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강주안 논설위원이 간다

생필품 지원 요청해와 집에 가보니 벌레에 쥐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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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보육원 나와 홀로 선 청년들〉

강주안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1. 지난 16일 오후 수도권에 사는 청년 A씨 집을 방문한 자립지원 담당자들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집안 곳곳에 곰팡이가 피고 벌레가 눈에 띄었다. 구석엔 각종 해충이 떼로 죽어있다. 벽돌이 눈에 띄었다. 이유를 묻자 “쥐가 나오는 곳을 막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보육 지원 속에 살아온 A씨는 나이가 차는 바람에 자립해야 했다. 생필품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에 기관의 문을 두드렸다. 면담을 진행하던 기관 측은 A씨에게 물품보다 시급한 현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집을 방문했다가 이런 모습을 확인했다. 방역 작업이 시작됐다.

할머니를 부양하게 된 보호종료아동의 집에서 발견된 벌레들(왼쪽)과 쥐가 못나오게 돌로 구멍을 막은 모습이다. [사진 경기도자립지원전담기관]

할머니를 부양하게 된 보호종료아동의 집에서 발견된 벌레들(왼쪽)과 쥐가 못나오게 돌로 구멍을 막은 모습이다. [사진 경기도자립지원전담기관]

#2. 독립할 나이에 이르러 홀로 서게 된 여성 B씨는 은둔하듯 산다. 전담기관에서 연락을 유지하며 관찰한 결과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에 B씨를 전문가에게 데려가 진단을 받았다. 결과는 정신 건강이 심각한 것으로 나왔다. B씨는 보육을 받는 동안 이런 진단 시도를 해본 적이 없다. 단체에 속해 그냥 자랐다. 이제 마음이 아픈 상태로 세상에 던져졌다.

‘보호 종료 아동’. 부모를 잃거나 부모가 키우지 못해 보육원 등지에서 살다 18살이 돼 독립하게 된 아이를 이렇게 불렀다. 이들 중 일부가 노숙에 몰리고 범죄에 빠져드는 실태가 언론에 조명되면서 정부는 지난해 종합 대책을 시행했다. 22일부터 이들에 대한 보호 기간이 24살까지로 연장된다. 이제 18살에 세상에 내몰리진 않게 된다. 이들을 부르는 호칭도 ‘보호 종료 아동’에서 ‘자립준비 청년’으로 바뀌었다. 1년 사이 자립 정착금이 늘고 주거 지원이 강화했다. 특히 이들을 돕는 인력이 늘었다. 지난 3월 확대 개편한 경기도 자립지원 전담기관(관장 이정소)이 본격적인 개별 상담을 시작하면서 보육원에서 나온 청년들의 아픔이 속속 드러났다. 전국이 비슷한 양상이다.

18살 되면 보육원 떠나야했지만

내일부턴 24살까지 보호 받아

◇사기당하고 범죄 몰리고=보호 종료 뒤 열심히 돈을 모아 전세로 거처를 마련한 C씨는 보증금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임대인이 문제였다. C씨는 "집 주인이 갭 투자 등에 보증금을 썼다가 큰 손실을 본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말했다. 가진 돈 전부를 날릴 위기를 어떻게 넘겨야 할지 막막하다. D씨는 모든 통장의 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아는 사람에게 속아 범죄에 연루되면서 사회봉사명령을 수행 중이다. 보호가 종료된 직후 사회로 나갈 때 보육원에서 저축해온 후원금과 자립정착금을 받는다. 이 돈을 노리는 사람들에게 자립 청년은 손쉬운 상대다. 보호 종료 아동을 도와온 교보교육재단 송헌석 사무국장은 "정에 굶주린 아이들이기 때문에 조금만 잘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전적으로 의지하는 경향이 있어 손쉽게 사기 범죄의 표적이 된다"며 "나쁜 의도로 접근한다고 의심되는 사례를 여러 차례 막았다"고 말한다.

경기 지역에선 보육원을 떠나는 청년들에게 자립정착 교육을 시작했다. 교재를 살펴보니 ▶다양한 금융사기 ▶취업사기 대처방법 ▶대포통장 처벌 ▶보이스피싱 ▶스미싱 ▶메신저피싱 등 이들이 당하기 쉬운 범죄 예방법이 들어있다.

◇자립하자 나타난 가족=첫발을 떼는 청년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갑작스레 닥친 가족 부양 의무다. 5살 때 한살 위인 형과 함께 경기도의 한 보육원에 맡겨진 E씨(28)는 중학교 때 형의 장애를 발견했다. 발달 장애와 뇌전증이 함께 나타났다. 결국 형은 다른 시설로 옮겼다. E씨가 보육원을 나오자 형을 돌봐야 한다는 통보가 날아왔다. E씨는 "형은 언제 발작이 일어날지 몰라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E씨는 자신과 형을 보육원에 맡긴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주민등록등본 등을 떼 주소를 확인한 뒤 아버지 집 앞에서 무작정 기다렸다고 한다. 갑자기 나타난 아들에게 아버지는 "나는 형을 돌볼 수 없다"고 거절했다. 형은 다시 시설에 들어갔지만 E씨는 여전히 보호자다. 치료비 등 형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E씨가 감당한다. E씨는 "초등학교 때 형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게 소문이 나니까 친구들이 ‘너희 형 아니냐’고 물었다"며 "어린 마음에 너무 창피해서 ‘우리 형 아니다’고 했는데 그게 지금도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대학 공부를 마치고 6개월~1년 단위로 일자리를 찾으며 앞날을 개척하는 E씨는 평생 형의 보호자 역할도 해야 한다.

