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ㆍ현직 경찰 간부들이 말하는 부끄러운 기억이다. 공통분모는 ‘정권 코드 맞추기’다. 경찰의 과오는 맹목적 충성에서 비롯된다. 경찰 개혁이 정치적 중립을 지향하는 이유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떠오른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 논란은 의외다. 권력에 복종하는 경찰을 더 공고하게 틀어쥐려는 모양새다.
수사권 세진 경찰 견제 필요하나
아픈 역사 소환하는 행안부 방안
더욱 불안한 건 속도다. 내무부 치안국ㆍ치안본부를 거친 경찰 조직이 노태우 정부에서 경찰청으로 분리된 1991년 이후 31년간 유지해온 체제를 바꾸는 일이다. "짧은 기간 동안 심도 있는 논의"라는 한창섭 행안부 차관의 말처럼 한 달 동안 회의 네 번 하고 결론 내렸다.
검찰과 대비하면 스피드가 실감 난다. 검찰총장추천위원회는 로스쿨 교수와 전직 검찰 간부 등 4명의 외부위원만 정하면 된다. 윤 대통령 취임 두 달이 지나도록 인선을 못 했다. 반면 6명의 민간위원이 참여하는 경찰제도개선 자문위원회는 구성부터 결과물 산출까지 두 달이 안 걸렸다. 행안부는 ‘토론회, 기자간담회, 관계기관 협의 등 다양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경청’하고 ‘시민사회, 국회 등의 우려 사항을 충분히 검토해’ 오는 15일까지 최종안을 마련한다니 광속 급이다.
경찰이 새 정부에 반기를 드는 등 특이 조짐이 있다면 서둘러 칼을 뺄 수 있다. 윤 대통령 당선 직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의원 관련 압수수색에 나서는 등 경찰은 '기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행안부 장관과의 관계는 어떤가. 이 장관은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 인선 과정에서 치안정감들을 일일이 면담하는 등 인사 권한을 보여줬다. 장관 지시를 경찰에 하달하는 역할은 경무관인 치안정책관이 맡는다. 한 전직 치안정책관은 “장관이 하늘에 떠 있는 물체가 문득 UFO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경찰에 알아보라고 지시해 확인 후 보고드린 일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태양계 행성이 유달리 크게 보이는 천문 현상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때론 행안부 장관의 검색 사이트다.
끈끈한 법무부-검찰과 전혀 달라
수사 권한이 커진 경찰 견제 방안이 경찰국 신설뿐이라면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 인권운동가 고 조영래 변호사는 경찰 총수였던 강민창 내무부 치안본부장이 ‘박종철 사건’으로 사퇴한 직후 “이제 아무도 역사의 시곗바늘을 ’박종철 이전‘으로 되돌려놓을 수 없을 것이다”(『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라고 단언했다. 일부 경찰관들은 행안부 경찰국이 내무부 치안본부로의 회귀라며 삭발과 단식을 이어간다. 국회의 자문 의뢰에 ‘경찰국 설치는 정부조직법과 경찰법 위반’이라는 의견을 낸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6ㆍ10 민주화 항쟁의 성과물을 훼손할까 우려스럽다”고 했다.
이 장관은 연일 지구대 등을 다니며 31년 전 치안본부와 완전히 다르다고 설득 중이다. “경찰국의 80~90%를 경찰관으로 채우겠다”는 식의 보완책은 오는 15일까지 얼마든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삭발한 경찰관들의 머리가 제 모습으로 돌아오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