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 '머피'로 이름 날렸다…전쟁 군용시계의 대변신 [비크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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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영화 속 그 물건
비크닉 독자 여러분, 영화 좋아하시나요? 저는 여유가 생길 때면 늘 영화를 찾습니다. 집에서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도, 소진된 영혼을 충전시키고 싶을 때도 영화는 늘 좋은 파트너가 되어 주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영화의 감동적인 스토리 라인이나 치밀한 구성 외에도 눈여겨 보는 것이 생겼어요. 바로 영화의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물건’입니다. 예를 들면 영화 인셉션의 ‘팽이’나 반지의 제왕의 ‘반지’ 같은 것 말입니다. 스토리의 중심에서 사건을 이끌어 가기도, 앞으로 일어날 일의 암시적 단서가 되기도 하죠. 오늘의 비크닉은 우리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물건 중 영화에 수없이 등장하는 시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가장 유명한 영화 속 시계. 이름이 궁금하면 레터를 계속 읽어주세요. 사진 해밀턴

가장 유명한 영화 속 시계. 이름이 궁금하면 레터를 계속 읽어주세요. 사진 해밀턴

혹시 이 시계를 보고 떠오르는 영화가 있으신가요? “인터스텔라”를 외치셨다면 정답! 이 시계를 만든 브랜드는미국에서 시작해 지금은 스위스를 본거지로 하는 시계 브랜드 ‘해밀턴’이죠. 이들의 시계는 지금까지 500여 편이 넘는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했어요. 1932년 작 ‘상하이 익스프레스’부터 ‘진주만’ ‘다이하드’ ‘스파이더맨’ ‘스페이스 오디세이’ ‘맨 인 블랙’ ‘마션’ ‘나는 전설이다’ 등 많은 영화에 상징성을 가지고 등장한 시계들이 바로 해밀턴의 작품이었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쿠퍼 역의 매튜 매커너히가 딸 머피(매켄지 포이)를 달래고 있다. 이 영화에선 해밀턴의 시계 2개가 등장하는데, 영화 흥행과 함께 이 시계들도 함께 유명해졌다. 매튜 매커너히의가 손목에 찬 시계는 그 중 하나인 '해밀턴 카키 파일럿 데이 데이트'다. 사진 워너브라더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쿠퍼 역의 매튜 매커너히가 딸 머피(매켄지 포이)를 달래고 있다. 이 영화에선 해밀턴의 시계 2개가 등장하는데, 영화 흥행과 함께 이 시계들도 함께 유명해졌다. 매튜 매커너히의가 손목에 찬 시계는 그 중 하나인 '해밀턴 카키 파일럿 데이 데이트'다. 사진 워너브라더스

#해밀턴, 어떤 시계야? 
대체 해밀턴은 어떤 브랜드길래 이렇게 많은 영화에 시계를 등장시킨 걸까요. 역사는 18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금은 스위스에 본사와 시계 생산 기지를 두고 있지만, 처음 브랜드가 설립된 곳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예요. 서부 개척시대 이후 미국의 산업을 일으킨 철도업계가 당시 해밀턴의 시계를 사용했습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해밀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전쟁이 터지자 군인들은 같은 시간 부대가 이동해야 하는 작전 등을 수행하기 위해 정확한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장치, 곧 ‘시계’가 필요했어요. 당시엔 포켓워치 외엔 개인화된 이동식 시계를 보기 힘들었는데, 해밀턴은 미군을 위해 포켓워치를 손목에 착용할 수 있도록 형태를 변형해 군에 공급했죠. 군인을 위한 손목시계는 육군, 해군, 공군 모두에게 유용하게 사용됐어요. 군과의 인연은 제2차 세계대전에도 이어져,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1942~45년엔 아예 상용 시계 제작을 중단하고 100만개 이상의 군용 시계를 제작했답니다.

육해공을 모두 공략한 해밀턴의 다음 순서가 바로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여느 시계 브랜드처럼 단순하게 출연자의 손목에 판매용 시계를 채우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어요. 영화와 TV 시리즈의 시나리오 단계부터 함께 영화 제작 과정에 참여합니다. 할리우드에 시계 제작팀을 파견해 영화감독과 소품감독이 원하는 시계를 만들어 줘요. 영화의 일부분이 되기 위해 몇 년의 시간이 걸려도 제작진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시계 제작에 몰두합니다.

#인터스텔라의 그 시계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가장 유명한 시계는 아마도 영화 ‘인터스텔라’에 등장한 시계일 겁니다. 인터스텔라는 앞서 말한 영화 인셉션을 만든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의 작품인데요. 인셉션에서 현실과 환상을 연결해주는 장치로 팽이를 썼다면, 인터스텔라에선 시간을 넘나드는 주요한 장치로 시계를 선택했습니다. 시공간을 넘어 아버지와 딸을 연결하기 위해 시계만큼 적당한 매개체가 없었던 거죠.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극중 등장한 두 개의 시계는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장치로 활용된다. 사진 워너브라더스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극중 등장한 두 개의 시계는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장치로 활용된다. 사진 워너브라더스

영화에는 두 개의 시계가 등장하는데요, 주인공 쿠퍼 역의 매튜 매커너히가 착용한 해밀턴의 ‘카키 파일럿 데이 데이트(Khaki Pilot Day Date)’와 그의 딸 머피가 착용한 ‘카키 필드 머피(Khaki Field Murph)’예요. 레터 맨 처음에 보여드린 게 바로 머피의 시계 카피 필드 머피예요.

