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어요" 언더독 DRX가 '롤의 황제' 꺾다…e스포츠까지 들썩 [팩플]

중앙일보

입력 2022.11.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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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체이스 센터에서 열린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결승전에서 DRX가 T1을 꺾고 극적으로 우승했다. USA투데이=연합뉴스

오늘 경기, 미쳤어요!

 

무슨 일이야

5일 오후 9시 30분(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체이스 센터. 사회자의 뜨거운 외침과 함께 세계 최대 e스포츠 대회 리그오브레전드(LoL) 2022 월드 챔피언십, 일명 ‘롤드컵’ 결승전이 막을 내렸다. 약 4시간 30분의 공방 끝에 DRX(드래곤X)가 3대 2로 ‘롤의 제왕’ 페이커(이상혁)의 T1을 꺾는 이변을 만들어냈다. 한국 DRX는 지난해 중국 에드워드 게이밍에 내줬던 ‘소환사의 컵(우승컵)’을 가져온다. 롤드컵은 글로벌 게임회사 라이엇게임즈의 대표 게임 롤의 세계 최강팀을 가리는 무대로, 올해 12회째다.
 
‘언더독’의 반란에 현장은 달아올랐다. 창단 이래 첫 우승을 기록한 DRX의 주장 데프트(김혁규)는 “하루도 빠짐없이 상상만 했던 일인데 현실이 됐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날 중계 방송을 모여서 보기 위해 서울 종로구 CGV 대학로를 찾은 10년차 롤팬 임재성(36)씨는 “원래 T1 팬인데 페이커의 패배가 잊힐 만큼, 바닥에서 정상까지 올라온 DRX의 성장 스토리가 가슴을 울렸다”며 “데프트의 인터뷰 때는 울컥해서 눈물이 났다”고 소감을 전했다.
  

DRX는 어떤 팀?

2022 LoL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에 진출한 DRX. 사진 라이엇게임즈

이번 롤드컵 하위 12팀 출신. 한국 리그인 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LCK) 선발전부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치고 올라왔다. 특히 지역 최약체로 분류되는 4번 시드가 결승에 진출한 건 DRX가 최초. 이미 세 차례나 롤드컵 우승 경험이 있는 세계 정상급 T1을 꺾으며 역전극의 정수를 보여줬다. ‘어차피 우승은 T1’이란 세간의 예상을 뒤엎은 DRX엔 ‘평민 출신 황제’, ‘소년만화식 해피엔딩’이란 별명이 붙고 있다. DRX의 모기업 ㈜디알엑스는 국내 e스포츠 기업 최초로 코스닥 상장을 추진 중이다.
  

이게 왜 중요해

롤드컵 결승에서 한국 팀끼리 붙은 건 2017년 ‘삼성 갤럭시 vs SK텔레콤 T1(T1의 전신)’ 이후 5년 만이다. e스포츠 종주국의 위상을 다시금 입증한 것.


‘LCK 황금기’였던 2015~2017년엔 3년 연속 한국 팀끼리 결승을 치렀다. 이후 중국·북미 등에서 한국 선수와 지도자들을 대거 영입해간 ‘엑소더스 사태’ 이후 해외 리그가 상향 평준화됐고, LCK는 2018년 인빅터스 게이밍(중국), 2019년 펀플러스 피닉스(중국)에 우승을 내주는 등 침체기를 겪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러나 올해 4강엔 젠지(Gen.G)를 포함해 LCK 3팀이 이름을 올렸다. T1 관계자는 “전통적으로 한국은 실수 없이 치밀하게 상대를 말려죽이는 전략에 능한데, 지난 몇 년은 중국의 과감한 플레이와 유럽의 창의적인 플레이에 고전했다”며 “한국 팀들의 치열한 연구 끝에 이번 롤드컵에서 과감한 플레이를 선보이며 ‘내년에도 한국은 못 이긴다’는 공포감을 주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페이커와 데프트, 세계 정상서 만난 동창

DRX 주장 데프트(김혁규, 왼쪽)와 T1 주장 페이커(이상혁). 두 사람은 1996년생 동갑내기로, 서울 마포고등학교 동문이기도 하다. 사진 라이엇게임즈

양팀 주장인 페이커·데프트의 스포츠 만화 같은 서사도 이목을 끌었다. ‘롤판 베테랑’인 두 사람은 1996년생 동갑내기이자, 서울 마포고 동창이다. 둘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e스포츠에 뛰어 들었다가 세계 정상에서 라이벌로 만난 것.
 
