금강 백제보 수력발전소가 4대강 보 논란에 멈춰섰다. 강주안 기자

지난 정부서 철거를 결정했지만, 현장에선 ”물 건너갔다“는 분위기다. 죽산보 철거 반대에 나섰던 전남 나주 영산포 홍어거리 상인 양치권 영산강 뱃길복원 추진위원회 회장은 “철거 분위기가 전혀 없어 요즘은 집회도 안 한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난 정부에서 철거 방침이 발표됐지만 현재는 아무런 후속 조치를 않고 있다”고 밝혔다. 결정 과정 등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구자근 의원 "전기료 국민 부담"

막대한 돈을 들여 지은 발전 시설은 가동을 안 하면서, 조 단위의 돈을 들여 새로운 발전소를 지으려 한다. 구자근 의원은 “양수발전소에 들어가는 막대한 돈은 결국 국민에게 전기료로 돌아온다”며 “감사원 감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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