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타선에는 오타니 쇼헤이, 무라카미 무네타카, 요시다 마사타카, 곤도 겐스케, 라스 눗바 등 강력한 왼손 타자들이 포진했다. 그러나 한국 대표팀의 왼손 투수들은 대부분 대회 개막 전 한국·일본 팀들과의 평가전에서 제구가 흔들리고 컨디션이 완전히 올라오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고비 때 상대 왼손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도 섣불리 왼손 투수를 내보낼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안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심지어 이번 WBC는 '한 투수가 세 타자 이상 상대해야 마운드를 내려올 수 있다'는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한 타자만 상대하고 교체할 수 있다면 컨디션이 좋지 않더라도 과감하게 기용해볼 수 있는데, 무조건 세 타자와 붙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제구가 잘 안 될 때의 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감독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제구가 좋거나 경기 운영을 할 줄 아는 투수를 연이어 중용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날 등판한 일부 투수가 제구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럴 땐 포수 양의지도 몸쪽이나 바깥쪽 사인을 내거나 유인구를 요구하기가 어렵다. 일단 볼 카운트 싸움에서 불리하게 시작하다 보니 한가운데로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하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경기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결국 왼손 투수를 써야할 때 쓰지 못하면서 일본의 왼손 타자들을 막지 못한 게 패인이다. 한국 대표팀 왼손 투수들의 컨디션 난조와 WBC 대회 규정이 맞물리면서 이강철 감독의 선택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점수 차가 벌어진 뒤 올라온 투수들이 우려했던 대로 볼넷을 많이 내주고 연쇄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 점을 더욱 실감했다.
김태형 전 두산 베어스 감독·SBS스포츠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