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흉악범’이 불러낸 종신형·사형제 논쟁
사형제 완전 폐지국이라도 흉악범죄나 테러가 발생하면 어김없이 부활 여론이 고개를 든다. 정치적 반대자를 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형제가 고착화되기도 한다. 29년째 장기집권을 이어오고 있는 벨라루스가 그 예다. 유럽대륙 국가 중 유일하다. 그런 여론을 뚫고 사형제 폐지를 이어온 국가의 비결은 국민적 합의를 이룬 데 있다.
사형제 폐지국의 사정은 저마다 다르지만 폐지 과정에서 비슷한 패턴을 찾을 수 있다. 처음엔 ‘헌법 조항 명시’부터 이뤄진다. 대개 즉시 폐지보다는 점진적 폐지 과정을 거치는데, 사형 선고가 가능한 범죄 수를 줄이거나 사형집행에 예외를 두는 식이다. 영국을 예로 들자면, 사형 폐지 전부터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경우를 축소해왔다. 1776년엔 220개였다가 1861년엔 살인죄, 대역죄, 간첩죄 등 다섯 가지로 줄였고, 1957년엔 살인죄만 남겼다가 1969년엔 폐지하기에 이른다.
국민투표의 방식은 국민합의 과정에서 자주 보인다. 스페인이 대표적인데, 1932년 사형 폐지 후 2번의 재도입 끝에 60여년 만에 완전 폐지를 이뤘다. 이때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이 국민투표다. 1978년 국민투표에 의해 새로운 헌법이 승인되면서 군형법을 제외한 범죄에 대한 사형을 폐지했다. 키르기스스탄은 사형을 금지하는 새 헌법을 국민투표에 부쳐 폐지 수순을 밟았다.
국가 리더십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미국에선 사형제 폐지에 주지사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미국은 각 주마다 사형제 존치여부가 다른데, 사형 폐지법안에 대해 주지사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네티컷, 뉴멕시코, 워싱턴주를 비롯해 최근엔 버지니아주도 주지사가 폐지법안에 서명하기로 선언하면서 23번째 사형폐지주가 됐다. 미국은 사형선고가 2011년 85건에서 2019년 43건으로 줄었을 뿐 아니라, 점차 폐지하는 분위기다. 2020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평균 살인율을 보면 사형제 존치주는 7.3%인 반면 폐지주는 5.3%였다.
다만 이 과정에서 대체형벌에 대한 논의는 필수다. 사형 폐지국가는 대개 종신형부터 도입한다. 독일은 절대적 종신형을 폐지하고 최저 복역기간을 둬서 복역을 마치면 가석방이 가능토록 한 상대적 종신형을 도입했다. 응보이념보다 재사회화, 인간존엄의 중요성에 무게를 뒀다. 영국은 범죄에 따라 최저 복역기간을 달리한다. 미국에서도 가석방 불가능 종신형에 대한 비판이 나오면서 상대적 종신형 도입 추진 여론이 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