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희의 맛따라기] 부산 ‘풍류 식객’의 셀프 주안상과 단골집
퇴근하며 자갈치시장에 들러 재료를 사다가 혼자, 또는 친구들과 먹기 위해 주안상을 차린다. 본인은 “호작질(‘손장난’의 사투리)”이라고 겸양했지만, 차려진 상은 절제된 아름다움이 가득한 한 폭 ‘그림’이다. 그와 부산에서 하루를 놀았다. 함께 장 봐서 주안상 차려 감상하고, 입맛 까다로운 그의 단골집 두 곳에서 부산의 맛을 즐겼다.
편집회사 이끌며 맛의 세계 독학
퇴근길 자갈치시장 들러 횟감 사
집 주변 꽃·풀 따서 예쁘게 장식
자주 찾는 식당은 바다 내음 노포
7가지 반찬에도 깊고 섬세한 맛
아침을 먹고 자갈치시장에 갔다. 단골 상회에서 활어 횟감을 전(前)처리해 집으로 간다. 즉살해 바닷물에 담가 방혈(放血)하고, 비늘 벗겨 배를 가른 다음 흐르는 바닷물에 씻어 거즈로 닦는다. 상인에게 얘기하면 알아서 손질해 얼음 팩 넣어서 포장해준다. 포 떠서 껍질 벗겨 달라고 해도 된다.
시장을 돌다가 찰가자미를 발견했다. 시장에서 ‘물도다리’라는 이름으로 팔린다고 한다. 맛은 있으나 많이 잡히지 않아 횟집에서 팔 물량은 안 된다. 아는 사람만 먹으니 이 계절 자연산 횟감 중에선 가장 싸게 거래된다. 1㎏에 1만2000원. 검복(시장에서는 밀복) 한 마리 2만5000원, 피조개 5000원, 간을 쓰려고 산 생 아귀 한 마리는 5000원이었다.
영도 바닷가 언덕에 있는 집으로 가는 길에 그는 애기동백 꽃 가지 두어 개, 엽란∙털머위 잎을 한 장씩 채취했다. 거실에 들어서자 유리창 너머로 드넓은 바다엔 윤슬(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 눈부시고 앉은뱅이 원목 탁자 위 수반에 꽂은 한 가닥 매화 가지에는 꽃 한 송이가 막 피고 있었다.
요리가 시작됐다. 찰가자미는 살을 넉 장으로 포 떠서 얇게 회로 떴다. 한 점 자를 때마다 부채꼴 모양을 만들며 가지런히 펼쳐 놓아 둥근 접시 절반을 채웠다. 부채 손잡이 부분에는 데친 찰가자미 흑백 껍질과 간, 몸통에서 길게 갈라낸 지느러미살, 미나리 줄기와 쪽파 잎, 고춧물 들인 무즙(모미지오로시) 한 덩이 곁에 애기동백 한 송이를 배치해 봄이 오는 정원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귀 간 접시엔 쪽파 잎 몇 가닥을 잘라 가지런히 올리고 노란 꽃술만 남은 애기동백 한 송이로 장식했다. 칼집을 곱게 넣은 피조개 회와 병어∙고등어 미소절임구이는 푸른 잎을 깐 접시에 담고, 연두색 영귤 편을 곁들였다.
준비에 2시간이 걸렸다. 진력날 만도 하건만 그는 시종 즐거운 표정이다. 매화 가지 아래 차려진 상은 아름다워서 젓가락을 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콩나물 맛이 놀라웠다. 양념 않고 그냥 삶아놓은 것처럼 보이는데 맛은 갖은 양념을 한 것보다 한길 위다. 조리법은 간단했다. 냄비에 식용유 몇 방울 치고 약한 불에서 씻은 콩나물을 익히면서 소금과 설탕(약간)을 넣는다. 바닥에 물이 고이기 시작하면 불을 높여 빨리 볶으면서 참기름 쳐 버무린 다음 불을 끈다. 이씨는 “적당히 익히는 게 기술이다. 물은 한 방울도 안 들어간다”고 했다.
이날의 회는 대방어와 밀치(가숭어)였다. 대방어는 5시간 숙성해 뱃살∙등살은 포로 뜨고, 사잇살을 깍둑썰기해서 한 접시를 차렸다. 초밥을 직접 만들어 먹으라고 엄지만 하게 쥔 밥 한 접시를 함께 내줬다. 부산을 대표하는 막걸리와 함께 하니 이미 부른 배가 한스러울 뿐이었다.
생선 파는 상인에게 물어보고 책 읽으면서 독학했다. 회 선진국 음식을 견학하러 일본에 70회 가까이 갔다. 그 중 41회는 쓰시마였다. 해외여행 가서 사오는 물건은 대개 그릇∙요리책∙술∙식재료∙생태도감 등이다. 그렇게 배우면서 꾸려온 셀프 주안상 살림이 20년이다. 비결을 물으니 “끊임없는 연습 말고는 길이 없다”고 했다. 요즘도 기회만 닿으면 길을 나선다.
도전, 풍류 식객처럼… 생복국∙병어미소절임구이
①시장에서 다듬어 온 복어를 흐르는 물에 씻으며 독이 있는 부위(뇌, 눈알, 장기 찌꺼기, 지느러미, 아가미)가 없는지 살펴본다. 얼음물에 30분 정도 담가 피를 뺀다. 다시 찬물로 핏물을 서너 번 씻어낸 후 물기를 빼 둔다(※복어는 어시장 전문점에서 사는 게 안전하다. 작게 토막 쳐 짧은 시간에 끓여내야 살이 퍽퍽하지 않다).
②찬물에 다시마와 어간장(또는 조선간장), 무를 삐져 넣고 불에 올린다.
③물이 끓기 시작하면 다시마를 건져내고 복어를 넣는다.
④한소끔 끓인 후 콩나물, 어슷하게 썬 대파, 마늘, 고춧가루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 후 살짝 한 번 더 끓인다.
⑤미나리를 올리고 불을 끈다.
①병어를 다듬어 물기를 닦고 간이 잘 배게 앞뒤 표면에 칼집을 넣어 고운 소금을 뿌려 둔다(간을 한 느낌만 나게 아주 조금).
②미소와 청주∙조미술∙설탕 등 분량의 재료를 섞어 잘 갠다(병어에 바를 때 흘러내리지 않을 만큼 걸쭉하게). 설탕 대신 유자차 원액을 건더기까지 넣어도 좋다.
③소금을 뿌려 둔 병어의 물기를 닦고, 갠 미소양념장을 앞뒤로 골고루 발라 하루 재운다.
④흐르는 물에 미소를 씻어내고 거즈로 물기를 닦아낸다.
⑤그릴에 8~9분 정도, 겉이 노릇노릇할 정도로 굽는다.
※고등어와 삼치는 뼈 발라내고 겉에 칼집을 넣어 같은 방법으로 한다.
전직 신문기자. 기자 시절 먹고 마시고 여행하기를 본업 다음으로 열심히 했다. 2018년 처음 무소속이 돼 자연으로 가는 자유인을 꿈꾸는 자칭 ‘자자처사(自自處士)’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