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기증받은 ‘인왕제색도’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회화 6000여점을 대표할 만한 걸작이다. 기증자의 뜻이 잘 살아나게끔 관리‧준비해서 오는 6월 특별전을 통해 국민께 선보이겠다.”
지난달 삼성 측이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을 기증하면서 국보 14건, 보물 46건 등 총 9797건(2만1600여점)의 문화재를 품에 안은 국립중앙박물관 민병찬 관장의 말이다. 그 말처럼 이번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은 양과 질에 있어 전무후무한 ‘역대급’ 리스트를 자랑한다. 특히 겸재 정선의 후기 걸작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와 현존하는 고려 유일의 ‘고려천수관음보살도’(보물 제2015호), 단원 김홍도의 마지막 그림인 ‘추성부도’(보물 제1393호) 등은 상대적으로 빈약했던 국립중앙박물관의 서화 컬렉션을 단번에 업그레이드 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컬렉션 '업글'한 기증유물
"딸 시집보내는 듯" 만감 속에 내놓은 그들
1946년 정식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 유물은 올 3월31일 기준으로 총 41만3004점. 이 가운데 2만8657점(6.93%)이 개인‧단체의 기증 유물이다(이건희 기증품 제외). 시간‧돈‧안목을 투자해 평생 모은 수집품을 대가 없이 내놓은 기증자들 덕에 관람객‧연구자들이 누릴 수 있는 문화재가 대폭 늘었다. 특히 지난해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국보 180호)까지 총 305점을 기증한 ‘개성상인 후손’ 손창근(92)씨의 사례는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을 일깨우며 감동을 안겼다. 그에 앞서 국립중앙박물관을 술렁이게 했던 대표적인 기증품과 기증자를 돌아본다.
(※대표 기증유물 선정은 박물관 유물관리부의 도움을 받았고 기증에 얽힌 사연은 이광표 저『명품의 탄생』(산처럼) 등을 참고.)
■ 백자 상감 연꽃 넝쿨무늬 대접(국보 제175호)
조선 15세기 제작으로 추정되는 이 백자는 동원 이홍근(1900~80)이 30년 넘게 수집했다가 사후 중앙박물관에 인계된 4941점(국보 1점, 보물 2점 포함) 중 하나다. 그의 유족들은 현재 시가 수천억원대 미술품을 통째 기증했을 뿐 아니라 고고학과 미술사학 연구 발전기금으로 은행 주식 7만여주(당시 가액 약 8000만원 상당)도 함께 내놨다. “수집 문화재는 단 한 점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고인의 유지에다 힘을 보탠 결과다.
이홍근은 1900년 개성에서 태어났다. 1919년 개성 간이상업학교를 졸압하고 서울에 올라와 동양물산에 입사한 뒤 곡물상회, 양조회사, 보험사 등을 이끌다 1960년 동원산업을 설립했다. 6‧25 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문화재가 방치되고 훼손되는 걸 안타깝게 여기다 사재를 털어 이들 유물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은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1967년 서울 성북동 자신의 집에 동원미술관을 설립하기도 했다. 기름 값이 오를 때는 자신의 거주 공간 난방비를 줄이면서도 지하 수장고의 냉난방 제습시설을 가동하는 등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동원 컬렉션은 불교 공예, 토기, 와당, 고려청자, 조선백자와 분청사기, 각종 서화 등을 망라했다. 동원미술관 개관 직후 일본의 모 재벌총수가 미술관 관람 뒤에 도자기 한 점을 마음에 들어하며 어떤 조건이라도 좋으니 양도해달라고 3일간 요청했는데 거부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는 한번 수집한 것은 다시 내다팔지 않았다. 우리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산 것이니 되판다는 생각이 없었고 선인들의 삶이 깃든 고미술품이 여러 손을 거쳐 떠도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 대보적경 권 제59(국보 246호)
이를 기증한 이는 혜전 송성문(1931~2011). 예전 수험생의 필독서라 할 『성문종합영어』의 저자다. 2003년 30여년간 모은 고문서 컬렉션 26점과 운보 김기창 화백의 ‘동해일출도’ 등 27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국보 5건, 보물 21건을 포함, 총 102점에 이르렀다. 특히 지정문화재 26건이 한 번에 기증된 건 당시로선 전례없는 일이었다. 한석봉의 서첩 1건, 숙종대의 화첩인 ‘기해기사계첩’ 1건 등도 포함됐다.
그는 1970년대 “제지공장 등에서 양잿물에 씻겨내려가는 귀중한 고서와 고문서를 보고 가만 있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수집을 시작했다. 모을 때부터 나라에 헌납하겠단 생각이었고 『성문종합영어』 등으로 번 돈을 모두 고서, 전적 수집에 썼다. 2003년 기증식엔 관심 받는 게 부담스럽다며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의 뒤를 이어 성문출판사를 운영하는 아들 송철씨는 기증식 당시 “아버지 재산은 살고 계신 아파트 한 채밖에 남은 게 없다. 그래도 생애 최고 결정을 한 것이라고 기뻐하고 계시다”고 전했다. 혜전은 8년 간암 투병 끝에 2011년 별세했다.
■ 백자 청화 난초무늬 조롱박모양 병(보물 제1058호)
이 백자 병이 기증된 때는 1974년 3월. 수정 박병래(1903~1974)가 작고하기 두달 전이다. 성모병원 설립자이자 가톨릭의대 학장, 한국결핵협회 회장 등을 역임한 그가 40여년간 모은 조선백자 가운데 362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선뜻 내줬다. 개인의 컬렉션을 대량으로 사회에 기증한 것은 이때가 처음으로 꼽힌다.
“도자와 함께 살아온 내 인생은 지극히 행복했다. 그러나 조상들이 만든 예술품을 혼자만 가지고 즐긴다는 것이 죄송스럽기도 했다. 몇십년 동안 도자와 함께 지냈던 즐거움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더 행복하겠는가. 지금 나는 과년한 딸을 정혼(定婚)시킨 듯한 기쁨에 넘쳐 있다.” 이렇게 소회를 말한 그는 기증 특별전 개막을 열흘 앞두고 눈을 감았다.
■ 고려불화 수월관음도
“제가 한 일이라기보다 그림 자체가 제자리를 찾아온 셈이죠.” 2016년 윤동한 한국콜마홀딩스 회장이 기증식 때 한 말이다. 그가 수월관음도를 처음 만난 건 이로부터 6~7년 전 프랑스 파리 기메박물관 한국관에서였다. 당시 해설사가 “한국 중앙박물관에도 없는 그림”이라고 소개하자 자존심이 상했던 그는 수년 간 수소문 끝에 재일동포 소장자로부터 한 점을 구매했다. 구매가는 25억원으로 알려진다. 그는 이를 그대로 기증했고 국립중앙박물관은 처음으로 수월관음도를 보유하게 됐다. 작품은 14세기에 제작돼 조선시대 일본에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윤 회장은 대웅제약 부사장을 거쳐 1990년 화장품·의약품 제조업체인 한국콜마를 세웠다. ‘역사 경영’이라는 철학을 내세워 2006년 처음 치러진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점수를 그해 신입사원 채용부터 반영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순신 연구가’로 이름 났고 아예 이를 특화해 연구하는 여해재단을 2017년 설립했다. 윤 회장은 2019년 29년간 한국콜마를 이끌었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