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을 가운데 두고 한쪽에서는 무료 진료소가, 다른 쪽에선 김정환 신부가 운영하는 무료 급식 ‘명동 밥집’이 운영 중이다. 이날 메뉴는 제육볶음이다. 밥집과 진료소에선 각각 대기표를 나눠 준다. 밥집 역시 노숙자처럼 보이지 않는, 평범한 사람도 많다. 키가 큰 외국인이 배낭을 메고 찾아와 밥을 먹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서울 청파동에서 온 A씨(75)는 “아는 사람에게 얘기를 듣고 찾아왔다”며 “요즘 코로나 때문에 보건소와 동네 의원에서 진료를 받는 게 불편해졌는데 여기가 편하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에서 온 B씨 역시 “집에서 왔다”며 “밥집에서 밥도 먹을 수 있어 여러모로 좋다”고 말했다. 노숙인이 아니면서 이곳을 찾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본 결과 요즘 살기 어려워지면서 의료기관과 약국에서 내는 본인부담금을 절약하려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병명도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만성질환이 다수였다. 노숙자들은 근골격계 질환이 많았고 연조직염 등 노숙 생활에서 얻은 염증에 시달리는 환자들이 눈에 띄었다.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의료진이 우수하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왔다”는 사람도 있다. 안규리 서울대 명예교수가 무료 진료 활동을 이끌면서 인지도가 높아진 결과다. 보건 당국의 허가로 의사 진료를 마친 뒤 현장에서 곧바로 약을 받을 수 있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현장 진료를 총괄하는 이호영 분당서울대학교병원 핵의학과 교수는 “현장에서 설문을 해보면 길에서 지내는 노숙자가 30% 정도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인근 쪽방촌 주민 등으로 파악된다”며 “대부분 연금만으로 사는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라고 말했다.
무료 진료소를 찾는 일반 시민이 늘면서 마찰이 빚어지기도 한다. 이날은 진료 대기 번호 순서가 지나간 뒤 늦게 나타난 사람이 “옆에 밥집에서 식사하고 왔다”며 진료를 요청했으나 이미 당일 진료 가능 인원을 초과해 진료를 받지 못했다. 순서를 놓치면 일주일 뒤에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당일 접수가 불가하고 일주일 전에 예약 명단에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임만택 라파엘 나눔 후원회장은 “일반인들 때문에 노숙자 진료 기회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대부분 어려운 시민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일단 오시는 분들은 선착순으로 진료해드린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주안 기자 joo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