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빚에 짓눌린 MZ세대
7월 ‘마통’ 대출 잔액 40조원으로 급증
젊은층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급증하고 있는 건 기본적으로 주택시장 불안에 기인한 ‘영끌’(대출을 있는 대로 받아 집을 사는 것)과 자산시장 과열로 인한 ‘빚투’(빚내서 투자하는 것)에 있지만, 핀테크(금융기술) 기술을 앞세운 금융·증권사의 과도한 대출 경쟁과도 무관치 않다. 마통 등 신용대출은 복잡한 서류를 떼 은행을 방문할 필요 없이 스마트폰으로 5분 정도면 만들 수 있다. 그러다보니 너도나도 대출을 받아 빚투에 나서거나 집 사는 데 보태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제2의 신용카드 사태가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2017년 이후 지난해 7월까지 5대 은행(KB국민·우리·신한·하나·NH농협)에서 20·30대가 만든 마통은 총 123만2123건으로, 같은 기간 개설된 전체 마통(337만4908건)의 36.5%를 차지했다. 올해 7월 마통 대출 잔액은 40조2596억원으로 1년 전(38조7883억원)보다 1조4713억원 증가했다. 정부가 대출 규제에 나서고 있는 최근에도 마통은 급증세다. NH농협은행이 주택담보대출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지난달 19일 직후인 20일 NH농협을 제외한 4대 은행에서 하루 새 1941개의 마통이 새로 개설됐다. 직전 일주일(9~13일) 평균치인 1228개보다 700개가량 증가한 수치다. 23일에도 신규 마통은 1850개가 개설됐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마통 등 금융권의 일부 상품은 앱에서 편리하게 대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젊은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통만큼 손쉽게 빌릴 수 있는 게 증권사의 신용융자(증권사가 주식 매수 비용을 대출해 주는 것)다. 신용융자는 증권계좌를 갖고 있는 성인이면서 신용불량자만 아니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마통과 더불어 급증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권사의 신용융자는 지난달 기준 25조3656억원으로 1년 전인 지난해 8월보다 10조원 넘게 불어났다. 이 기간 신규 개인 주식 투자자의 53.5%가 30대 이하 젊은층이다.
이 같은 증권사의 신용융자는 매수 주식의 담보인정비율만큼 증권사가 돈을 빌려주는 형태다. 가령 A가 사려고 하는 B사 주식의 담보인정비율이 40%라면 A의 총 매수액의 40%를 증권사가 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증권사들은 지금까지 신용융자 때 차주의 신용 등을 고려하지 않았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자기자본이 50~60%는 있어야 신용융자를 받을 수 있고, 담보가 확실하기 때문에 신용융자 때 차주의 소득이나 다른 대출 여부는 따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득 등을 보지 않기 때문에 신용융자가 신용대출과 맞물려 젊은층의 가계부채 뇌관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예컨대 신용대출 60%, 신용융자 40%를 받아 1000만원어치의 주식을 샀는데 이 주식이 며칠 새 600만원 수준이 됐다면 증권사는 신용융자 회수를 위해 반대매매에 나설 수 있다. 그러면 주가 하락률은 -40%지만, 신용융자와 이에 따른 이자를 제하면 실제로 투자자가 회수할 수 있는 자기자본은 200만원이 채 안 된다. 대출로 마련한 자기자본 600만원 중 70%가량을 고스란히 빚으로 떠안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젊은층의 대출 연체율이 상승하는 등 가계부채 문제가 폭발하더라도 2002년 신용카드 사태와 같은 사회문제로까지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당시엔 신용카드사가 소득이 없는 대학생에게까지 신용카드를 남발하면서 화를 자초했지만, 요즘은 학자금대출 등 특수 상품을 제외하고는 소득을 증빙해야만 대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선 주택담보대출은 총부채상환비율(DTI)이 적용된다. DTI는 해당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해 차주가 매달 갚아야 하는 총 대출 이자(원금 포함)가 연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DTI가 40%이고 연봉이 4000만원이라면 갚아야 할 주택담보대출 원금·이자와 기타 대출 이자 총액이 연 1600만원을 넘길 수 없다는 얘기다.
부동산 등 과열된 자산시장 진정시켜야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은 20·30대나 소득이 없다면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충분하더라도 DTI 규제에 걸려 원하는 만큼 대출을 받기 어렵거나 대출을 받을 수 없다. 신용대출이 급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주택담보대출이 충분히 나오지 않자 마통 등 신용대출을 통해 잔금을 치른 예가 많았다는 분석이다. 마통 등 신용대출도 소득을 기반으로 한도가 정해진다. 한 인터넷전문은행 관계자는 “대출을 위해 진행하는 신용조회 때 기본적으로 타 금융기관의 대출 현황 등을 모두 볼 수 있고, 이를 고려해 대출 한도를 설정한다”며 “앱을 통해 대출이 편리해진 것뿐이지 소득이 없는데도 대출이 된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20·30대의 대출 증가 원인이 사회에 팽배한 영끌·빚투 분위기인 만큼 부동산 등 과열된 자산시장을 진정시키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산시장에 투자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분위기가 가계 대출 급증의 배경”이라며 “근본적인 처방 없이 대출 총량 규제를 해서는 큰 효과를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소득 없는 20대에도 카드 발급, 신용불량자 240만 명 양산
그러나 금융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20·30대가 무분별하게 신용카드를 사용하면서 연체율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연체율에 놀란 정부가 뒤늦게 현금서비스를 걸어 잠그는 식으로 규제에 나섰지만, 되레 이게 도화선이 됐다. 이른바 ‘돌려막기’(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아 다른 신용카드 빚을 갚는 것)가 막히면서 연체율이 급증하기 시작한 것이다.
1997년 말 143만 명 수준이던 신용불량자(현 신용유의자)는 2002년 신용카드 사태 이후인 2003년 말 372만 명으로 급증했다. 이 중 240만 명(64.5%)이 신용카드 관련 신용불량자였고, 대개 20·30대 젊은층이었다. 신용카드 사태로 KB국민·우리·외환카드가 줄줄이 모기업인 은행에 흡수됐고, 직격탄을 맞은 LG카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