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년 지나도 촌스럽지 않다, 효리네도 쓴 생활명품 [비크닉]

중앙일보

입력 2023.04.16 05:00

수정 2024.04.1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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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크닉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아주 작은 물건의 브랜드도 지나치지 못하고 관찰하는 직업병 앓이 중인 한재동입니다. 요즘 사무실에는 종이컵이 사라지고 다들 각자의 텀블러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지요. 얼마 전 멋쟁이 후배가 텀블러를 새로 샀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바로 스타벅스와 스탠리(STANLEY)가 콜라보레이션해서 출시한 텀블러였어요.
 
국내에서는 이 브랜드가 낯선 분들도 계시겠지만, 스탠리는 미국에서는 대를 이어서 물려주는 국민 보온병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캠핑의 인기와 친환경 인식의 확산으로 전 세대에 고루 인기를 얻고 있는 스탠리에 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미국 시애틀에서 시작된 생활명품 스탠리. 출처 홈페이지

  
전쟁에서 활약한 최초의 금속보온병
 
스탠리의 역사는 1913년 윌리엄 스탠리 주니어(William Stanley Jr)가 기존 보온병들이 유리를 사용했던 것을 개선, 최초의 금속 보온병을 발명하면서 시작됩니다. 올해로 110년째를 맞이하는 오래된 브랜드에요. 이전의 유리 보온병이 충격에 약했던 것에 비해 충격에도 강하고 진공 이중벽 구조로 되어 있어 오랜 시간 보온과 보냉이 가능했습니다.


1915년 대량생산체제를 갖추자, 20세기 초 미국 산업 발전의 역사와 맞물려 본격적인 사랑을 받게 돼요.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에 미군의 군수품으로 납품됩니다. 물과 음식을 보관해줄 뿐만 아니라 약을 옮기는 목적으로도 사용되며 기능을 널리 알리게 돼요. 특히 연합군의 가장 핵심 전력인 B-17 폭격기 조종사들이 사용하면서 스탠리 보온병은 미군의 상징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스탠리 보온병은 미국의 아웃도어 라이프의 상징과 같다. 출처 얼리어답터

그렇게 미국인 라이프 스타일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게 돼요. 미국인이 일하러 갈 때 집에서 뜨거운 커피를 담아가는 보온병이 보인다면 스탠리를 떠올리시면 됩니다.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조셉 쿠퍼(매튜 매커너히)가 트럭에 들고 타는 보온병도 바로 스탠리의 것입니다.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알아 보았어요.
 

기능성이 브랜드의 상징이 되다
 
스탠리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기능성입니다. 몇십 년을 써도 고장이 없는 건 물론이거니와 오발 된 총알을 스탠리가 막아주어 소중한 목숨을 건졌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도 있어요. 요즘 같은 리뷰 전성시대에는 특히나 이런 강점이 돋보입니다. 캠핑 커뮤니티나 유튜브만 찾아봐도 스탠리 제품의 기능성에 대해 간증하는 콘텐트가 넘쳐나거든요.
 
개척과 탐험이 있는 현장에서 스탠리 보온병의 기능은 빛을 발했어요. 미국 뉴욕 9.11 메모리얼 뮤지엄에는 1리터짜리 스탠리 클래식 보온병 2개가 전시돼 있어요. 뉴욕의 대표적인 마천루인 세계무역센터를 만든 근로자들의 것입니다. 노동자들이 건설 현장에 한 번 올라가면 내려오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음식이 식지 않도록 스탠리 보온병에 식사와 뜨거운 음료를 넣어서 주었다고 하죠. 스탠리가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성장하는 데에 일조한 셈입니다.

뉴욕 메모리얼뮤지엄에 전시되어 있는 스탠리 보온병. 출처 Stanley Station

  
창업자 윌리엄 스탠리 주니어는 현대보온병의 기초가 되는 진공 단열병을 발명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보온병의 역사는 사실상 스탠리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죠. 훌륭한 기능성이라는 스탠리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많은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이어집니다. 스탠리가 만들었다고 하면 일단 품질은 확실한 거니까요. 스타벅스와는 꾸준히 콜라보레이션 제품을 출시하고 있고, 슈프림과 MINI 등 다른 산업군의 브랜드 콜라보레이션도 다수 진행되었습니다.

2017년 스타벅스와 스탠리의 콜라보레이션 텀블러. 출처 하입비스트

   
110년이 지나도 촌스럽지 않아야 클래식이지
 
스탠리는 대표적인 네 개의 시리즈가 있습니다. 우선 가장 유명한 클래식 시리즈는 100년 전 초기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요. 다음으로 어드벤처 시리즈는 클래식 시리즈를 좀 더 작고 가볍게 만들어 휴대하기 편하게 했습니다. 세 번째 마스터 시리즈는 성능을 강화한 제품으로 보온 보냉 시간과 내구성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렸어요. 마지막 고(GO) 시리즈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기 편하게 제품을 개선했습니다.
 
그중 가장 인기가 좋은 제품은 스탠리의 상징적인 색상이라고 할 수 있는 해머톤 그린(Hammertone Green)의 클래식 시리즈 제품들이에요. 1953년 처음 출시된 해머톤 그린 컬러는 블랙, 실버, 네이비부터 밝은 색상까지 다양한 컬러 중에도 많은 사랑은 받고 있습니다. 무려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계속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보여요.

스탠리 제품의 시그니처 컬러 해머톤 그린. 출처 cncmall

  
스탠리 애호가들의 인터뷰를 보면 디자인이 투박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시류에 영합하지 않아서 좋다는 내용이 눈에 띕니다. 110년 동안 큰 변화 없이 이어져 내려오는 디자인이 여전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이에요. 좋은 디자인만큼이나 수없이 바뀌었을 유행에도 전통을 고수하는 뚝심 또한 대단합니다.

스탠리의 스테디셀러 도시락가방과 보온병 출처 shopee.com

  

예능 '효리네민박'에서 스탠리 보온병을 사용하는 장면. 사진 JTBC 캡쳐

텀블러가 패션이 되어버린 시대
 
2017년 JTBC 예능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 이상순 부부가 스탠리의 보온병과 파인트를 사용하는 장면이 방송에 나갔어요. 덕분에 스탠리는 ‘이효리 보온병’으로 불리며 캠핑을 즐기는 사람 외에도 꽤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ESG, 가치소비 등이 개념이 등장하며 텀블러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할 때였지요.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이제 텀블러를 패션으로 소비하고 있습니다. 유명 브랜드의 콜라보레이션 제품이나, 본인이 좋아하는 IP 굿즈 텀블러 등을 가지고 다니며 본인의 취향을 드러내고 있어요.

미국 시애틀에서 시작된 생활명품 스탠리. 출처 홈페이지

  
스탠리 기존 고객층이 가진 이미지는 제품의 기능성을 중시하고 캠핑 등 아웃도어 레저를 즐기는 것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스탠리의 새로운 소비자는 일상에서의 활용성은 물론 친환경을 비롯한 가치까지 모두 만족하는 브랜드를 찾는 고객일 가능성이 커요. 그것이 스탠리가 새로운 제품 라인업 개발과 환경보호에 대한 메시지 전달에 노력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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