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시장 1조 시대]단돈 만원으로도 명작 소유…미술품 공동 구매의 매력

중앙일보

입력 2022.03.05 00:20

수정 2022.03.05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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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단돈 1만원으로도 김환기, 이우환의 작품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공동소유자들에게만 오픈된 프라이빗 갤러리에서 관람도 가능하다. 고액자산가가 아니라도 누구나 미술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공동구매 플랫폼을 개척한 건 공인회계사이자 펀드매니저 출신의 김재욱(41·사진) 열매컴퍼니 대표다. 회계법인 시절 관심을 갖게 된 크라우드 펀딩과 자신이 좋아하는 미술을 결합한 사업 모델을 개발해 2018년 국내 최초의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 아트앤가이드를 론칭한 이래 지금까지 128작품 310억원 규모의 공동구매를 진행했다. 이중 매각한 74작품의 평균 수익률은 33.2%, 평균 보유기간은 290일이다.
 

김재욱 열매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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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진행한 쿠사마 야요이의 ‘Pumpkin(TWEO)’ 공동구매는 6억7000만원 어치 소유권 판매가 오픈 1분 50초만에 마감됐다. 6만5000명의 회원을 대상으로 매주 수요일 공동구매를 진행하는데, 올해 거래액 1000억원이 목표다. 김재욱 대표는 “재력은 있지만 미술을 몰라서 못 사는 대중들을 위해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공동구매를 통해 경험하면서 돈을 썼으니 공부를 하게 되고, 어느 순간 진짜 컬렉터가 되면서 시장이 두터워질 것”이라고 했다.
 
금융기관이 운영하는 아트펀드와 어떻게 다른가.
“아트펀드는 모인 돈만큼 매니저가 작품을 사고 몇 년 후 매각해 남는 돈을 나눈다면, 우리는 개별 작품 소유권을 고객이 취향에 따라 직접 구매한다. 펀드엔 만기가 있지만 우린 구매자들이 의결권을 갖는데, 목표 보유기간 내에 시세가 공동구매가 이상이 되면 팔 권한을 위임 받고 있다. 옥션이나 딜러 등 다양한 루트로 시세를 확인해 고객이 원하는 만큼 올라왔다 판단하면 매각한다.”
 
금융기관이 아닌데 어떻게 신뢰하나.
“수수료를 안 받고 모든 작품에 5~10% 함께 투자하는 이유다. 우리는 어떤 개인투자자보다 분할 소유권을 많이 산 공동구매자이기에 이익극대화를 해야 한다. 고객과 같이 리스크를 안고 가니 좋은 작품을 정말 열심히 싸게 사서 나중에 비싸게 팔아야 이익을 남길 수 있다. 후발 플랫폼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나.
“기본적으로 회사가 먼저 작품을 사서 분할판매하는 온라인 통신판매업 형태인데, 미술품은 정부가 소유권을 관리하는 대장이 없으니 우리가 외부 블록체인 회사를 통해 기록해 인증하는 것이다. 작품을 소유한 고객 리스트가 블록체인에 기록되고 개인별로 증명서를 발행한다.”
 
분할소유권을 자본시장법상 증권으로 보느냐의 문제가 첨예한데.
“우리는 증권성이 거의 없다. 회사가 사들인 미술품을 같이 살 사람을 모아서 갖고 있다가 파는 것뿐, 토큰을 발행하거나 사인 간에 소유권을 거래할 수 없기 때문에 자본시장법이 아니라 민법의 적용을 받는다. 후발 플랫폼은 거래소를 두지만, 우리는 현행법에 최대한 맞춰서 사업하려고 한다. 공유자산이 된 미술품을 리스크 없게 잘 관리하고 처분해서 이익을 남기려는 목적에 집중하고 있다.”
 
소비자 보호장치가 없는데 회사가 파산 또는 잠적하면 어쩌나.
“미술품은 고유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우리가 온라인에 모든 정보를 공개해 놓은 작품을 잠적해서 몰래 팔 수 없다. 공동구매시 현금영수증을 발행하고 블록체인에 기록했으니 회사가 파산해도 경매를 통해 소유권만큼 회수할 수 있다. 우리는 시세가 형성된 작가만 다루기에 그런 경우에도 손실 가능성은 높지 않다.”
 
금리인상 등 거시경제 흐름에 영향을 받을텐데.
“불황장이 더 유리하다. 호황장엔 계속 올라가는 작품을 사기 부담스럽지만, 불황장에 떨어지는 작품을 잘 선별해서 사면 호황장일 때 얼마든지 비싸게 팔수 있다. 갤러리나 옥션의 고객인 고액자산가들은 불황에 사지 않지만 우리 고객인 대중은 불황에도 재테크를 한다. 지금이 오히려 제일 힘들다. 같은 작가 작품만 계속 나온다는 얘기를 듣는데, 그들이 가장 안전자산이라 어쩔수 없다. 호황에는 안전자산 위주로 투자해야 불황이 와도 팔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구매 플랫폼 때문에 미술품 가격이 인플레되지 않을까.
“한국 작가들이 세계적으로 저평가된 가장 큰 이유가 한국작가인데도 한국사람들에게 관심을 못 받아서다. 플랫폼을 통해 재평가받으면서 정상 가격을 찾아가는 것으로 본다. 시장의 성장 기반이 되는 게 대중의 관심이나 자금의 유입인데, 우리가 재테크와 결합해서 한번도 그림을 사보지 않은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시장이 커지고 컬렉터층이 많아져야 향유층이 넓어지고, 그래야 작가들도 작품을 많이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