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이 지난달 4일 ‘공정위 대 퀄컴’ 행정소송에 대해 내린 결론이다. 법원은 “퀄컴이 칩세트 공급과 특허권을 연계해 확보한 시장지배력을 남용해 정상적인 경쟁을 방해하고 특허권을 독식했다”는 공정위 주장을 받아들였다. 공정위가 퀄컴에 매긴 과징금 ‘1조311억원’은 전부 인정했다. 공정위 38년 역사상 최대 규모 과징금이었다.
치열한 법정 다툼 끝에 들려온 낭보에 배현정 공정위 서기관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2015년부터 퀄컴에 매달려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견된 공정위의 승소기를 배 서기관과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했다.
다윗, 공정위
이들이 2년간 오로지 퀄컴에만 매달렸다. 변호사인 배 서기관이 법률문제, 이공계 출신 박 사무관이 기술 문제를 주로 맡았다. 문제는 선례가 없다는 것. 글로벌 공정 당국이 퀄컴을 제재한 첫 사례여서다. 검토해야 할 계약서·특허가 모두 전문용어로 가득한, 그것도 영문 자료였다. 본사가 미국에 있는 것도 골치 아팠다.
“국내 업체 같은 경우 1~2주면 회신하는 자료도 기본 한두 달 씩 걸리더라고요. 본사에서 느릿느릿 돌아오는 의견서에 맞춰 밤샘, 주말 근무한 날이 많았습니다.”
골리앗, 퀄컴
퀄컴은 LTEㆍ5G 모뎀 칩셋 분야 점유율 세계 1위다. 통신 분야 표준필수특허(약 2만5000개)도 가장 많다. 일반 특허가 아니라 ‘표준’인 데다, 안 쓸 수 없는 ‘필수’ 특허란 점이 중요하다. 2015년 기준 특허ㆍ칩셋 매출이 30조원에 이른다. 퀄컴이 ‘특허 공룡’으로 불리는 이유다.
퀄컴은 IT 업체에 모뎀을 판매하면서 모뎀뿐 아니라 특허 공유 협상을 병행했다. 최대한 많은 특허 이용료(로열티)를 받아내려는 전략이었다. 업계는 퀄컴이 로열티를 높게 부르거나 모뎀에 특허를 끼워팔아도 속수무책이었다.
공정위 조사에도 덩치에 어울리는 물량 공세를 펼쳤다. 공정위 ‘전관’이 즐비한 세종ㆍ율촌ㆍ화우 등 국내 대형 로펌을 선임해 맞섰다. 특허ㆍITㆍ공정거래법ㆍ경제학 전문가도 섭외해 논리를 뒷받침했다.
1차전, 전원회의
“첫 번째 심의 때 퀄컴 측 변호사가 공정위 보고서를 두고 ‘잘 쓴 소설’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동안 노력을 소설로 깎아내리니까 허탈했죠. ‘잘 쓴’이란 수식어를 두고 애써 ‘그래도 우리가 잘 만들었다는 건 인정했다’며 동료들과 농담을 나눈 게 기억에 남습니다.”
전원회의가 열릴 때면 삼성ㆍLG전자와 애플 관계자까지 이례적으로 몰려들어 심판정이 북적였다. 공정위는 이례적으로 전원회의를 7번이나 열고서야 과징금 부과를 확정했다. 2016년 12월 마무리한 1차전은 다윗의 승리였다.
2차전, 법정
“공정위 시정 명령은 퀄컴의 사업구조를 전부 바꾸라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매우 과격하고, 전면적이며,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입니다(퀄컴).”
“퀄컴의 독점 구조를 그대로 두면 사물인터넷(IoT), 5세대(5G) 이동 통신도 결국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것입니다(공정위).”
양측이 법정에서 주고받은 답변 자료만 7만4810쪽에 달했다. 공정위 측으로 보조 참가한 삼성·애플이 하루아침에 소를 취하하는 일도 벌어졌다. 퀄컴의 지배력과 힘이 느껴졌다. 하지만 서울고법은 퀄컴의 청구를 기각하고 공정위 손을 들어줬다. 2차전도 결국 다윗의 승리였다.
에필로그
“퀄컴이 배타적인 수혜자였던 폐쇄적 생태계를, 산업 참여자가 누구든 자신이 이룬 혁신의 인센티브를 누리는 개방적인 생태계로 바꾸는 데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퀄컴은 벌써 대법원에 상고했다. 하지만 다윗은 두렵지 않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김기환의 나공
[나공]은 “나는 공무원이다”의 준말입니다. 세종시 정부 부처와 공기업을 중심으로 세금 아깝지 않게 뛰는 공무원이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각 분야에서 묵묵히 일하며 헌신하는 이들의 고충과 애환, 보람을 생생하게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