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국경에 120개 대대전술단을 집결시켰다가 이중 3분의 2를 우크라이나에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대전술단은 각각 전차(10대)·장갑차(40대)를 중심으로 포병·방공·공병·통신·의무를 모아놓은 임시 부대 편성이다. 이를 바탕으로 살펴보면 대대전투단 80개 중 20개(25%) 이상이 전투력을 상실했을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가 왜 이런 상황에 부닥쳤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앞으로 상황 전개 방향을 예측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러시아, 속전속결 작전 성공 멀어져
러시아는 애초 전쟁을 속전속결로 끝낼 생각이었을 것이다. 3개 방면에서 대규모로 침공하면 블라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포함한 우크라이나 정부의 지휘 체계가 와해할 것으로 ‘가정’했을 것이다. 이 ‘가정’대로 전쟁이 진행됐더라면 2008년 조지아 전쟁과 같은 양상이 됐을 것이다. 조지아 전쟁은 닷새 만에 무조건 항복에 가까운 조건으로 끝났다.
개전 5~6일이 지난 시점에 러시아는 접근한 대도시에 진입할지를 놓고 딜레마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도시는 병력을 삼킨다’는 말이 있듯이 시가전은 공격 측에 매우 불리하다. 도심 건물은 아군의 진격을 방해하면서 적군에겐 최적의 매복 장소를 제공한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1994~95년 제1차 체첸 전쟁 때 체첸 수도인 그로즈니에서 상당한 피해를 보았다.
러시아군 다수 숨지면 푸틴 대선 타격
키예프를 포함한 대도시의 시가전에서 러시아군이 많은 사상자를 낸다면 푸틴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는 권위주의 국가이지만, 선거를 치른다. 다음 대선에서 푸틴은 결코 유리할 수 없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주요 도시를 점령하지 않고 종전 협상을 마무리할 경우, 러시아는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없을 것이다. 세계 여론은 우크라이나가 실질적으로 승리했다고 인식하게 될 것이다.
미국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우크라이나 파병을 검토하고 있지 않지만, 군사 지원은 확대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3억 5000만 달러(약 4200억원) 규모의 지원을 승인하면서 의회에 총 64억 달러(약 7조 7000억원)의 예산을 요청했다.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에 무기구매 비용 등으로 5억 유로(약 6750억원)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비회원국의 무기 구매를 대규모로 지원하는 건 49년 창설 이래 처음이다. 독일을 포함해 여러 나라가 지원에 동참하기로 했으며 그 숫자는 계속 늘고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과 스팅어 지대공 미사일 등을 제공하면서 ‘대도시를 중심으로 방어할 것’을 조언한 것으로 보인다. 휴대와 조작이 간편해 민병들도 운용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장점이다. 실제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전차와 장갑차, 헬기를 막아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러시아가 투입한 대대전술단이 지역분쟁 개입에 최적화된 부대편성이라는 점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작은 규모에 전차·장갑차·포병·방공 등 제병협동 요소를 최대한 결합한 것이 장점이다. 최대 약점은 정비·보급 조직의 편성이 미약하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장기 작전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현시점에서 전쟁의 전개 방향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러시아는 상황 타개를 위해 단기적으론 국경에서 대기 중인 40개 규모의 대대전술단을 교대 투입하면서 작전지속 능력을 보완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푸틴을 포함한 지도부가 ‘전쟁을 어떤 상태에서 종결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결정’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감을 더해가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저항 의지, 서방국가들의 지원, 그리고 러시아군이 보유한 전투력의 한계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선행돼야 한다.
◆방종관
방종관 국방연구원 객원연구원