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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커버에 고무 밴드…연간 1000만개 팔리는 노트 비결 [비크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INTRO: 손으로 쓰는 기록의 힘

사진 인스타그램 @lallayena. 몰스킨 제공

사진 인스타그램 @lallayena. 몰스킨 제공

수없이 많은 정보를 접하고 기억해야 하는 세상, 독자 여러분은 무엇으로 일상을 기록하나요?

저는 스마트폰에 메모하는 사람이었어요. 간단한 기록을 위해 가방을 열고 노트를 꺼내 펜을 드는 건 무척 번거로운 일이라 생각했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스마트폰에 담은 메모는 잘 안 보게 되더라고요. 반면 수첩에 손으로 적은 글은 꼭 한 번 더 보고요. 다시 들여다보지 않는 글은 의미가 없는 기록이란 걸 깨달은 순간, 노트와 펜을 다시 꺼내 들게 됐어요.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 감성을 지키며 사랑받는 노트 브랜드가 있습니다. 둥근 모서리의 단단한 검은색 커버와 고무 밴드, 특별한 것 없는 디자인에도 연간 판매 개수만 1000만개에 달하죠. 오늘 비크닉은 종이에 펜으로 글씨를 써 내려 갈 때 느껴지는 감촉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찾는 노트, 이탈리아의 노트 브랜드 몰스킨(Moleskine)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흰 종이 이상의 가치를 만든 마케팅

사진 몰스킨

사진 몰스킨

몰스킨의 시초는 1800년대 프랑스 파리의 작은 문구점에서 판매하던 이름 없는 검정 노트입니다. 고흐, 피카소, 채트윈, 헤밍웨이가 몰스킨(프랑스어로 '모조 가죽') 재질로 만든 노트를 즐겨 썼다고 전해지면서 예술가와 사상가들이 쓰는 노트의 대명사가 됐어요. 그 후 한동안 잊혔던 이 노트를 1997년, 이탈리아 사업가인 마리오 바루치와 프란체스코 프란체스키가 재현합니다.

그런데 세상엔 몰스킨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노트가 있었어요. 몰스킨의 상징인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으로 경쟁하는 제품도 많았죠. 하지만 '노트'하면 떠오르는 대표 브랜드는 없었답니다. 몰스킨은 이 점을 파고들어 당시는 생소했던 문구의 브랜드화를 추진해요. 19세기 파리 공방에서 만들던 검은 표지의 단순한 수첩에 '고흐와 피카소가 사랑한 노트'라는 스토리를 새기고 고급 노트 브랜드로의 차별화를 시도합니다.

"먼저 어디에서 판매할 것이냐가 중요했어요. 단순한 메모용 노트가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과 창의성을 표현할 제품이라면 소비자들은 어디에서 그 물건을 사려고 할까요? 바로 서점이었습니다." -아리고 베르니 몰스킨 CEO

차별화의 시작, 노트를 문구점이 아닌 서점에서 판매한다는 전략이었어요. 당시 서점은 매출이 정체돼 어려움을 겪고 있어 몰스킨이 입점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죠. 브랜드 콘셉트를 유지하기 위해 몰스킨은 책에서 볼 수 있는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를 수첩에 붙여 판매했어요. 이를 신선하게 바라본 소비자들이 점점 몰스킨에 열광하기 시작했죠.

#보이지 않는 디자인까지 생각하다

사진 인스타그램 @saeronai. 몰스킨 제공

사진 인스타그램 @saeronai. 몰스킨 제공

품질에도 고급 노트 이미지를 불어넣었어요. 한눈에 몰스킨 제품임을 알려주는 검은색 양피 커버와 그를 묶는 고무밴드, 부드러운 필기 감촉을 느낄 수 있게 중성 처리한 두툼한 미색의 속지. 그리고 속지는 일일이 실로 꿰어 커버와 단단히 제본해 낱장을 넘길 때도 자연스럽게 펼칠 수 있게 했죠. 모든 노트엔 품질 관리 번호를 매겨 하자가 있으면 정품 확인을 거쳐 새 제품으로 교환해줍니다. 품질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죠.

