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문 탓 선거 치르는데…” MZ세대, 민주당 ‘페로남불’에 분노

중앙일보

입력 2021.04.10 00:26

수정 2021.04.10 07:00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MZ세대 표심 좌우한 4대 키워드 - 젠더

과연, 누구의 말대로 ‘성인지 감수성을 집단 학습할 기회’였을까. 지난 7일의 재보궐 선거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 서울·부산 시장이 빌미를 제공해 치러졌다. 젠더 이슈가 짙게 드리워진 선거일 수밖에 없었다. 당장 오세훈·박형준 후보는 당선 확정 후 “성폭력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돕겠다”고 밝혔다.
 
젠더 이슈는 2030 MZ세대가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이 젠더 이슈가 ‘무능·위선·내로남불’과 뒤섞이며 MZ세대의 표심은 민주당을 대거 이탈했다.  

MZ세대, X세대·86세대와 달리
남녀 갈등 주요 이슈 첫손 꼽아
“일상의 민주화이자 생존 영역
젠더 문제 민감하게 받아들여”

2019년 11월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은 한 여성 포럼에서 “시정 전반의 여성 참여를 통해 성(性) 주류화를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해 9월 부산시 보도자료는 ‘오거돈 시장은 “성희롱은 민선 7기에서 뿌리 뽑아야 할 구태”라며 일벌백계 의지를 밝혔다’고 적고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MZ세대는 이 지점에서 분노한다. 윤창중·박희태 사건 등 야권도 젠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MZ세대는 민주당에 대해 말로 내뱉었으나 지키지 못했고, 심지어 잘못까지 저질렀으니 무능이고 위선이며 내로남불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2030은 이를 ‘페로남불’로도 부른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면서도 성추행을 저지르거나 양성평등 의식이 부족함을 일컫는다. 공교롭게도 ‘무능·위선·내로남불’은 선관위가 4·7선거에서 사용 금지한 문구다. 4·7 선거 투표 전후 MZ세대를 만나봤다.
 
지난 5일. 서울 유권자인 최모(26)씨는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성폭력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 불러 논란을 일으킨 고민정·남인순·진선미 의원을 선거 캠프에 넣었다”며 "이번 선거를 치르게 된 이유에 대한 숙고도 없는 것 아니냐”고 울분을 토했다. 부산의 옥모(37)씨는 “당헌·당규까지 바꾸면서 재보궐 선거에 후보를 내는 걸 보고 민주당 후원비를 끊고 돌아섰다”고 밝혔다. 


이번 선거 지역이 아닌 곳의 청년층 분노도 비슷했다. 대학생 윤모(23·경기도)씨는 “문재인 정부에서 묻고 지나가는 젠더 이슈 때문에 민주당 지지를 철회했다”고 말했다. 김모(26·경기도)씨는 “사상 첫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고 자처하는 정권에서, 성추문으로 선거를 치르는 건 제 발에 걸려 넘어진 꼴”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일인 7일 여의도 한 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투표 당일인 7일.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김모(남·28)씨는 “박영선 후보가 여성 부시장 제도를 도입한다고 했는데, 평등과 기회보다 편향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서울 강북구의 이모(여·26)씨는 “여성에게 기회를 더 준다는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고 밝혔다. 이런 흐름은 실제 표심으로 이어졌다. 투표 직후 방송 3사의 공동 출구 조사를 보면 20대 이하 남성의 72.5%가 오세훈 후보에게, 20대 이하 여성 중 15.1%는 여성의 권익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군소정당에 투표했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위원은 “20대 이하의 표심은 젠더 이슈가 표면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특히 20대 여성들의 선택은 문 정부의 강한 지지층이었던 그들이 젠더 이슈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이탈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MZ세대는 젠더 이슈에 민감하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에 따르면, Z세대와 M세대는 ‘남녀갈등’을 ‘우리 사회의 갈등 영역’ 1위, 2위로 각각 뽑았다. 반면 X세대와 86세대는 5위 밖이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 이슈’에 있어서도 Z세대와 M세대는 ‘인권· 평등’을 각각 2위에 올려놨다. X세대와 86세대는 각각 4위, 5위의 관심에 그쳤다.

4.7 재ㆍ보궐선거일인 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주민센터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한 시민이 투표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이에 대해 “성희롱 예방 교육 의무화가 양성평등을 MZ세대에게 기본값으로 심었다”며 “86세대가 국가의 민주화를 논했다면 MZ세대는 일상의 민주화인 젠더 이슈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정희원 애리조나 주립대 교수는 “2030은 젠더 관련 정책을 삶의 질과 안정성을 보장받기 위한 생존 영역으로 간주한다”고 밝혔다.
 
젠더 이슈는 향후 선거에서도 변수로 작용할까. 정한울 전문위원은 “이번 선거에서 민감성을 드러냈기 때문에 거대 정당은 젠더 이슈를 쟁점화하지 않겠지만, 군소정당은 젠더 이슈로 선명성을 부각하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재호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2030 남녀 모두 특혜보다 공정한 출발과 공정한 경쟁을 원한다”고 했다. 지난 9일. 부산의 한 30대 유권자는 이렇게 말했다. “남자·여자가 반대말이 아니라 공정·차별이 반대말이라는 걸 알면 좋겠다.”
 
90년대 ‘오렌지족’ X세대, 이젠 MZ세대와 대척점
MZ세대는 그야말로 ‘요즘 세대’다. 1980년~90년 중반에 태어난 밀레니얼(Millennials)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Z세대(Generation Z)를 아우르는 표현으로 대다수 20~30대에 해당한다. 통계청 2019년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MZ세대는 1696만 7925명으로 전체 인구의 32.76%를 차지한다.  
 
90년대만 해도 X세대는 신세대로 꼽혔다. 70년대생인 이들은 해외 명품과 자가용에 익숙한 ‘오렌지족’으로 불렸다. 하지만 40대에 접어든 이들이 어느덧 기성세대로 자리매김하면서 MZ세대와는 가장 대척점에 서 있다. 80년대 최신 컴퓨터 이름에서 따온 386세대는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생의 민주화 세대를 의미한다. 나이가 40대, 50대로 들어가며 ‘3’이 지워진 채 ‘86세대’ 혹은 ‘n86세대’라 불린다.
 
MZ세대 안에서도 밀레니얼세대는 베이비부머의 자녀로 유년기 시절 경제 호황의 과실을 누렸다. 반면 X세대의 자녀인  Z세대는 어린 시절 외환위기, 대학 시절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다. ‘각자도생’이 기본이라는 위기의식이 밀레니얼세대보다 강한 이유다.
 
특별취재팀=김창우·김홍준·고성표·김나윤 기자
오유진·원동욱·윤혜인·정준희 인턴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