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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시장 1조 시대]2030 젊은 예술가 약진, 세계 미술시장 급팽창 불 지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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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8호 11면

SPECIAL REPORT 

2021년 국내외 미술시장은 역대급 호황을 누리며 큰 규모로 성장했다. 코로나 19 여파로 2020년 상반기까지 이어지던 마이너스 성장세에서 급반전을 이룬 것이라 체감 지수는 더욱 강렬했다. 이러한 성장의 주요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 동시대 미술이다. 국제 미술시장에서는 일반적으로 제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1945년 이후 출생 예술가들의 작품을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로 규정한다. 2020년 하반기에서 21년 상반기에 이 카테고리 미술은 3조원이 넘는 경매 낙찰가 총액을 기록, 역대 최고 판매액을 기록했다. 미술지수로 따지면, 2000년에 비해서 약 400%에 달하고 유례없는 호황으로 인식되었던 2007년에 비해 약 150% 가량의 성장을 이룬 셈인데, 이는 다른 어떤 범주의 미술보다 빠른 성장세에 해당한다. 2000년대 초반 전체 시장의 3%에 불과했던 동시대 미술이 이제 23% 가량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팬데믹으로 ‘현재’ 즐기려는 심리 강해져

플로라 유코노비치 ‘당신은 나를 부끄럼 타게 만들어(Tu vas me faire rougir, 2017)’. 지난 1일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서 190만 파운드(약 30억원)에 낙찰되어 큰 화제가 됐다. [사진 크리스티]

플로라 유코노비치 ‘당신은 나를 부끄럼 타게 만들어(Tu vas me faire rougir, 2017)’. 지난 1일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서 190만 파운드(약 30억원)에 낙찰되어 큰 화제가 됐다. [사진 크리스티]

동시대 미술이 이처럼 미술시장 성장을 주도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팬데믹 여파로 현재를 즐기려는 심리가 강해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 유행에 민감한 시장이 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고미술이나 모던 아트보다는 지금을 반영하고 변화무쌍한 동시대 미술의 인기가 현저히 높아진 것이다. 1980, 90년대생 젊은 예술가들의 높은 인기와 가격 급상승은 동시대 미술 열풍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가운데서도 특이하게 여성 예술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샤라 휴즈, 이바 주스키위츠 같은 1980년대생들은 물론, 플로라 유코노비치, 자데 파도주티미, 로렝 퀸 같은 1990년대 출생 여성 화가들의 작품 가격 급상승이 시장에 큰 불씨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플로라의 2017년작 한 점은 지난 1일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서 추정가 25만 파운드의 약 8배에 해당하는 190만 파운드에 낙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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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다른 범주 미술에 비해 보다 다양한 가격대로 진입 장벽을 낮춤으로써 폭 넓은 컬렉터층에게 어필할 수 있고, 유행에 민감하면서도 상대적으로 고가 미술품 구매에는 부담을 느끼는 젊은 컬렉터 층의 유입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물론 최근 일부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 가격이 크게 상승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낮게는 몇십만원대 내지 몇백만원에서부터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고를 수 있는 것은 동시대 미술의 큰 장점이다.

셋째, 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 경매가 급증한 점을 들 수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작품을 실제 보지 않고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고가 미술품은 더욱 그랬다. 하지만 팬데믹 장기화로 여행 제한이 지속되면서 이런 장벽이 크게 허물어졌다. 따라서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 세대 컬렉터들이 선호하는 동시대 미술 시장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넷째, ‘대체 불가능 토큰(NFT, Non-Fungible Token)에 대한 높은 관심이다. 예를 들어, NFT 커뮤니티를 통해서 인기를 구축한 1980년생 비플(Beeple)의 작품은 2021년 3월, 크리스티 온라인 경매에서 엄청난 응찰 경쟁 끝에 미화 6930만 달러에 낙찰되면서 전체 생존작가 중 낙찰가 3위를 기록한 바 있다. 바스키아 같은 낙서화가 당대 감성과 시대정신을 포착했던 것처럼 이들 NFT 예술가들도 인터넷 세대 컬렉터들의 감성에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NFT가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 주면서 미술시장에서 중요한 품목으로 자리잡게 될 것은 확실해 보인다. 블록체인 기술의 일환으로 미술품의 소유권 개념에 혁신을 가져올 수 있고, 정확한 출처 및 전시, 판매기록 등 모든 기록을 투명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도 NFT의 큰 장점이다. 또한 진위 여부를 명백하게 하고, 재판매에 따른 아티스트 추급권 등의 전통미술시장의 문제점들을 해결해 주리라 기대된다. 하지만 이제 막 형성되고 있는 시장인만큼, 최근의 열풍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시장 개발의 방향성 등 미래가 불투명하다. 투기를 조작하여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 등 어두운 그늘도 있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동시대 작품 낙찰가, 피카소와 차이 좁혀

다섯째, 아시아 시장의 동시대 미술 선호를 들 수 있다. 팬데믹으로 인해 2019년에서 2020년 상반기까지 매우 어려운 시기를 보낸 후, 중국, 홍콩, 대만의 미술시장은 급성장세로 전환, 지난 분기에는 급기야 전 세계 동시대 미술 거래 판매 총액의 40%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홍콩은 동시대 미술의 판매와 홍보를 위한 세계 최고 유망 도시로 부상했다. 지난 분기에 홍콩은 10%에 불과한 유찰율을 기록했는데, 이는 30%에 달하는 전 세계 평균 유찰율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이다. 게다가 니콜라스 파티, 보아포 등 최근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예술가들의 작품 모두 홍콩에서 최고 경매가를 기록하였다. 아시아의 젊은 컬렉터들이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시장의 중심이 아시아를 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플의 최고가 기록 역시, 인도 출신 젊은 사업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 같은 동시대 미술의 인기는 지난 분기 낙찰가 총액 순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여전히 1위는 피카소가 차지(3억5200만 달러, 약 4216억원)했지만 2위 바스키아(3억300만 달러, 약 3629억원)와 총액의 차이가 5000만 달러(약 600억원)로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줄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피카소 작품의 낙찰가 총액은 바스키아보다 4~5배 가량 높았다. 3위는 앤디 워홀인데, 낙찰가 총액이 약 1억5000만 달러(약 1800억원)으로 바스키아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4위는 인상주의 미술의 거장인 모네로 낙찰가 총액은 약 1억3100만 달러(약 1570억원)였다. 5위는 낙찰가 총액이 1억2300만 달러(약 1473억원)에 달한 뱅크시가 차지했다. 이 또한 놀라운 현상이다. 생존 작가가 낙찰가 총액 10위 안에 든 적은 처음이 아니지만, 뱅크시와 같은 40대 예술가였던 적은 없었다. 이처럼 2021년은 새로운 기록들의 향연이 펼쳐진 한 해였다. 동시대 미술이 올해도 그 기세를 몰아갈지 궁금하다.

정윤아 크리스티 스페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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