◦ ‘e스포츠계 메시’ 페이커는: 2013년, 열일곱에 데뷔해 국내 대회와 국제 대회를 포함해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한 선수. 3년차부턴 축구의 메시, 농구의 조던 등에 비견되며 e스포츠판을 상징하는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해외에선 롤이나 SKT 이름은 몰라도, 페이커가 누군지는 알 정도. 현역 최고령 선수로 결승에 진출하면서 에이징 커브(aging curve·나이에 따른 기량 하락) 우려를 극복하고 ‘올타임 아웃라이어’급 성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설적인 e스포츠 선수로 평가받는 T1 페이커(이상혁). 사진 라이엇게임즈

 
◦ ‘원거리 딜러’ 데프트는: 롤드컵과는 유독 인연이 없던 선수. 2014년 삼성 갤럭시 블루 소속으로 롤드컵 4강에 올랐고, 이후 다섯 차례나 롤드컵에 출전했지만 8강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결승 무대에 오른 것은 선수 생활 10년 만인 올해가 처음. 이번 우승으로 데프트는 롤드컵 사상 최고령 우승자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2022 LoL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DRX의 주장 데프트(김혁규)가 트로피에 키스하고 있다. 사진 라이엇게임즈

한국에 e스포츠란

e스포츠는 K팝과 함께 글로벌 시장에서 K컬쳐 파워를 주도하는 문화 산업. 국내외에 미치는 산업적 영향력도 막대하다. LCK의 하루 시청자만 400만명 이상. 올해 LCK 서머 결승전의 경우 전체의 75%가 외국어 기반 시청자들이었다. 라이엇게임즈 관계자는 “LCK는 축구의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과 비슷한 위상”이라고 말했다.
 
레드불, BMW, 나이키 등 글로벌 대기업의 스폰서십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 시장이기도 하다. 팬이 고령화하고 있는 MLB(야구), NBA(농구) 등 전통 스포츠에 비해, e스포츠는 디지털 시장을 주도하는 전 세계 젊은층과 교감할 수 있는 기회라서다. 시장조사 업체 뉴주(Newzoo)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e스포츠 시청자 규모는 5억명, 수익은 13억 8400만 달러(약 2조원)에 달한다. e스포츠는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더 알면 좋은 것

지난해 한국의 LCK에 도입된 ‘프랜차이즈 모델’이 이번 롤드컵에서 효과를 입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미·유럽·중국 리그에서 먼저 시행된 이 모델은 ‘승강제’ 대신 각 팀이 리그에 투자금을 내고 공동 주최가 되어, 리그 수익을 똑같이 나눠갖는 시스템. 강등될 걱정 없이 보다 자유롭게 외부 투자나 광고를 유치할 수 있고, 선수의 최저 연봉도 6000만원으로 맞춰진다. 유소년 선수나 2군팀을 키우기에도 유리한 제도지만, 강팀엔 딱히 장점이 없어 도입 초 반신반의 상태였다.

5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체이스 센터에서 열린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결승전에서 관객들이 환호하고 있다. USA투데이=연합뉴스

 
라이엇게임즈 관계자는 “프랜차이즈 도입을 계기로 LCK 10개 팀은 팀을 재정비하는 ‘리빌딩(rebuilding)’ 시즌과 승리에 진력하는 ‘윈 나우(win-now)’ 시즌을 구분하는 등 각자의 컬러를 만들어 냈다”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리그가 되면서 팀과 선수들의 전반적인 경쟁력이 올라간 결과 전 세계 롤드컵에서 한국의 LCK가 선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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