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허스님 입적과 40년 된 매실나무
국내여행 일타강사
“햐~ 이 맛에 중노릇을 하는 거라.” 순천 금둔사엔 동지섣달에 꽃 피는 매실나무가 있습니다. 음력 섣달에 핀다고 ‘섣달 납(臘)’자를 붙여 금둔사 납월매라 불렀습니다. 겨울 매화 100송이나 피우던 금둔사. 이를 가꾼 큰스님이 지난 가을 입적했습니다. 그리고 올겨울, 금둔사 매화는 꽃을 감췄습니다.
40여 년 전 폐허 같았던 금둔사를 일으키고 매실나무 씨앗을 구해 와 이윽고 꽃을 피우게 한 주인공이 지허 스님이다. 금둔사에 들 때마다 스님은 손수 기르고 따고 덖고 내린 차를 내주셨다. 지허는 그 유명한 선암사 동구 차밭을 손수 일군 선사(禪師)다. 인연에도 끝이 있는 것일까. 지허 스님이 지난해 10월 2일 입적했다. 1941년 전남 보성 벌교에서 태어났으니 세수는 82세였고, 1956년 선암사에서 사미계를 받았으니 법랍은 67년이었다.
2020년 12월, 코로나19 사태가 끝나지 않았던 시절, 문득 금둔사 홍매가 그리웠다. 오랜만에 지허 스님에게 전화를 넣었다.
“스님, 매화가 언제 필까요?”
“아직 멀었제. 동짓달은 지나야 확 피제.”
“나가 야들을 심은 게 35년 전이여. 여태 이렇게 일찍 핀 적이 없었네.”
팔순 앞둔 노스님이 아이처럼 신이 나 말하고 있었다. 엄동설한에 꽃 피운 매화보다 큰스님의 해맑은 얼굴이 더 숭고하고 아름다웠다. 그 기운을 받아 코로나로 버거웠던 날들을 버텼다.
금둔사를 다시 일으킨 주인공이 지허다. 1979년 금전산 기슭에서 무너지고 부서진 석조불상과 삼층석탑을 발견하고서다. 그 뒤로 스님은 길 닦고 돌 쌓으며 버려진 절을 다시 세웠다. 산 아래 낙안읍성에서 600년 묵은 노거수의 씨앗 한 움큼을 받아와 금둔사 곳곳에 뿌린 건 1985년의 일이다. 그 씨앗 중에서 6개가 살아남아 매운 계절에 꽃을 피운다. 생전의 스님은 “매화가 부처”라고 말했었다.
새 주지로 들어온 승국 스님은 죄라도 지은 양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었다. 스님이 가신 것도, 매화가 피지 않는 것도 다 제 잘못인 듯한 얼굴이었다. 하릴없이 경내를 거니는데 활짝 핀 백매 한 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홍매도 안 핀 금둔사에 백매가 피었다니. 이건 또 무슨 조화인가.
승국 스님은 “다비식에서 사리 여러 점이 나왔는데, 1주기가 되면 선암사에서 정식으로 모시기로 했다”고 말했다. 태고종 종정을 역임한 큰스님에 대한 예우다. “말씀을 남기신 게 있느냐” 물었더니 지허 스님의 열반송(涅槃頌)을 보여줬다. 생전의 노스님이 “내가 죽거든 열반송으로 쓰라”고 미리 건넨 글귀라고 했다.
뿌리 없는 나무 위에 녹음이 꽃 같고
끓는 물 가운데 흰 연꽃이 활짝 피었네.
지팡이 끝에 걸린 옛 달은 허공을 비추고
하늘 밖에 학 울음소리 길게 떨어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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