또 다른 전략은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한 것. 같은 크기 같은 용도의 노트가 아닌, 저마다 다른 취향을 담은 노트를 선택할 수 있게 했죠. 휴대성과 편의성을 생각해 포켓, 라지, 엑스라지 등 쓰임새에 맞춰 다양한 크기의 노트를 만들었어요. 무지의 단단한 하드 커버, 다양한 컬러의 소프트 커버, 새로운 질감의 텍스타일 커버 등 재질도 선택할 수도 있죠.

일상을 기록하는 데일리, 위클리 레이아웃부터 월별 일정을 기록하는 먼슬리 레이아웃까지. 속지 레이아웃도 다양하게 제작했어요. 그 안에서도 가로형, 세로형, 프로형으로 세분화했죠. 연초 다이어리를 미처 구매하지 못한 소비자를 위해 7월부터 다음 해 12월까지 사용할 수 있는 '18개월 다이어리'도 활용도가 높아 꾸준히 사랑받는 아이템이에요.

외형을 넘어 보이지 않는 디자인에도 주목했어요. 최근 제품 디자인은 외형을 꾸미는 걸 넘어 가치까지 담은 디자인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답니다. '꾸밈'의 기술이 아닌, 삶의 태도로서의 디자인이죠. 예컨대, 몰스킨은 노트의 첫 장에 분실 시 사례금을 직접 주인이 써넣는 디자인을 적용했어요. 노트의 가치를 사용자가 스스로 매길 수 있도록 한 거죠.

#아날로그를 지키며 디지털 전환

사진 몰스킨

사진 몰스킨

몰스킨에 따르면 이 브랜드의 글로벌 연 매출은 2021년 18.9% 증가한 데 이어 지난해엔 무려 30.2%나 성장했어요. 디지털 시대에도 사랑받는 노트가 된 비결은 무엇일까요.

몰스킨은 지난 10여년 전부터 아날로그 제품과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상품을 선보이며 디지털 기록 세대의 취향에 맞춰 체질 개선에 나섰어요. 몰스킨 표 디지털 전환의 핵심은 아날로그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죠.

2010년 수첩에 적은 필기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온라인으로 공유하는 앱을 개발, 디지털화에 시동을 걸었어요. 2013년엔 문서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 에버노트와 제휴해 몰스킨 노트에 기록한 내용을 스마트폰·태블릿PC와 동기화할 수 있는 제품을 출시했죠.

2015년엔 어도비와 손잡고 노트에 그린 그림을 스마트폰 앱으로 옮긴 뒤 작업을 이어서 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했어요. 손으로 그린 그림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와 연동, 포토샵·일러스트레이터를 통해 디테일한 디자인 작업을 할 수 있죠. 디지털 환경에서 아날로그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새로운 기록 방식인 셈이에요.

한국 몰스킨 마케팅 담당자는 "디지털 기술이 발전할수록 아날로그가 지닌 감성의 깊이가 더해지는 것 같다"며 "너도나도 똑같은 화면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직접 손끝으로 날것의 경험을 하는 과정에서 얻는 신선함과 개성이 아날로그가 지닌 묘미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어요.

#뱀발: 빈 책

사진 언스플래쉬

사진 언스플래쉬

몰스킨은 자사 노트를 '아직 쓰이지 않은 책'이라고 표현해요. 단순히 메모하고 스케줄을 관리하는 수첩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기록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창조적인 작업으로 완성해나가는 책이란 뜻입니다.

그런 점에서 몰스킨의 쓰이지 않은 책은 노트의 우리말인 '공책'의 의미와도 닮았어요. 공책은 이름 그대로 빈 책(空冊)이라는 뜻이거든요.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공책은 하나의 '상품'일 뿐이지만, 한 장 한 장 생각을 써 내려 가면 나만의 작품이 됩니다. 지금 문득 떠오른 생각을 펜을 들어 비어 있는 책에 생각과 지식을 채워 넣어보는 건 어떨까요.

비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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