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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LH사태 등 불공정 이어져, 배신한 꼰대 여당에 실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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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호 04면

MZ세대 표심 좌우한 4대 키워드 - 공정

지난해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직고용하는 문제와 관련해 불공정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연합뉴스]

지난해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직고용하는 문제와 관련해 불공정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연합뉴스]

“20대가 배신을 했다고요? 배신한 건 우리가 아니고 정부 여당 아닌가요?”

아빠 찬스, 부동산 투기에 허탈 #‘공정·정의·평등’의 가치 무너져 #“반칙으로 큰돈 버는 모습에 화 나” #20대 보수화 지적엔 동의 안 해 #“대선서 야당에 표 줄지 알 수 없어”

재보궐 선거가 치러진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한 투표소에서 막 투표를 마치고 나온 김모(26)씨의 얘기다. 김씨는 “오늘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보수 성향의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를 찍었다”고 했다. 김씨의 얘기는 이랬다.

“보수 야당이 여전히 맘에 안 드는 것도 사실인데 지난 4년 동안 대통령과 정부가 내세운 ‘공정’한 사회는 어디에 있느냐. 여론조사에서 20대 표심이 야당 쪽으로 기우는 결과가 나오자 ‘역사적 경험이 부족하다’라느니 ‘20대가 보수화됐다’는 식으로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양 말하더라. 자신들이 만든 프레임에 우리를 재단하는 행태는 전형적인 꼰대들의 특징이다. 정나미가 다 떨어졌다.”

이번 선거는 여당 측에서 보면 “20대가 배신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난 선거들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왔다. 서울시장 선거에선 오세훈 후보가 20대 투표자의 절반 이상(55.3%)의 지지를 얻었다.〈그래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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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정부 여당에 큰 지지를 보냈던 20대의 마음이 이렇게 확 바뀐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이 정부가 내세운 국정 가치 중 하나였던 ‘공정’을 키워드로 꼽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동안 정부 여당이 내세운 공정의 화두는 2017년 5월 문 대통령의 취임사의 한 대목인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에서 시작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던 20대는 문 대통령이 공정과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를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이런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 잊을 만 하면 터져 나왔다.

최근 20대를 분노하게 만든 사건은 바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사태’다. LH 일부 직원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개발예정지에 투자함으로써 막대한 보상금을 챙긴 행태는 이 정부가 내세운 ‘공정’의 가치를 훼손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2년째 취업준비 중인 박모(27)씨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 4년 등록금을 알바하며 보탰고, 일부는 대출금으로 해결했다”며 “몇 달을 일해도 100만원 모으기가 어려운 상황인데 반칙으로 큰돈을 너무 쉽게 버는 LH 일부 직원들은 모습에 화가 많이 났다”고 했다. 박씨는 “한눈팔지 않고 정당하게 일하는 사람들은 항상 손해 보는 느낌이 들게 한다면 결코 공정한 사회라고 할 수 없지 않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20대의 보수화를 지적하는 정치권 일각의 목소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반박하는 20대 유권자도 많았다. 취재진이 선거 이틀 전인 5일 만난 김모(26)씨는 “지난 대선과 총선 때는 문 대통령과 민주당에 투표했다”며 “하지만 현재로써는 더 지지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김씨의 얘기다.

“기성세대는 요즘 20대가 과거 세대와 달리 보수화됐다고 종종 얘기하지만 그런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것은 잘못됐다. 이건 공정과 상식, 비상식의 문제다.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정부가 내세운 공정의 가치가 한순간에 무너졌다고 여겼다. 또 사건 하나 때문만도 아니고 이전부터 계속된 불공정 사례가 이어지면서 마음이 점차 돌아섰다.”

그의 말처럼 특히 조국 사태는 20대의 가장 민감한 부분인 입시 문제에서의 불공정 논란을 야기했다. ‘아빠 찬스’ ‘엄마 찬스’는 공정한 경쟁 속에서 이뤄져야 할 입시에서조차도 출발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허탈감을 갖게 했다. 그에 앞서 2018년 1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한 달여 앞두고 정부가 갑작스럽게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을 선언했다. 지난해 7월엔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직고용한다고 발표했다. 이 두 사례에서도 적지 않은 20대는 “공정하지 못하다”며 불만을 터트렸다. 일부에선 “남북 화해와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화 등 대의조차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요즘 20대는 속 좁고, 역사의식도 없다”는 비판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기성세대의 잣대로만 20대를 바라본 데서 나오는 비난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대학생 당원이라고 밝힌 이모(23)씨는 “아직 민주당 지지를 철회한 것은 아니지만 조국 사태와 부동산 문제 등으로 실망감이 큰 건 사실이다”라며 “우리 사회가 과거에 비해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민주화 세대와 시대적 경험이 다른 20대가 추구하는 공정의 개념을 기성세대가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공정의 가치는 기회와 결과 모두에서 평등을 지향하는 것인 반면 2030세대, 특히 20대는 공정의 가치를 ‘결과의 평등’을 제외한 ‘기회의 평등’에 초점을 맞춘다”며 “20대가 생각하는 기회의 평등은 바로 능력주의다”라고 했다. 이어 “20대는 모두에게 똑같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 보다는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걸맞는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을 기회의 공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다만 “20대가 말하는 능력에 따른 공정한 보상이라는 개념은 적극 수용하되 능력주의만을 추구할 경우 능력 차이에 따른 불평등의 심화를 가져올 수 있어 이를 보완하는 정책을 정부가 고민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동안 20대가 투표장에 나오는 것을 두렵게만 생각하던 보수 야당 측은 이번 선거에서 보여준 20대의 변신에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하지만 취재 막바지에 만난 취준생 오모(27)씨는 “이번 선거처럼 내년 대선에서도 20대가 보수 야당 후보에게 몰표를 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민주화운동 세대는 젊은 시절 세상을 바꾸려는 고민과 노력을 했다면, 2030세대는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는 공정한 사회 속에서 어떻게 하면 내 삶을 바꿀 수 있을지를 더 고민한다. 1년 후 선거에서는 이런 고민에 더 깊이 공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20대의 표심이 움직이지 않을까.”

특별취재팀=김창우·김홍준·고성표·김나윤 기자
오유진·원동욱·윤혜인·정준희 인턴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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