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떼먹은 강남 변호사…법전엔 현금다발, 금고엔 골프회원권[영상]

중앙일보

입력 2020.10.05 12:10

수정 2020.10.05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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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은 세금을 내지 않고 재산을 숨긴 한 변호사의 실제 거주지를 수색해 2억원 상당의 금품을 압류했다고 5일 밝혔다. 그의 서재 책꽂이에는 현금 360만원, 금고에는 일본 골프회원권과 순금, 명품 시계·가방 등이 있었다. [국세청]

서울 강남권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A씨. 그는 사건을 수임해 번 돈을 숨기고 국세청이 부과한 세금도 내지 않았다. 국세청은 A씨를 미행하고 탐문해 주소지를 찾아갔지만, 그곳에 A씨는 없었다. 그의 실제 거주지는 분당 소재 88평짜리 대형 주상복합 아파트였다. 고액 월세로 사는 그의 집을 수색해 보니 서재 책꽂이 뒤에서 현금 360만원이 발견됐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금고 안에서 일본 골프회원권과 순금, 명품 시계·핸드백 등 2억원 상당의 금품이 발견됐다.
 
의류 제조 사업을 하는 B씨는 세금을 내지 않다가 갑자기 하던 사업을 접었다. 이내 그는 같은 장소에서 하던 사업을 계속했다. 그러나 사업자 명의는 B씨의 처남이었다. 국세청은 A씨와 그의 처남 간 금융거래 내역을 조사한 결과 사업자금 출처를 확인했다. 유병철 국세청 징세과장은 “B씨는 물론 그의 체납을 돕고 방조한 처남까지 모두 체납 처분 면탈범으로 검찰 고발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고액 체납 추적 대상자 선정.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국세청, 체납자 812명 조사 

국세청은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고 재산을 숨긴 고액 상습 체납자 812명에 대한 추적조사를 실시한다고 5일 밝혔다. 체납자 미행과 실제 거주지 수색은 물론 친인척 금융 조회도 실시해 체납자와 조력자 모두 형사 고발하기로 했다.
 

체납자 숨은 곳, 빅데이터로 찾는다? 

국세청은 체납 조사로는 처음으로 조사 대상자 선정에 빅데이터 분석 방식을 썼다. 부동산을 옛 동거인에게 이전하거나 친인척 명의로 해외에 송금해 재산을 숨긴 사람 등도 모두 체납자 금융거래, 주민등록지 변경, 외환거래, 소득·지출 내역 등 빅데이터를 분석해 찾아냈다. 가령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은 주민등록 정보를 활용해 동거 여부를 파악하고, 국토교통부·행정안전부 등으로부터 받은 부동산 거래 내역 등으로 동거인 간 재산 이전 상황을 파악한다. 그런 다음 국세청 내 소득세 관련 자료로 동거인이 부동산 등을 취득할 능력이 있는지 분석한다. 취득자금이 없는 사람이 부동산 거래를 한 경우 편법 이전을 통한 재산 은닉 상황을 찾아낼 수 있다.
 
과거에는 이 같은 일을 모두 국세청 직원이 수작업으로 했다. 그러나 빅데이터 분석을 활용해 정확도와 처리 속도를 높였다는 게 국세청의 설명이다. 국세청은 빅데이터 분석 샘플 실험으로 주소지와 실제 거주지가 일치하지 않는 체납자 28명을 찾아 수색한 결과, 24명의 실제 거주지가 추정 장소와 같았다. 빅데이터의 거주지 분석 적중률은 85.7%다.


국세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확산한 올해 상반기에도 고액 체납자에 대한 조사는 강화해 왔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징수하거나 채권을 확보한 금액은 총 1조505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6%(1916억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검찰 고발 건수도 290건으로 한 해 전보다 60건 늘었다.

"내년엔 고액 체납자, 유치장 간다" 

국세청은 내년부터 고액 상습 체납자는 최대 30일간 유치장에 감치하는 등 개정한 국세징수법에 따라 대응할 방침이다. 다만 생활고를 겪는 생계형 체납자는 체납처분 유예 등으로 지원키로 했다. 생계형 체납자 요건은 직전 3년 평균 수입이 15억원 미만이거나, 종합소득세·부가가치세 합계 체납액이 5000만원 이하인 사람 등이다. 또 체납자를 신고해 세금 징수에 기여한 사람에게는 최대 20억원의 포상금도 지급한다.
 
정철우 국세청 징세법무국장은 “이번 조사로 얻게 된 체납자에 관련 정보는 다시 기계학습(머신러닝)에 필요한 데이터로 활용해 빅데이터 분석의 정확도를 높여나갈 계획”이라며 “다만, 기계 분석보다 더 정확한 것이 시민에 의한 자발적 신고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신고를 당부한다”고 밝혔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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