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는 좀 생소하지만 알고 보면 엄청난 회사 입니다. 독일인 요한 붕게(Bunge) 씨가 1818년에 네덜란드에서 무역회사로 창업했고요. 19세기말 남미가 세계적 곡창지대로 떠오르자 아르헨티나와 브라질로 본사를 옮겼다가 미국 비즈니스가 커지면서 1998년 뉴욕에 정착한 뒤 상장했습니다. 현재 본사는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있고, 붕게 가문과의 인연은 세월이 흐르면서 끊어졌습니다
사실 우리가 파리바게뜨 가서 빵을 사먹는다고 파리바게뜨가 어디 밭에 가서 바로 밀 짚단을 들고 오는 건 아니거든요. 글로벌 곡물시장은 번지를 비롯한 ‘4대 곡물 메이저’가 오랜 역사와 네트워크를 통해 장악하고 있습니다. 곡물의 생산과 가공∙정제, 유통과 물류에 금융까지… (최근엔 곡물에서 연료를 추출하는 biofuel 사업도…) 세계 각국의 정부 관리들도 자국에 식량이 필요할 경우 이들을 찾는다고 해요.
4월 1분기 실적 발표 때 번지는 올해 실적 전망을 당초보다 20%나 높여 잡았습니다. 기름값이 오르면 이동을 줄이거나 버스를 타거나 다른 생각을 해봄직 하지만, 곡식값이 오른다고 먹을 걸 안 먹는다? 이건 좀 다른 차원의 얘기거든요. 그렉 헥먼 번지 CEO는 “강한 수요는 그대로인데 공급은 타이트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언제까지? 업계에선 적어도 ‘몇 년간’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각국의 보호주의 움직임도 곡물가격을 자극하는 요인인데요. 인도 정부는 5월 초에 밀 수출을 금지했습니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인도는 밀을 아주 많이 수출하지는 않지만, 세계 2위의 밀 생산국이고 올해 초 상황에선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밀 재고를 쌓아뒀다고 합니다. 세계 팜오일 수출의 53%를 차지하는 인도네시아도 4월에 잠시 수출을 금지했었고요. 세르비아와 카자흐스탄도 곡물 수출에 제한을 뒀습니다.
이렇게 해서 올들어 국제 밀 가격은 3~5월 연초 대비 40%까지 상승했다가 지금은 약간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앞에서부터 제가 계속 ‘번지 주가가 4월까지는’, ‘4월말 실적 발표 때는’ 이라고 했던 것은 4월 이후 번지 주가가 하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곡물 수급이 타이트하고, 실적 전망도 좋은데 번지 주가는 왜?
지금도 우크라이나에서 일부 곡물을 기차와 트럭으로 운반해 내고 있지만 소량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 사업이 입은 손해가 1200만 달러(약 155억원)에 달한다고 해요. 또 곡물 수요가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지만,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서방세계의 경기침체가 수요를 서서히 줄여나갈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번지는 모든 사업부문에서 올해 실적 전망을 높여 잡았습니다. 농업부문은 당초 작년보다 다소 안 좋을 거라고 전망했지만 1분기 이익이 작년 1분기보다 3배나 증가하면서 높였습니다. 제분부문도 같은 이유로 높여 잡았고요. 정제∙특수오일 부문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강한 수요가 유지되고 있어서 낙관적입니다.
요즘 번지가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날씨 입니다. 비가 적당히 와서 미국 농사가 잘 될지, 같은 북미지역인 캐나다 카놀라 수급엔 지장이 없을지, 작년에 가뭄에 시달렸던 브라질은 괜찮을지 등등. 올 한해 실적 자체만으로는 기대감이 높은 기업입니다.
결론적으로 6개월 뒤:
※이 기사는 6월 22일 발행한 앤츠랩 뉴스레터의 일부입니다. 이번 콘텐트가 마음에 드셨다면 주변에 널리 공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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