지난 16일 오후 경기도자립지원전담기관에서 최보영 자립지원전담인력, 김진영 사무국장, 김미라 사례관리 남부권역 팀장, 조정아 자립지원전담인력(왼쪽부터)이 자립준비청년 지원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경기도 의왕=강주안 기자

지난 16일 오후 경기도자립지원전담기관에서 최보영 자립지원전담인력, 김진영 사무국장, 김미라 사례관리 남부권역 팀장, 조정아 자립지원전담인력(왼쪽부터)이 자립준비청년 지원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경기도 의왕=강주안 기자

벌레가 가득한 집에서 사는 A씨 역시 할머니를 부양한다. 자립지원 전담기관 관계자는 "할머니에게 치매 증상이 있어 관련 지원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청년이 혼자 해내긴 어려워 이 부분도 돕고 있다"고 말했다. F씨는 누나가 찾아와 곤경에 빠진 경우다. 동생 명의로 휴대전화들을 개통한 뒤 거액을 대출하고 잠적했다. F씨는 졸지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사회적 관심이 늘면서 자립준비 청년들의 경제 여건은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가족을 돌봐야 하는 청년들은 여전히 막막하다. 정부 지원 등이 이런 사각지대에 집중돼야 하는 이유다. 조기현 보건복지부 청년정책자문위원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청년은 돌봄과 생계를 책임지면서 진로까지 고민해야 하는 어려움에 부닥친다”며 “돌봄 서비스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흉터로 남은 보육원 삶=자립 준비를 말하다 보면 보육원 시절을 상기한다. 청년들은 보육원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의 문제를 많이 지적한다. 보육원 출신 후배를 돕는 바람개비 서포터즈 활동가 강영선(37) 올드림 대표는 “드라마에 나오는 보육원 출신은 범죄자 등 부정적으로 묘사된다”며 “이런 잘못된 이미지가 보육원 아이들을 평생 힘들게 한다”고 지적한다.

보육 시설 출신 중 빗나가는 경우가 없진 않다. 그러나 대다수는 성실히 살아가려 애쓴다. ‘보육원 출신’이라는 선입견이 이들을 괴롭힌다. E씨는 "예전엔 고아원이라 했는데 사회적 인식이 나쁘다는 이유로 보육원이 됐다"며 "드라마 때문에 보육원마저 이미지가 나빠져서 내가 살던 보육원은 이름을 ‘○○○집’으로 바꿨다"고 말한다. 칸 영화제에서 송강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브로커’도 자립 청년들의 관심 대상이다. 취재하던 중 이 영화를 봤다. 보육원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장면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미혼모(이지은)의 아이가 자랄 곳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보육원 행이 불행으로 비치고, 보육원 출신 중 기대를 모은 청년(강동원)도 비루한 삶을 면치 못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면 보육원 생활에 대한 반감이 느껴지곤 한다. 한 청년은 오래전에 작고한 보육원 설립자의 일생을 꿰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걸 다 아냐"고 물으니 "매일 교육 받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체벌의 기억도 뚜렷하다. 외출을 철저히 통제해 친구들과 너무 놀고 싶을 땐 보충 수업이 있다고 속였던 경험을 말한다. 청년들은 "보육원에 아이들은 많고 선생님은 적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점도 이해는 간다"고 말한다. 저출산이 심각한 시대에 아이를 인재로 키우는 노력이 절실하다.

어려울 때 상담할 조언자 절실

청년들은 "보육원에 있을 때부터 돕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후원 이력에 따라 보육원을 나설 때 각기 다른 액수를 받게 된다. 강영선 대표는 "좋은 후원자를 만난 아이는 사회에 나와서 적응을 잘한다"며 "직접 교류하지 않고도 특정한 아이에게 후원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아이에게 후원금을 보내면 정부가 돈을 보태는 ‘디딤씨앗통장’이 대표적이다. 이런 도움이 훗날 홀로 서는 순간에 큰 힘이 된다.

공통으로 지적하는 또 하나의 어려움은 일상적인 문제에 부닥쳤을 때 상담할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E씨는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우린 사소한 일이 생겨도 물어볼 어른이 없다"고 말한다. 정부도 심리상담을 확대하고 자립지원 전담인력을 계속 확충해나갈 계획이다.

인터뷰가 끝나가는 시점에 E씨가 갑자기 "기자님, 제가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라고 한다. 얘기해보라 하자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생기면 부모에게 제가 보육원 출신이라는 걸 말씀드려야 할까요"라고 묻는다.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나중에 여러 사람 생각을 들어 알려줘야겠다’고 마음먹으며 부실한 즉흥 답변을 건네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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