먼저 아버지 매튜 매커너히가 착용한 카키 파일럿 데이 데이트에 관해 이야기해 볼게요. 시계는 지름 42mm 스틸 케이스에 무브먼트는 H-40을 사용하고 있어요. 80시간 파워리저브로 일반적인 시계 대비 2배에 가까운 연속 동력을 가지고 있죠. 모델명에서 알 수 있듯이 다이얼에 날짜와 요일을 보여주는 가독성 좋은 파일럿 시계입니다. 극 중 전직 파일럿이었던 쿠퍼의 캐릭터에 더없이 잘 어울리죠. 시계 뒷면은 사파이어 크리스털 케이스 백으로 디자인해 시계 속 무브먼트를 감상할 수 있어요.

쿠퍼의 시계, 해밀턴 카키 파일럿 데이 데이트. 사진 해밀턴

쿠퍼의 시계, 해밀턴 카키 파일럿 데이 데이트. 사진 해밀턴

#인류를 구한 메신저...머피! 머피!
사실 더 유명한 시계는 딸 머피가 찼던 ‘해밀턴 카키 필드 머피’예요. 인터스텔라 마니아들 사이에선 ‘머피(Murph)’란 애칭으로 불리는데, 지금까지도 영화에 등장한 가장 유명한 시계로 손꼽힌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등장한 스펙 그대로의 시계 ‘해밀턴 카키 필드 머피 42mm’. 사진 해밀턴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등장한 스펙 그대로의 시계 ‘해밀턴 카키 필드 머피 42mm’. 사진 해밀턴

머피는 영화에서 두 사람의 유대감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치였어요. 극중 나사 팀은 환경 변화로 인류의 미래가 위험해지자 새로운 행성을 찾아 우주로 떠납니다. 이때 팀에 합류한 쿠퍼가 딸에게 남긴 시계가 바로 머피였죠. 쿠퍼는 5차원 공간 안에서 모스 부호를 사용해 머피의 시계 초침을 움직여 딸에게 메시지를 전달했고, 이를 통해 찾아낸 양자 데이터로 인류는 지구를 탈출할 수 있게 돼요. 이 모든 것이 시계를 통해 이루어진 겁니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위해 커스텀 제작한 시계 '머피'의 드로잉 이미지

영화 인터스텔라를 위해 커스텀 제작한 시계 '머피'의 드로잉 이미지

인터스텔라의 팬들은 영화 속 시계를 가지고 싶어했어요. 안타깝게도 개봉 당시 머피는 영화 소품으로 제작된 시계로 시중엔 판매하진 않았었거든요. 팬들의 빗발친 요구에 해밀턴은 영화 개봉 5년 뒤인 2019년 대중을 위한 카키 필드 머피를 생산하기 시작했어요. 직경 42mm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에 블랙 다이얼, 80시간의 파워 리저브를 제공하는 H-10 오토매틱 무브먼트를 장착한 영화 속 시계를 그대로 재현했죠. 시계 초침에는 머피가 지구에서 탈출할 수 있는 공식을 계산해낸 뒤 외쳤던 “유레카” 문구가 모스 부호로 프린트돼 있어요. 하지만 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부호가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아마 알아볼 수 없을 거예요. 시계에 얽힌 영화 스토리를 아는 사람만 알아볼 수 있어 영화 팬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느끼게 해줘요.

영화 팬들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38mm 사이즈의 ‘해밀턴 카키 필드 머피’. 시계는 출시되자마자 품절될만큼 인기를 끌었다. 사진 해밀턴

영화 팬들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38mm 사이즈의 ‘해밀턴 카키 필드 머피’. 시계는 출시되자마자 품절될만큼 인기를 끌었다. 사진 해밀턴

지난해 11월엔 이 카키 필드 머피의 38mm 케이스 버전 시계 ‘38MM 카키 필드 머피’가 출시됐어요. 오랜 시간 영화 팬들이 해밀턴에 “38mm 머피를 출시해주세요” “언제 머피의 38MM 버전이 나오나요” “해밀턴은 팬들의 의견을 듣고 있나요?”라며 요청한 결과랍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에서 보여준 직경 42mm는 가독성 좋은 파일럿 워치의 면모를 지니고 있지만, 손목이 가늘거나 여성의 경우엔 다소 큰 감이 있었거든요. 영화를 좋아한 팬들이 남녀 구분 없이 부담 없이 착용할 수 있는 크기가 바로 38MM 사이즈였던 겁니다. 시계를 구성하는 스펙은 42mm와 같아요.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에 빈티지 스타일의 수퍼-루미노바® 코팅 처리된 핸즈가 달린 블랙 다이얼, 검정 가죽 스트랩까지 핵심적인 디자인 코드를 고스란히 반영했어요. 해밀턴 인터내셔널의 비비안 슈타우퍼 CEO는 이 시계를 출시하면서 “팬들과의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대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38mm 머피는 이런 해밀턴 생각을 잘 구현해낸 타임피스”라고 말했어요. 영화에서 현실까지, 시계가 가지는 힘이 참 대단합니다.

영화 속 시계의 세계를 들여다보니 영화의 매력이 더 강해지지 않나요? 저는 이번 주말 인터스텔라를 다시 한번 볼 생각입니다. 앞으로 해밀턴의 시계가 어떤 영화에 또 등장하는지도 궁금하고요. 무엇이든 ‘의미’가 담기면 특별한 존재가 되죠. 우리 주변의 물건에 이렇게 의미를 담아보는 건 어떨까요. 그럼 나도 모르게 특별한 역사를 쓰게 될지도 모릅니다. 머피가 아버지의 시계로 인류를 구한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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