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리비안 앞세운 미국 최강, 배터리는 한·중 양강

중앙일보

입력 2021.11.20 00:20

수정 2021.11.20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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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전기차의 공습

영국 맨체스터 외곽의 한 주차장에 테슬라 전기차 ‘모델3’가 줄지어 서 있다. [AP=연합뉴스]

한국의 현대·기아차,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 독일의 폴크스바겐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로의 전환을 선언하면서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지각 변동이 시작됐다. 테슬라 등 전기차 업체들은 신차를 쏟아내며 시장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기존 완성차 업체는 대대적인 투자와 구조 개편 계획을 밝혔다. 100년 기술이 축적된 ‘내연기관(엔진)’이 필요 없는 전기차시장을 놓고 글로벌 업체간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루시드 에어’ 1회 충전 주행거리 840㎞
 
현재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곳은 미국이다. 미국에서도 테슬라·리비안·루시드와 같은 전기차 전문 신생업체들이다. 올해 들어 3분기까지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301만여 대인데, 테슬라가 62만5000여 대를 팔았다. 리비안·루시드는 최근 첫 전기차를 선보였는데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루시드, 리비안 전기차의 사전예약 물량은 각각 1만7000대, 5만6000대에 이른다. 이런 추세라면 2023년에는 테슬라·리비안·루시드 3개 업체의 전기차 시장 점유율이 25%에 이를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이들 업체에 이어 포드·GM 등 미국의 기존 완성차 업체까지 전기차 업체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 스타트업의 전기차가 승승장구 할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전기차의 가장 큰 단점이었던 1회 충전 주행거리를 획기적으로 끌어 올린 덕분이다. 테슬라는 2018년 ‘모델3 롱레인지’를 내놓으면서 당시 고작 200여 ㎞, 길어야 300㎞ 정도이던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500㎞로 확 끌어 올렸다. 모델3 롱레인지는 미국에선 518㎞(EPA 인증 기준), 유럽에서는 560㎞(WLTP 인증 기준)의 주행 거리를 각각 인증받았다. 당시 국내 경쟁 모델이었던 아이오닉·코나의 주행거리는 200~300㎞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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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최근 루시드가 출고를 시작한 ‘루시드 에어’는 1회 충전 주행거리가 840㎞(EPA)에 이른다. 현존하는 전기차(승용차 기준)로는 가장 긴 주행거리를 자랑한다. 리비안이 내놓은 ‘R1T’은 픽업트럭인데도 주행거리가 505㎞(EPA)다. 차종이 달라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국내 트럭 전기차의 주행거리는 211㎞(포터2 일렉트릭)다. 국산 전기차 중 주행거리가 가장 긴 기아차의 ‘EV6 롱레인지’도 1회 충전 주행거리는 434~475㎞(한국 기준)에 그친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EPA, WLTP 등 인증 방식에 따라 주행거리가 달라지기 때문에 직접 비교는 힘들다”면서도 “미국의 전기차 업체가 기술력을 바탕으로 주행거리를 늘리기 시작하면서 전기차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전기차시장에서 미국의 독주가 계속 이어지긴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본·독일 등 내연기관 완성차 업체의 기술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은 전기차 기술력도 미국보다 앞선다는 평가다. 일본 닛케이신문이 특허조사기관 페이턴트리설츠와 공동으로 7월 기준 미국에 등록된 전기차 특허 보유 현황을 조사해 점수화했더니, 1위는 일본의 도요타로 8363점이었다. 2~4위는 포드(미국)·혼다(일본)·GM(미국) 순이었다. 테슬라는 1741점으로 8위를, 현대차는 1694점을 받아 10위를 차지했다. 점수는 경쟁사의 특허 인용 건수, 특허심판 제기 건수 등 특허 중요도를 반영해 환산했다.
 
전기차 기술력을 갖춘 일본이나 내연기관차 기술력이 높은 독일·한국 완성차 업체가 본격적으로 전기차로의 전환을 시작하면 미국의 위상도 흔들릴 것이라는 얘기다. 독일·일본·한국 등이 미국에 뒤쳐진 건 자동차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로 전기차로의 전환이 늦었기 때문이지 자동차를 만드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이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도 포드·GM이 테슬라·루시드에 밀리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현대차의 본격적인 전기차 ‘아이오닉5’만 해도 올해 초 출시 직후 미국·유럽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기도 했다. 메르세데스-벤츠나 폴크스바겐도 본격적으로 전기차를 선보이면서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판매량 상위 10곳 중 4곳이 중국 업체
 
특히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 산업은 중국·한국이 크게 앞서고 있다. 배터리 시장조사업체인 아다마스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전 세계에서 판매된 전기차 배터리는 184.1기가와트시(GWh)인데, 28.5%인 52.4GWh가 중국 CATL 제품이었다.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이 24%(44.2GWh)로 2위, 일본의 파나소닉이 16.2%(29.8GWh)로 3위를 차지했다. 4~6위는 BYD(중국), 삼성SDI(한국), SK온(한국)으로 중국과 한국이 2강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테슬라는 자체 배터리 공장을 갖고 있지만, 중국·한국으로부터 핵심 부품을 사다 조립만 하고 있다. 포드·GM은 전량 한국·중국·일본 배터리를 쓴다. 배터리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면 이들 업체는 사실상 전기차를 출고할 수 없다. 포드·GM 등이 최근 한국 업체와 손잡고 자국에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모터나 열 제어 부품 등 전기차의 주요 부품 산업은 중국이 가장 앞서고 있다는 평가다. 내연기관차 시대에선 주목을 받지 못했던 중국이 전기차 배터리는 물론 전기차 부품 산업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테슬라만 해도 배터리는 CATL 제품을, 열 제어 부품은 저장싼화 제품을 쓴다. 조만간 모터도 중국의 부품업체인 이노밴스 테크놀로지로부터 공급 받을 예정이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00% 중국산 테슬라 모델3가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테슬라뿐 아니라 폴크스바겐·GM 등의 전기차에도 중국산 부품이 쓰인다. 중국이 전기차 부품 강국이 된 건 정부가 전기차 산업을 집중 육성한 덕분이다.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을 보면 상위 10개 업체 중 4곳이 중국 업체이기도 하다. 아직은 대개 주행거리 200㎞ 미만 저가 자동차 수준이지만, 전 세계 최대 전기차시장인 내수 수요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한국의 전기차 관련 경쟁력은 이들 나라에 밀리고 있다. 전기차를 생산하는 업체도 현대·기아차 외에는 없는 실정이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빅블러(Big Blur·산업간 경계가 사라지는 현상) 가속화의 파급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차지수(EVI) 기준 한국의 전기차 경쟁력을 중국·독일·미국·일본에 이어 5위 수준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올해 들어 국내 전기차시장이 빠르게 확대하고 있는 데다 현대차가 글로벌 완성차 업체 중 전기차 판매 5위를 차지하면서 관련 산업도 점차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