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과 갈등 윤핵관 침묵, 윤 대통령 “당무 언급 부적절”

중앙일보

입력 2022.07.09 00:20

수정 2022.07.09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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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가 8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원내대책회의를 마친 뒤 회의실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 국회사진기자단]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중징계 처분을 받은 8일 이 대표와 연일 각을 세웠던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 등 친윤계 의원들은 일제히 침묵했다. 징계 직전까지 언론 인터뷰와 SNS 등에서 이 대표를 공개 비판하고 윤리위원회 당일 새벽까지 텔레그램 등 메신저에 접속해 촉각을 곤두세웠던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윤 대통령도 이날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 관련 질문을 받자 “대통령의 당무 언급은 적절치 않다. 국민 기대에 부응하는 당으로 나아가는 데 대통령의 언급은 도움이 안 된다”며 거리를 두는 모습이었다.
정치권에선 이 같은 윤핵관의 침묵과 대통령실의 거리두기 모두 이 대표 징계를 둘러싼 ‘윤심 개입 논란’을 차단하려는 행보로 보고 있다. 대통령의 정치 개입 논란은 물론이고 지지율이 30%대까지 하락한 상황에서 당 내홍에 대통령실이 개입했다는 인상을 주는 것만으로도 윤 대통령에겐 큰 부담이란 점에서다. 이 대표가 징계를 받아 힘을 잃게 된 만큼 굳이 전선을 확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란 말도 나온다. 친윤계가 이 시점에서 괜히 ‘발톱’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한 재선 의원도 “이 대표가 뭐라 떠들든 징계를 받은 이상 어떤 힘도 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도 이 대표 징계 등 당 내홍과 윤 대통령은 전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도대체 무슨 근거로 윤심이란 말이 나오느냐”며 “이번 사태가 민생에 악영향을 미치진 않을지만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국회에서 권성동 원내대표와 10분간 비공개 면담을 한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이 대표 건 때문에 온 것은 아니다. 대통령은 일반 당원이라 당 상황에 대한 언급은 옳지 않다”며 거리두기 기조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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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치권에선 이 대표의 징계 과정에 ‘윤심’이 상당 부분 실린 것 아니냐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최근 윤핵관과 이 대표의 충돌 과정이 “마치 잘 짜인 각본 같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여권에선 특히 지난달 23일 윤핵관의 대표격인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 돕는 정당이 맞느냐”며 이 대표를 정면으로 겨냥한 뒤 벌어진 일련의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다음날인 지난달 24일 윤 대통령은 도어스테핑에서 당내 갈등 질문에 “대통령이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고 답변했는데, 이후 친윤계인 박성민 당대표 비서실장 사퇴(지난달 30일)→당 중진의원 모임 때 이 대표 용퇴론 제기, 친윤계 배현진 의원의 최고위원회의 보이콧(지난 4일)→윤핵관 중 한 명인 이철규 의원의 이준석 공개 비판(지난 5일) 등이 전광석화처럼 이어졌다.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조금이라도 반대했다면 당대표에게 단기간에 이런 포화를 쏟아붓는 게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거리두기가 일종의 ‘암묵적 승인’으로 여겨졌을 것이란 설명이다. 한 초선 의원은 “이 대표는 특히 윤 대통령과 당대표실의 연결 고리였던 박 전 비서실장의 사퇴에 충격이 컸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윤핵관의 침묵’이 계속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오는 11일 국민의힘 의원총회가 예정돼 있고 초선과 중진 의원들도 같은 날 별도의 모임을 가질 예정이다. 이 대표도 법원에 징계 정지 가처분 신청을 낼 예정이다. 이게 받아들여질 경우 이 대표가 당대표로 복귀하면서 충돌이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 권 원내대표는 이날 이 대표의 징계를 ‘궐위가 아닌 사고’로 해석하며 6개월간 직무대행 체제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가 당원권 정지 기한이 끝난 뒤 당대표로 복귀할 수 있는 만큼 별도의 전당대회를 열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당 관계자는 “윤핵관들이 6개월간의 직무대행 체제를 받아들일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제든 친윤계 의원들이 총대를 메고 ‘윤 대통령을 지원할 강한 여당’을 명분으로 비대위나 조기 전당대회를 주장하고 나설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전날 JTBC 보도에서 이 대표 징계 과정에 개입한 ‘윗선’이 있다는 녹취록이 나온 것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정치권에선 보도에 언급된 윗선의 한 사람으로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A 전 행정관이 거론되고 있다. A 전 행정관이 윤석열 대선 캠프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어 그와 인연이 있는 일부 여당 의원과 인사들 이름도 함께 오르내리고 있다.
 
민주당은 이 대표가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중징계 처분을 받은 데 대해 “사필귀정”이란 반응을 보였다. “집권 여당 대표라는 지위의 무거움이나 제기된 의혹의 죄질에 비춰 중징계는 당연하다”면서다. 다만 민주당 내부에선 “이 대표 징계의 본질은 여권 내부의 치열한 권력 투쟁이란 점도 차근차근 알려야 한다”(수도권 초선 의원)는 얘기도 나왔다.
 
우상호 비대위원장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사안의 본질이야 우리가 판단할 수는 없다”면서도 “결국 선거 때 이 대표를 활용한 뒤 버린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우 위원장은 이어 “대선후보 단일화 때부터 ‘(안철수 의원이) 정부 구성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당은 안 의원이 책임지게 해준다’는 밀약이 있었고, 그 일환으로 눈엣가시였던 이 대표를 이런 문제를 빌미 삼아 팽한 것으로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