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하나가 더 있다. 황해도 냉면. 평양냉면·함흥냉면처럼 이북 음식인데, 백령도의 황해도 냉면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사곶냉면’이라 불리는 백령도 냉면은, 피란 내려온 이북 사람들이 고향의 맛을 잊지 못해 재현한 음식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향토 음식이다. 지금은 백령도가 인천시 옹진군 소속이지만, 원래는 황해도 땅이었으니 되레 당연한 내력이다.
말로만 듣던 사곶냉면을 처음 먹어보고 여러 번 놀랐다. 냉면치고는 별난 재료와 조리법에 놀랐고, 기대보다 맛있어서 또 한 번 놀랐다. 여태 쌓은 냉면 지식이 백령도에서 무참히 깨쳤다.
까나리액젓이 완성하는 맛
- 면은 어떻게 쓰세요? 면 뽑는 거 보니 메밀이 많이 들어가는 것 같네요.
- 메밀이 거의 다예요. 밀가루는 20%나 될까. 메밀은 백령도에서 나는 거예요.
- 육수는 뭘 쓰세요?
- 돼지 등뼈. 꼬박 5시간 고와요. 고기는 안 넣고 사골만. 평생 돼지 뼈만 썼어요.
돼지 등뼈로만 육수를 낸 냉면이라. 처음 들어봤다. 사곶냉면 집 중에서 몇몇은 소고기로 육수를 낸다는데, 김옥순 할머니는 분명히 “평생 돼지 뼈만 썼다”고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어쩌다 이북 음식을 하게 됐느냐”고 물었을 때다.
“이북 음식? 우리 동네 음식이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배운 대로 하는 거야.”
백령도 주민은 5000명이 조금 넘는다. 그중에서 1000명 정도가 바다 건너 황해도 출신인데, 주로 사곶리에 모여 산다. 백령도 주민 김응균(59)씨는 “전쟁 통에 황해도 냉면이 넘어온 게 아니라 황해도 본토 사람이 사곶에 많이 살아서 황해도 냉면이 살아남은 것”이라고 말했다. 백령도의 황해도 냉면을 사곶냉면이라 부르는 까닭이다.
식당 직원이 냉면 그릇을 내려놓으며 “물냉엔 까나리액젓, 비냉엔 들기름을 넣고 드세요”라고 말했다. 식초도 겨자도 아니고 까나리액젓이라니. 정말로 식탁엔 맑게 희석한 까나리액젓 통이 있었다. 네댓 방울 넣고 국물을 떠먹으니 깔끔한 맛이 났다. 식초와 겨자도 넣고 먹어봤는데, 까나리액젓만 넣은 게 제일 나았다. 비빔냉면과 반냉면은 고추장의 텁텁한 맛이 강해서 입에 안 맞았다. 물냉면은 확실히 인상적이었다. 제주 고기국수보다 고급스런 맛이랄까. 마지막에 첨가한 까나리액젓의 힘인 듯싶었다.
짠지떡을 아시나요
- 만두네. 근데 왜 떡이라고 해요?
- 떡이야. 찹쌀이 들어가잖아. 쌀이 들어가니까 떡이지.
- 찹쌀가루요? 메밀이 아니고요?
- 찹쌀가루가 제일 많이 들어가고, 다음에 메밀가루. 반죽할 땐 밀가루를 조금 넣고.
- 메뉴판엔 왜 짠지떡이 없어요?
- 손이 많이 가서 잘 안 해. 지금 백령도에서 우리 집 말고 짠지떡 하는 데가 한두 집 더 있을까? 우리 집도 전날 예약해야 먹을 수 있어요.
백령도는 인천에서 228㎞ 떨어져 있다. 북한(황해도 장연군)과는 17㎞ 거리다. 백령도는 물리적 거리처럼 정서적 거리도 북한과 더 가깝다. 별미를 맛봤다고만 하기엔, 음식에 밴 사연이 너무 깊었다.
백령도=글·사진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